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과 공포 아래 무너져선 안 될 소중한 것들



1_ 다시 중세로 회귀하는 아프간을 바라보며

 

미국의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사실상 도망치듯 종결되었다. 2001년에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던 탈레반 정권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의 침공은 몇 달 만에 공군력과 특수부대, 북부 동맹 지상군만으로 승리를 거뒀다. 탈레반의 5년간 통치는 붕괴하고 그들의 본래 근거지인 남동부 산악지대로 숨어들었다. 수도 카불에는 친미 정부가 들어섰고, 막대한 원조와 미군의 후견으로 아프가니스탄은 친서방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설 것으로 보였다.

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곧바로 이참에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판도를 석권하겠다는 야심으로 이라크에 진격해 사담 후세인 정권마저 붕괴시켰다. 부시 정부의 ‘네오콘’들은 열광했고, 세계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 누구도 20년 동안 수렁으로 떨어질 거란 예측은 못 했을 테다.

미국의 첨단 군사력은 아프가니스탄이건 이라크건 초전에 박살을 내는 데에는 탁월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전후 처리는 미숙하고 대책 없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미 1970년대에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구소련이 10년간 전쟁을 치른 끝에 나가떨어지고, 결정적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목격했음에도 그다지 배운 게 없었다.

 

"시네마 파미르"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시네마 파미르> 스틸 이미지

단일 민족국가도 아니고 서구식 민주주의도 자본주의 근대화도 이뤄지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부족사회는 자신들의 전통과 풍습을 무시하는 미국의 과거 식민 지배를 연상케 하는 억압과 외국을 전전하던 극소수 친미 엘리트들이 감투를 쓴 수도 카불의 정부를 극도로 불신했다. 2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이 아프가니스탄 군대 양성과 국가 재건에 투여되었다지만 만연한 부정부패와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 앞에 그 천문학적 예산은 땅으로 빗방울 스며들 듯 증발해 버렸다. 탈레반은 재기할 때가 왔음을 알아챘고 내전은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베트남 전쟁 시즌 2’를 찍으며 미국은 21세기 들어 첫 패배를 기록하고 애써 ‘전쟁의 아프가니스탄화’를 강변하고 있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자면 전형적인 반외세 자주 투쟁이다. 누군가는 심장이 두근거리며 반미 투쟁의 기억을 되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과거 반제국주의 반미 투쟁과 현재 탈레반의 전쟁은 달라도 아주 다르다. 논증하려면 갖다 들이댈 설명이 넘쳐나지만 그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한국의 과거 사례는 평등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반미 자주 투쟁을 그 수단으로 삼은 것이고, 탈레반은 전근대적 특정 부족 지주들의 패권을 수호하기 위해 뭉친 군벌 조직에 더 가깝다는 게 이유다.

2021년 현재 탈레반의 승리는 역사의 발전이라 볼 수 없다. 그 결과는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소수 민족에게는 2등 시민으로 전락하는 데 불과하고, 탈레반의 기반인 파슈툰 족에서도 여자와 소수자들에게는 불평등의 확대일 뿐이다. 이미 과거 통치 당시처럼 중세 샤리아법을 들이대며 타민족을 억압하고 여성의 교육권과 시민들의 학문과 문화 향유 권리를 부정하는 탈레반을 독립군에 비유하는 건 역사 몰이해에 불과하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이 구소련 침공 이후 반세기 가깝게 실패 국가로 머무는 현 상태는 제국주의 열강의 탐욕에서 비롯된 게 분명하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좀 더 나아가면 영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책임질 게 아주 많다. 하지만 그 책임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에 대한 기여와 탈레반의 전근대적 퇴행에 대한 국제공조로 갚아야 할 문제다.

한국의 시민사회 또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환기하고 비극이 지속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절실하다. 당장 수도 카불 등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언론과 여성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중단시키고 난민 대책을 수립할 것인가에 대해 세계 10위권 선진국 자랑 이전에 국제적 역할분담을 고민할 때다.

 

"시네마 파미르"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시네마 파미르> 스틸 이미지
2_ “시네마 파미르” 극장의 풍경

 

탈레반 정권 시절에는 수도 카불을 비롯해 그 어디에도 극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전근대적 쿠란 해석에 집착하던 탈레반은 노래와 춤, 영화 같은 대중문화를 모두 악마의 유혹이라며 인간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요소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가수와 배우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은둔하거나 망명하는 일이 허다했다. 정작 소련도 미국도 개입하기 전 1950~60년대 아프가니스탄 왕정 시절에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영화산업이 발달하고 수준 높은 영화가 나오던 나라가 이곳이라는 걸 과연 이제 누가 기억할까 궁금해진다.

