[소성리를 쓰다1] 5월, 점령을 거부하는 사람들
[소성리를 쓰다1] 5월, 점령을 거부하는 사람들
  • 기록노동자 시야
  • 승인 2021.08.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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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주 주민이다. 10여 년 전에 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대구 인근의 시골 마을인 성주로 이주해왔다. 대구에서 전투기 폭음으로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K2 군 공항 바로 옆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가난한 살림에 K2 군 공항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가 크는 동안 전투기 폭음에 노출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아서 떠나고 싶었다. 대구에서 가장 가까운 성주로 이주를 결정했었다. 대구에서 가깝다고 했지만, 대구는 우리 식구가 살던 아파트를 팔아서는 다른 곳에서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성주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집을 알아보던 중에 정말 가격은 싼데 궁궐같이 잘 꾸며놓은 아름다운 주택을 발견했다. 살고 있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서 대출 빚을 다 갚고도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바로 이주를 결정할 수 있었다. 성주로 이주하면서 대출 빚을 다 갚았으니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고, 넓은 마당에는 새 식구(진돗개)도 맞아서 제2의 인생을 살겠노라며 흡족했다.

2016년 7월 12일 갑작스럽게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전략무기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면서 성주로 결정했다. 라디오 방송으로 들려오는 사드배치 지역 결정은 찰나였다. ‘사드’ 북핵을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으로부터 날아오는 (핵)미사일이 미국 땅에 도착하기 전에 정보를 수집하고 요격하기 위한 정보통신 군사기지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군사 무기가 내 마을로 들어온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단단한 둥치로 머리를 ‘쿵’ 얻어맞은 거처럼 큰 충격에 휩싸였다.

순식간에 성주군청으로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나도 성주군청 광장으로 달려가 촛불을 들고, 수천 명의 주민과 함께 “한반도 사드 배치 결사반대”를 외쳤다. 생각지도 않은 성주 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자 국방부와 성주군은 성주의 중심가에 있는 성산포대가 아니라 제3 부지로 사드 배치 지역을 옮기겠다고 하더니 성주와 김천의 경계지점에 있는 산골 마을 ‘소성리’에 위치한 ‘롯데골프장’ 부지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9월 30일이었다.

사드가 소성리로 배치된다는 소식을 들은 소성리 마을회관은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소성리 부녀회장은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시름에 빠진 할머니들을 위해서 밥을 지었다. 할머니들과 부녀회원들은 밥상에 둘러앉아서 눈물로 밥을 말아 먹으면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팔순이 넘은 왕할머니 임길남 할머니가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 사쓰는 우리 마을에 절대로 못 들어온다”며 격노하셨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소성리 주민들은 마을총회를 열어서 사드 반대를 결의했다. 그리고 소성리 마을회관도 사드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어놓았다. 소성리로 김천시민들이 찾아왔다. 사드 레이더 방향이 북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자파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김천시민들도 사드 배치를 막기 위해서 싸웠다. (5년이 지난 현재, 김천의 노곡마을에서 12명의 암 환자 중 5명이 사망했다. 최근에 9명의 암 환자가 발병했다고 한다)

소성리는 원불교의 2대 교조이신 정산종사의 탄생가가 있는 원불교의 성지이다. 원불교인들은 사무여한(死無餘恨)단을 조직해 죽기를 각오하고 사드를 반대하였고, 정산종사가 진리를 깨치러 걸었던 구도길은 군사기지화되어 철조망에 가로막히자, 부정한 정권 박근혜가 탄핵 결의된 3월 11일 원불교 교무들은 소성리 진밭교를 건너지 못하고 주저앉아 철야기도에 돌입했다. 철야기도는 진밭교 평화교당을 세워서 16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천주교와 개신교 등 평화종교인들도 소성리로 찾아와서 함께 사드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모았다.

수천, 수만의 평화의 발걸음이 소성리로 향했고, 국민 여론은 사드 배치 반대가 절대적이었지만,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촛불 정권으로 불리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도, 사드는 2017년 4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서 무지막지한 국가 공권력을 등에 업고 소성리로 쳐들어왔다. 싸움은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성리가 군사기지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불가피했고, 진밭교는 전장이 되었다.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은 미군이 통행하지 못하게 막았고, 기지를 세우는 공사를 막았다. 기름이 반입되는 것도 군대가 이동하는 것도 막았다. 지난 5년 동안 소성리는 국가 공권력에 의해 지속적인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더욱 가혹한 학대를 당하고 있다.

2020년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당국의 방역수칙도 엄격해지고, 통제도 강화되었다. 소성리가 수년 동안 행해왔던 ‘사드 철거를 위한 수요일 집회’와 ‘토요일 투쟁문화제’가 중단되었다. 김천시민들이 개최했던 ‘사드 철거 김천 투쟁문화제’도 중단되었다. 그러나 소성리에서 사드- 미군기지 건설하고, 무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새로운 설비를 갖추고 시설을 확장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형이었다.

