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를 쓰다11] “문재인 소성리로 델꼬 온나”
[소성리를 쓰다11] “문재인 소성리로 델꼬 온나”
  • 기록노동자 시야
  • 승인 2021.09.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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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는 이유는 하나다. 미군이 육로로 통행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국방부와 경찰이 자국민을 상대로 합동작전을 펼치는 것이다. 이 간명한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다.

국방부의 대외협력단 정 소령은 소성리 할머니들께 ‘국방부는 공사 인부들에게 마을길로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공사 인부들이 불만을 제기하고 항의하기 때문에 말릴 수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이 만난 공사 인부들의 말은 달랐다. 그들은 예전부터 소성리 마을길을 이용하지 않고 미군 숙소로 연결된 오솔길을 걸어서 출퇴근해왔다. 그런데 국방부가 미군 육로수송 작전을 시작하면서 마을길로 출퇴근하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돌아서 갈 수가 없다고 할머니들께 하소연했다.

공사 인부들 처지에서는 오히려 미군 숙소로 연결된 오솔길로 출퇴근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공사를 수주한 국방부의 지시를 무시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할머니들께 읍소했다. 5월 14일부터 시작한 군경 합동작전은 석 달이 넘어가고 공사 인부들이 진밭을 지나가려고 할 때마다 자신들의 출근길을 막는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이 편치 않을 테고 미안한 마음보다 적대시하는 마음이 커지지 않았을까.

7월 27일은 25번째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왔고, 29일은 26번째, 8월 3일은 27번째 경찰병력 1000여 명이 소성리를 무력 진압했다. 주민과 평화지킴이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둬놓고 길을 열어주니까 차를 타고 사드–미군기지로 들어갈 수 있다. 경찰병력이 들어오지 않는 월, 수, 금은 아침 일찍부터 진밭교를 건너서 사드–미군기지로 올라가는 길목을 우리 소성리 평화지킴이들이 막기 때문에, 그곳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니까 고달픈 거다. 공사 인부들이 진밭교를 건너서 출근하는 길이 평탄하지 않은 이유이고, 미군 숙소로 연결된 오솔길로 걸어서 출근하는 게 마음 편한 이유이다.

그러니 국방부와 공사 인부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는 셈인데, 만약에 마을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려고 한다면 애써 마을길로 공사 인부들을 출근시키지 않아도 된다. 건설소장이 고집을 피운다면 국방부가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는 일이었을 거다. 마을길을 열기 위해서 물리력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을 거다. 국방부의 거짓말, 대외협력단 소령이나 대령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인상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니까 할머니들은 우스갯소리로 “국방부는 숨 쉬는 것조차도 거짓”이라고 말한다.

 

8월 13일, 30차 경찰침탈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마을길을 지키는 소성리 할머니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8월 10일은 소성리로 29번째 경찰 침탈이 있었다. 금연 할머니가 경찰들에게 소리쳤다.

“청와대 가서 문재인이 붙잡아서 소성리로 델꼬 온나. 우리가 대통령 시켜줬더니, 우리를 이렇게 핍박해, 문재인 소성리로 델꼬 온나, 그래야 우리도 일어선다.”

여자 경찰은 우리 손을 잡으면서 “청와대 가서 문재인 만나게 해줄께요. 일어나이소. 일어나서 청와대 가입시더”라고 했고, “우리가 청와대를 왜 가? 경찰병력이 이렇게 많은데, 서울서 내려올 때 문재인이 잡아서 끌고 내려오면 되지”라고 맞받아쳤다.

문재인은 소성리로 와서 해명해야 한다. 사드는 과정도 절차도 다 불법이라면서, 주민의 의견수렴부터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왜 소성리로 이렇게 많은 경찰 병력을 보내고 있는지, 우리를 핍박하고 학대하고 있는지, 정녕 문재인은 소성리를 죽인 셈인지, 한마을을 집단 따돌림하고 괴롭히는 문재인은 나쁜 대통령이라는 원망만 쌓인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안다. 문재인은 사드 못 뽑는다.

할머니들은 우리가 사드 뽑는다는 일념으로 마지막까지 마을길을 지켰다. 그리고 우리의 싸움은 세상에 많이 알려지고 있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br>
소성리의 또하나의 가족 김천 촛불.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화요일과 목요일, 경찰 침탈이 있을 때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후 평화행동에 참여하자고 의논이 되었는지, 지난 월요일(8월 9일)은 전국농민회가 소성리로 찾아왔고, 마을에서 사드기지까지 깃발을 휘날리면서 행진을 했다. 수요일(8월 11일)은 전교조 선생님들이 소성리로 찾아와서 사드기지 앞에서 오후 평화행동을 하였다. 사실 그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나는 소성리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SNS로 소식만 접했다. 소성리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아지고, 평화의 발자국이 포개지고 있다는 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거기다 8월이면 통일선봉대가 전국의 투쟁 현장을 찾아다닐 때라서 8월 10일, 29번째 경찰 침탈이 있는 날에는 대학생 통일선봉대가 소성리로 들어와서 마을길을 지켜주었다. 지난번까지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이동하라’면서 수없이 나갈 거냐고 물어보던 경찰은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뭐가 그리 바쁜지 끌어내기 바빴다.