탈레반 정권이 산악지대로 퇴각한 후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권역은 미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의 보호 아래 친미 정부가 들어섰다. 물론 시골 농촌 지역은 여전히 별반 달라진 게 없었지만 적어도 도시 지역에선 여성과 소수민족의 인권은 향상된 게 사실이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이 이뤄지고 여성 아나운서나 기자가 등장했다. 학교에 여학생들이 대거 등교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열린 또 다른 공간은 바로 극장이었다. 다큐멘터리 <시네마 파미르>는 바로 카불의 극장 풍경을 다룬다.

낡은 영사기에서 필름이 구불구불 돌아간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극장, “시네마 파미르”의 풍경이다. 영화는 극장 매니저가 주변을 살피며 길을 빙 돌아서 행하는 비밀스러운 출근길에서 시작해 아침 조조 상영의 풍경으로 물 흐르듯 우리를 아주 특별한 극장 풍경으로 인도한다. 낡은 시설은 우리가 “세계는 지금!” 부류의 방송에서 간혹 볼 수 있는 3세계 여느 극장 풍경을 떠올리게 하지만 “시네마 파미르”는 조금 더 특별하다.

‘장군’이라 불리는 극장 감독관은 직원들과 함께 상영 도중에 수시로 컴컴한 상영관 내부를 플래시를 비추며 돌아다닌다. 극장 내에서 금지행위를 저지르는 관객을 끌어내거나 뺨을 때리기도 한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그런데 그 적발된 건들이 심히 가관이다. 마약인 해시시를 몰래 피우거나 레이저 포인터를 스크린에 쏴댄다거나 심지어 구석에서 자위행위를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전 관객 몸수색은 기본이다. 온갖 기상천외한 반입금지 물품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샴푸의 색다른 용도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3_ “시네마 파미르” 극장의 사람들

 

상영이 끝나면 극장 바닥에는 치워야 할 쓰레기와 꽁초들이 수북하다. 그렇게 극장의 하루가 스쳐 지나가고 나면 이제 카메라는 극장 주위의 사람들을 하나씩 호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시네마 파미르"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시네마 파미르> 스틸 이미지

극장 매니저는 주변에 자신의 직업을 숨기고 산다. 감독관은 언제 등에 칼 맞을지 모른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영사기사는 탈레반 집권 시절에 평생 일하던 직장을 잃고 짐꾼 노릇을 하다 다시 돌아왔다. 손님을 불러 모으는 호객꾼 겸 이동매점 담당 직원은 무장 세력의 고문으로 10대 때 한쪽 귀를 잃었다. 극장 식구나 다름없는 열혈 영화광 단골 관객은 역시 테러 공격으로 한쪽 다리를 잃어버렸다. 극장주는 돈 벌 궁리는 고사하고 무슨 숨은 비밀 목적이 없다면 제정신으로 극장 운영하는 게 신기해 보일 지경이다. 그런 극장 식구들의 인터뷰가 펼쳐지면서 우리는 그 어떤 시사 토론에서도 깨닫기 힘든 생생한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극장 안팎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행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순간들이 연속된다. 아프간 정보문화부 소속의 여성은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검열관 업무에 종사 중이다. 여전히 보수적인 나라에서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직접 검열에 참여해 문제를 미리 방지하는 게 그녀의 역할이다. 영화가 자국 내에서 만들어지기 힘든 조건이므로 대부분의 상영은 외국영화 수입으로 이뤄진다. 그 때문에 영화 포스터에 덧칠하거나 특정 장면 삭제를 주문하는 풍경이 흔하게 펼쳐진다.

“시네마 파미르”에서 상영되는 영화 중 인기 작품은 주로 인접한 파키스탄 등지에서 수입해오는 ‘발리우드’ 영화들이다. 그런데 발리우드 영화를 수급하는 배급 업자의 여정은 목숨을 건 007 작전을 보는 것 같다. 필름을 입수해 국경을 넘는 모습은 비밀 첩보원을 방불케 한다. 탈레반 세력이 국경 부근에서 자신들이 금지하는 영화 필름을 운송하는 것을 적발하면 목숨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 참담하면서도 경이로운 이야기들은 끝도 없이 펼쳐진다.

 

4_문화와 교육의 공간: “시네마 파미르”

 

극장의 일상에 색다른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말 드문 일, 신작 개봉을 앞둔 프리미어 시사회가 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 영화는 단골 고객이 직접 목격했다는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쿠란을 불태웠다는 누명을 쓰고 카불 한복판에서 린치 당해 죽은 여성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작품 <파르혼다>가 아프간 감독에 의해 완성되어 “시네마 파미르”에서 상영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그리고 행사를 앞두고 극장 바로 앞에서 사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극도로 강화된 경비 속에서 긴장 속에 그 영화, <파르혼다>의 개봉이 다가온다. 평소 극장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여성 관객을 맞이하기 위해 직원들은 이것저것 궁리를 거듭하며 여성 전용 몸수색 공간을 마련한다. 무장한 경찰들은 테러 방지를 위해 극장 로비에 상주하는 중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극장의 직원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시사회 직전에 대화를 나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화제작 <파르혼다>는 극장이 두셋밖에 없는 수도 카불에서 프리미어 상영을 맞는다. 영화는 종교라는 미명으로 여성에게 가해진 잔혹한 폭력의 재현 순간을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의 표정과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얼이 빠진 관객들은 하나둘 비틀거리며 극장을 빠져나간다. 다행히 상영 동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극장 주변의 일상은 계속 이어진다.