2020년 5월 29일은 사드 장비 EEU가 업그레이드되어 소성리로 추가 반입되었고, 6월 22일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노후장비를 반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드 장비가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공사 장비와 자재를 실어 나를 때마다 경찰병력이 대거 소성리로 이동해왔다. 그해 10월부터 사드-미군기지 건설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들여놓기 위해서 매월 한 차례씩 경찰병력이 대거 들어왔다. 경찰병력은 저항하는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을 고착시키고 감금했다. 소성리의 평화지킴이들도 사드기지 앞으로 올라가는 평화행동은 멈추지 않았고,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길목을 24시간 지켰다.

2021년 들어서 1월 22일과 2월 25일 사드-미군기지로 공사 자재 반입은 두 차례 있었다. 3월을 건너뛰어서 당분간 조용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 얄팍한 기대가 내 마음속에 살짝 있었다. 4월도 막바지까지 별다른 낌새가 없어 보였다. 나의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2021년 4월 28일 경찰병력 2000여 명이 소성리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다른 날도 그렇지만, 뭐가 들어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도 경찰병력이 몰려온다고 하면,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은 새벽 일찍 마을로 모여들었다. 사드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집회를 시작하자 경찰의 대응은 신속했고, 우리는 경찰의 무력진압에 속수무책 끌려 나와서 마을회관 마당에 감금당했다. 사드발전기가 노후되어 교체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공사 자재를 실은 트럭이 40여 대는 족히 들어간 거 같았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평소에 공사 자재가 사드-미군기지로 들어갈 때는 경찰병력이 500명에서 700명 수준으로 소성리로 이동해오지만, 사드 장비와 관련된 크고 대단한 게 들어갈 때는 경찰병력이 최소 1000명 이상 2000여 명이 동원되는 양상을 보였다. 경찰병력이 대거 동원된 만큼 경찰의 작전은 훨씬 거칠고 험악하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소성리 마을 주민들을 향한 핍박이 심하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서 2주 만에 또다시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5월 13일 목요일 한밤중에 ‘다음날(5월 14일) 공사 자재가 반입될 예정’이라는 긴급공지가 올라왔는데, 새벽 5시까지 소성리로 모여달라고 했다. 소성리로 가게 되면 종일 싸워야 할지도 몰라서 미리미리 해야 할 일들을 챙겨놓고 혹시나 못 일어날까 걱정이 되어서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두고 5분 간격으로 울리게끔 해놓았다. 대충 얼굴만 씻고 준비해서 시동을 걸고 소성리로 향해서 달렸다. 내 앞에 경찰버스가 한 대가 달려가고 있었는데, 소성리 방향으로 가다가 성주산업단지로 우회전하여 들어가길래 호기심이 발동해서 따라가 보았다.

성주산업단지로 들어서는 순간 경찰버스와 승합차들이 길가로 줄을 서 있었고,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경찰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성주IC에서 들어오는 버스도 있지만, 왜관에서 들어오는 버스도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에서 경찰병력이 총출동해서 소성리로 몰려들었다.

소성리 마을회관 마당에도 벌써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아마 전날부터 밤잠을 설치다가 새벽 일찍 나왔겠지. 비상연락을 받고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내려왔다. 성주읍에서 달려온 주민들과 김천에서 달려온 사람들, 사드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소성리평화지킴이라고 부른다.

새벽 6시, 우리도 집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소성리 마을길 양쪽에 트럭을 세워놓고 네모난 칸이 촘촘한 쇠붙이 격자의 끝을 트럭 하단에 꽂아서 고정시켰다. 사람들은 격자의 칸마다 들어가 앉아서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공사 자재든, 사드 장비이든 미군기지를 건설하는 무엇도 소성리 마을 길을 지나갈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성주 주민 조은학 님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있을 때, 여자경찰들이 갑자기 덮쳤고, 은학 님이 뒷걸음질 치면서 격자로 밀려와 저항을 했다. 여자경찰들은 손을 뻗어서 은학 님을 끌어내려고 했다. 그 모습이 마치 경찰이 양손으로 은학 님의 따귀를 때리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일어나서 나는 순간 많이 놀랐다. 순식간에 경찰의 공격을 받은 셈이었다.

소성리에서 사드기지 건설 반대 집회를 시작하면 개신교의 기도회를 하고 원불교의 법회가 연달아 이어지는데, 원불교 법회 중에 경찰 두 명은 ‘종교안전팀’이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입고 나타났다. 종교 성물을 박스에 담아서 치워버렸고, 원불교 진밭평화교당에서 1600일 넘게 철야기도를 하고 계신 김선명 교무님을 끌고 나왔다.

2017년 4월과 9월 두 번에 걸쳐서 사드가 소성리로 배치될 때는 ‘종교케어팀’이란 노란 조끼를 입고 종교인들의 평화기도를 방해하고 성물을 빼앗아 가서 비난을 산 적이 있었는데 4년 만에 다시 나타난 모습은 ‘종교안전팀’이지만, 김선명 교무님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도록 에워싸고 감금시키는 짓을 했다.

