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가 지역사회에 나온 지도 10여 년이 다 되어 간다. 남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은 중증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남들과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자면 필요한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지역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비장애인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적 권리가 왜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나와 다른 장애인분들에겐 권리가 아닌 복지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존엄하고 행복한 삶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존중받으며 의식주가 보장되며 남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것 하는 것.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지역 내의 장애인들은 집과 거주시설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분들 그리고 거주시설이나 집에서 자립을 준비하시고 계신 분들이 온전히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 보장되어야 할 많은 기본적인 권리가 있지만, 그중에서 유독 장애인이기에 더 뼈아픈 것이 바로 이동권이다.

이동권은 말 그대로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만일 내가 그때 그곳을 가기 싫어졌거나 갈 수가 없게 되었거나 그럴만한 사정이 생겼더라도 결코 누군가가 그것을 비난하거나 제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우리 일상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권리가 장애인, 특히나 신체적 이유로 이동에 어려움이 많은 장애인에게는 아프다 못해 시린 권리이다.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단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부터 장애인들은 이것을 보장받고 쟁취하기 위하여 처절한 노력을 해왔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자 누군가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외친 지도 10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의 장애인 이동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특히나 나를 비롯해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경산 지역의 장애인 이동권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수도권 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저상버스 대수와 장애인 콜택시 대수 때문에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에 간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지역의 장애인들은 매일 아침이 이동권 때문에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장애인 콜택시에 부족한 대수도 대수지만, 너무도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규정이 지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장애인에게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경북지역에는 부름콜이라는 장애인 콜택시가 운영되고 있다. 경북의 대부분 지역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정말 절실하게 이동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며 시외 이동 또한 병원 진료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용대상자들의 폭도 너무 광범위하여 꼭 필요한 장애인들이 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지역이 경고 시스템으로 되고 있다. 경고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징벌적 권리 박탈을 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 당사자가 콜택시를 예약해 두고 탑승시간 한 시간 이내에 취소했다고 가정해보자. 지역 규정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차량 예약을 해놓고 탑승시간이 1시간 이내로 남았을 때 갑작스럽게 취소를 하게 되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당사자에게 경고가 주어진다. 경산 지역을 예를 들면 이 경고가 3번이면 콜택시 이용이 한 달이 정지된다. 이것은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이기도 하다.

물론 악의를 가지고 고의로 그렇게 취소를 한다면, 이 경고 또한 일정 부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사회 어떤 장애인이 이유 없이 악의를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차량 예약시간을 깜빡하거나 급하게 차량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 일 것이다. 갑자기 아플 수도 없는 장애인들의 상황인 것이다. 이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해프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장애인들은 이런 사소한 일상조차 보장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장해 주어야 할 지자체는 이것이 복지혜택이기 때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경고를 할 수 있을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을 가자는 이동권을 가지고 말이다. 심지어 어쩔 수 없는 병원 진료 시간까지도 탐승 시간을 지키지 못해 경고를 받은 사례가 있다.

나는 오늘도 지역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권리가 권리로써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애를 느낀다. 물론 이러한 것들에 어떤 행정적인 이유나 여러 가지 공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장애인들이 마치 어떤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그것이 징벌화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아닐 것이다.

끝으로 꽃은 그것이 꽃일 때 사람들이 꽃을 아름답다고 여기듯이, 우리의 권리 또한 그것이 권리로써 온전히 존중받을 때 그것은 비로소 권리가 될 것이다.

이동권이 우리에게 혜택이 아닌 당연한 일상의 권리가 되는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네 바퀴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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