직원 월급 주기에는 형편이 빠듯해 회계 담당자는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돈이 급한 사람과 하루 이틀 더 버틸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해 급여를 선별 지급한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 더 산뜻하게 네온 조명도 달고 페인트칠도 새로 한 “시네마 파미르”는, 비록 여전히 전력 불안정으로 조조 상영 때마다 영사 상태가 불안하지만 입구 밖 호객부터 매표, 검색, 상영과 뒷정리까지 극장의 하루를 이어간다. 영화를 개봉하는 극장이 아니라 비장한 사명감을 띤 문화운동가들을 보는 것 같다. 왜일까?

 

"시네마 파미르"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시네마 파미르> 스틸 이미지

매니저는 극장이 아니었다면 첫사랑을 못 만났을 거라며 회상에 잠긴 채 아프간 판 “시네마천국”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영사기사는 옛날 옛적 좋았던 시절 영화가 어린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회고하며 감회에 잠긴다. 과거 우리네 학생주임처럼 에티켓 위반자들에게 엄격한 감독관은 ‘극장에 대한 위협은 문화에 대한 위협’임을 강조한다.

반세기 가깝게 전쟁에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은 제대로 사회 운영도, 교육도 이뤄지지 못했기에 기본적인 규범과 문화적 소양도 실종되었다고 개탄하며 여전히 문맹과 야만이 판치는 아프간의 장래 과제를 결연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감독관과의 인터뷰 순간, ‘책이 불타는 곳에선 사람도 불태울 것이다!’라는, 나치의 학문 탄압을 풍자한 유명한 경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움직이는 책과도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교육과 문화의 도구로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그렇게 극장의 하루가 저물고 직원들의 하루치 업무가 끝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커튼콜이 이어진다.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몇 번에 걸쳐 “시네마 파미르”의 안내 방송을 반복해 들려준다. “관객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본 극장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그리고 줄줄 이어지는 관람 에티켓과 유의사항들은 퍽 계몽적이다. 그리고 때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물리적 제재는 야생동물처럼 몇 세대에 걸쳐 시민교육이 부재한 아프간에서 강압적이나마 규범과 양식을 가르치는 몇 안 되는 ‘교육’ 기회인 셈이다. 현재까지 12명의 친지를 내전 과정 테러로 잃고, (자신도 한쪽 다리를 잃은) 단골 관객은 영화를 볼 때만 겨우 암울한 현실을 잊는다고 말한다.

 

5_“시네마 파미르”를 생각하며

 

<시네마 파미르>는 우리가 그저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 SNS나 유튜브와 경합하는 매체로 취급하는 ‘영화’가 아프가니스탄이란 공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묘사한다.

 

"시네마 파미르"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시네마 파미르> 스틸 이미지

목숨 걸고 영화를 찍고, 목숨 걸고 상영하고, 목숨 걸고 영화 보는 세상에서 가장 ‘진한’ 영화 애호가들이 존재하는 극장은 지금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극장 직원들은 카불을 탈출했을까? 이제 하루를 견디기 위해 극장을 찾던 열혈 관객들은 어디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영화 속의 사람들이 걱정되는 시간이다.

중세적 샤리아법을 들먹이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부정하는 탈레반 세력이 당분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게 될 테니, “시네마 파미르”는 사라지거나 아주 오랫동안 잠들어 있을 터이다. 부디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운동가들이 무탈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극장이 재건되어 다시 문을 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튼콜과 함께 안내 방송을 들려주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영화 내내 스피커에서 방송되던 “관객 여러분, 시네마 파미르에 잘 오셨습니다.”가 메아리처럼 귓가에 감돈다. 혹시나 영화와 극장이 무슨 대수냐며 더 큰 대의나 민생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다면, 그런 일상의 작은 즐거움조차 부정되는 나라가 대체 어디에 쓸 데가 있겠냐는 일갈을 던지고 싶다. 전문가들이 등장해 갑론을박하는 시사 프로그램보다 <시네마 파미르> 다큐멘터리가 평범한 이들에겐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더 온전히 전달하는 방편이 될 테다.

* EBS D-box에서 VOD 스트리밍 서비스 지원 중

 

 


작품 정보

 

시네마 파미르 Cinema Pameer

2020년, 스웨덴, 다큐멘터리, 80분

감독 마틴 폰 크로그

2020 예테보리 국제영화제 처치 오브 스웨덴 영화상

2020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글로벌



"시네마 파미르" 영화 포스터 이미지
<시네마 파미르> 포스터 이미지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