경찰은 여유를 부릴 새도 없이 집회 대오 양쪽에 세워둔 트럭 한 대를 온전히 경찰들이 힘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격자를 마치 사다리를 접듯이 접으려고 하자, 격자 안에 앉은 사람들은 한쪽으로 몸이 치우쳐서 옆 사람에게 밀착하고 포개지는 모양이 되어 아우성이었다. 격자를 접으려고 한쪽을 들어버리면 공중에 붕 뜨게 되니까 아래쪽 공간이 넓어져서 경찰들은 참가자의 다리를 잡아 빼면서 사람들을 끌어내는데, 경찰 여럿이 한 사람에게 달라붙어서 끌어내는 건 순식간에 이뤄졌다. 끌려 나온 사람은 마을회관으로 이동시키고 경찰병력은 방패로 벽을 쌓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도록 길을 막았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5월 14일 새벽에 벌어진 일이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사람들의 모임에 인원수를 제한하고 가게의 영업시간을 단축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시절에 소성리가 2021년 들어서 경찰 침탈을 당한 건 4차례나 된다.

언론 기사에 6시 50분부터 경찰이 작전을 시작해서 7시에 소성리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해산시켰다고 나온 걸 보면 비슷한 정도의 속도전을 펼쳤던 거 같다. 아침 7시경 마을 도로를 확보한 경찰들은 겹겹이 인간벽을 쌓아서 사람들이 마을회관에서 도로로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서 무엇이 소성리 마을길을 지나가는지 살폈다. 사드-미군기지 방향을 막연히 바라보아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이상하게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다. 사드 장비를 실은 트럭도, 공사 자재를 실은 트럭도, 뭣도 올라오지 않는 대신에 경찰버스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경찰버스가 올라갔다.

소성리 마을길을 지나서 진밭교가 나오고, 진밭교를 건너서 1.2킬로미터를 더 올라가면 사드가 배치된 미군기지가 나오는데, 미군기지는 전략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아서 군시설로 허가를 받지 못했고, 일반환경영향평가라는 기본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아 소성리에서는 불법사드기지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드는 배치되었고, 사드를 운용하는 미군이 상주하고 있다. 국방부의 장병들이 경계보초근무를 서며 미군을 보호하고 있는 군사기지이다. 상식을 벗어난 군사기지인데도 경찰들은 민가에서 사드-미군기지를 지켜주고 있다.

이상했다. 그 많은 경찰버스가 좁은 시골길에 주차해대면 공사 자재를 실은 대형 트럭이 들어갈 수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경찰병력이 들어온 목적이 공사 자재를 실어 나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드-미군기지를 건설하는 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경찰들을 상주시키려는 건 아닌지, 온갖 추측을 해보지만, 그때까지 그 상황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경찰버스가 한참 동안 올라가고 나서야 공사 인부를 태운 봉고차와 RV 차량 다섯 대가 올라갔다. 똥차와 물차 그리고 폐기물 처리 차량 몇 대가 소소하게 올라갔다.

2017년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되고 불법적으로 미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수많은 싸움을 해오면서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이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던 것은 소성리 마을길로 미군의 통행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군대의 이동과 유류의 반출입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일찍 사드기지 앞에서 평화행동을 하고, 진밭교에서 사드기지로 오르는 길목을 지켰던 이유였다. 지금껏 미군은 헬기로 교대 병력과 유류 반출입을 해왔고, 공사 인부들은 미군 숙소로 통하는 산길을 걸어서 출퇴근을 해서 마을 주민들과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 반면에 기지 출입을 허용하는 차량들도 있었다. 식수차량, 구급차, 소방차, 오폐수 수거 차량 및 관리 업체 차량, 쓰레기차, 분뇨차, 폐유 수거 차량, 식당 근무자 차량, 대외협력관 차량, 기지에서 요청해 오는 고장 난 설비 수리 차량 등은 기지로 출입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아무리 미운 미군과 국방부이지만, 그들도 인간이고,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필수 인원과 물품 반입에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한미 장병 생활 여건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며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무력으로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을 진압해서 길을 열었다. 작전은 끝났지만, 경찰들은 물러가지 않았고, 경찰 2000여 명이 마을에 하루 종일 주둔했다. 소성리 주민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5월 14일 하루 종일 국방부와 경찰의 합동작전에 짓밟히면서 학대당했다. 분명 국가폭력은 소성리 학대였다.

미국은 미군이 소성리 마을길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계속 요구해왔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또는 한미 회담을 앞두면 소성리를 미제국에 제물로 바쳤다. 예전과는 다르게 경찰은 신속하게 작전을 수행했는데, 시간이 정해진 듯 보였다. 사드-미군기지 건설공사에 투입된 공사 인부들을 소성리 마을길로 출퇴근시켜서 시뮬레이션 작전을 한 것이었다.

5월 14일은 앞으로의 길고 긴 싸움을 알리는 지독한 하루였다.

 

 

글 / 기록노동자 시야.

소성리사드-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성주 주민이고, 노동자 편드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와 <나, 조선소 노동자>,<회사가 사라졌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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