나는 할머니들 곁에 앉았다가 할머니들이 모두 드러눕길래 나도 그냥 도로에 누워버렸다. 끊임없이 나가라는 경찰들의 회유와 체포될 수 있다는 협박을 소음처럼 듣고 있는 것보다야 따끈한 도로에 등을 지지며 누워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마을회관으로 옮겨지거나 경찰서로 옮겨지겠거니 생각했다. 누워있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버티는 데까지 버티던 할머니들이 일어나서 마을회관으로 이동하기 시작할 때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허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별나 보이겠지만,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에 실려서 소성리 보건소로 내려가서 안정을 취했다.

구급차 한 대가 응급실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우리 사람이 아니라 경찰이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진 모양인데, 혈압이 70/50이 나왔다고 한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순간에는 잠시 기억도 상실한 듯했다. 개인의 체력이야 다를 수 있다지만, 연일 지속하는 경찰들의 야간근무, 버스 타고 오는 길에 잠을 잔다지만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까 경찰들의 상태도 조금 걱정스러웠다. 지난번에는 백신 맞고 바로 출동한 경찰이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 나간 적도 있었다.

8월 12일 목요일은 민주노총 통일선봉대 200여 명이 소성리로 올 계획이었다. 성주에서 도시락을 200개 주문했다. 그런데 경찰이 병력 이동 날짜를 하루 연기해버렸다. 김찬수 님의 말씀대로 통일선봉대는 무혈입성하게 되었고, 우리는 8월 13일 금요일 경찰병력을 다시 맞이하였다. 30번째 침탈이었다. 하루 연기한 건 괘씸했지만, 그런 일에도 이제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생각에 초연해졌다. 어차피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소성리 마을길을 미군에게 열어주려고 한다면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담대해져야 한다.

13일 금요일 새벽에 소성리로 도착했을 때 완전 감동이었다. 민주노총 통일선봉대가 와있었다. 중앙통선대는 아니고, 울산과 대구경북 쪽인듯했다. 그리고 커다란 버스 한 대가 소성리로 들어와서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대학생 자주통일 실천단’이란 하얀색 몸자보를 입은 대학생들이 내렸다. 나는 주민 몇 사람과 평화지킴이 몇 사람이 겨우 마을길을 지키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빗나갔고, 소성리 마을길에는 100여 명의 사람이 띄엄띄엄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자리를 깔고 앉았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성주 보건당국에서 방역 문제로 나와 있었다. 사람들에게 열 체크를 하게 하고 노란 띠를 손목에 둘러주었다. 성주경찰서는 뭔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방역지침을 어길 시에 처벌하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나름대로 집회 주최 측에서 방역지침을 준수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성실히 따르는데도 경비과장이 자꾸만 내려와서 방역지침을 위반할 시 법률을 검토하겠다는 둥 협박을 일삼으니까 결국 한판 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궁금했다. 우리는 방역지침을 준수한다고 참가자 서명하고, 온열 체크하고, 노란 띠를 손목에 차는데, 경찰들은 어떻게 방역지침을 지키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경찰에게 어떤 표식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경비과장에게 물어보려고 갔지만, 경비과장은 카메라만 보면 알레르기 반응이고 인터뷰를 거부하겠다고 한다. 인터뷰가 아니라 공무집행인데도 말이다.

그러다 기가 막힌 사진이 ‘소성리 평화마당’으로 올라왔다. 여자 경찰이 망사마스크를 한 모습이 찍힌 거다. 왜 망사마스크를 하고 왔냐고 물었더니 그는 kf94라고 대답했다는데, 망사마스크도 kf94가 있다니 그게 더 놀랍다. 방역수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경찰이 망사마스크를 쓰는 건 괜찮은 걸까.

경비과장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경찰들에게 방역물품을 직접 지급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건 각자 알아서 챙겨온다는 거다. 그럼 망사마스크를 하고 온 경찰은 문제가 되지 않냐고 물으니까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뗐고, 자신들이 방역을 철저히 한다는 걸 안내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작전 마치고 방역 매뉴얼과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 상세히 적은 자료를 준비해서 보여주겠다고 한다. 나는 경비과장이 인터뷰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고, 나중에 다시 보자고 카메라를 돌렸다.

경찰들이야 당연히 방역을 잘 준수한다고 하겠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작은 시골마을로 몰려 들어와서 집회 참가자들을 끌어낼 때는 여러 명이 한 사람을 집중 타격하는데, 그 사이에 얼굴을 맞대고 손과 발을 붙잡고 몸이 밀착해있는데, 아무리 방역지침을 잘 지킨다고 해도 이미 거리두기는 실패한 거로 보인다.



 

글 / 기록노동자 시야

소성리 사드-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성주 주민이고, 노동자 편드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와 <나, 조선소 노동자>,<회사가 사라졌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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