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난민들의 태국 체류 30년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영화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1_ ‘난민’의 형성 과정과 현실

UN 난민협약 제1조는 다음과 같이 ‘난민’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국제법상 난민 기준의 준거가 되는 해당 협약의 문제는 전쟁이나 재난으로 인해 발생한 피난민의 경우 위 규정 범위 내에 해당하는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근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난민’의 경우도 포괄되기 어렵다. 세계정세의 요동치는 변화와 함께 큰 폭으로 증가 일로인 난민 문제는 일부 국가를 넘어 세계적 화두가 된 지 오래다.

한국사회의 경우 심각한 괴리감에 둘러싸여 있다.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기간 세계 최빈국에 가깝던 처지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3세계에서 1세계로 편입되는 데 성공한 극히 드물다는 사례의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은 뽐내고 싶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제사회에서 담당해야 할 책임에 대해선 회피하고픈 이중성이다. 기후변화 문제건 난민 대책이건 이런 면모는 여전히 강한 편이다.

하지만 단지 경제적 위상을 떠나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적 영향력까지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국제적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위상을 갖게 되어버렸다. 이제 국제사회의 난민 수용 문제가 현관 앞에서 벨을 누르는 걸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서구의 난민 수용이 나라별로 큰 사회적 논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은 종종 뉴스에서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규모의 난민을 떠맡은 나라들은 서구의 경제 대국이 아니라 결국 당사국의 인접 국가이기 마련이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나라는 인접한 파키스탄과 이란이며, 시리아 난민은 레바논과 터키에 넘쳐난다. 유럽과 미국이 몇천에서 몇만의 난민 수용으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에 비교하면 수십수백만이 기본인 인접국의 난민 문제는 간과되기 일쑤다. 하지만 인접한 3세계 국가들에서 난민 문제는 훨씬 심각하고 장기적인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그 나라들의 문제에 비하면 유럽과 미국의 사례는 엄살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미얀마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현재진행형인 군부독재와 내전으로 인한 혼란은 대량의 난민을 인접국 태국으로 이주시켰다. 처음에는 단기적인 정치 망명에 가깝던 난민들은 돌아갈 기약을 잃은 채 세대를 거듭하며 누적되어 경계인이 되어버린 상태다. 불안정한 정국의 미얀마로 돌아가기도, 제대로 된 신분이 보장되지 않는 태국에 정착하기도 난망한 이들의 현황은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난민 문제에 직면하게 될 현시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일 것이다.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영화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2_ 미얀마 난민들의 수상마을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표류하는 마을>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에서 다양한 이유로 난민이 된 미얀마 출신 주민들의 삶과 현황을 다년간 취재한 기록이다. 현재 이들 난민은 48만 명에 달한다. 태국 인구 비례로 보면 전 국민의 0.7%를 차지한다. 한국사회에 대입하면 35만 명의 인접국 난민이 들어온 셈이다. 예멘 난민 561명에 온 나라가 들썩이던 3년 전 우리 사회를 떠올리면, 한국의 관련 논의나 대책이 얼마나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셈이다.

이들 난민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건 1988년 ‘버마의 봄’이 군부독재의 유혈 진압으로 좌절된 이후부터다. 다큐멘터리의 주 배경인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대의 수상촌락 주민들 상당수가 30여 년 전 그 당시 유입된 이들이다. 그들은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며 무국적자로 사는 삶을 이어간다. 다큐멘터리는 (국내 관객들이 궁금해할) 정치적 문제를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해당 사안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국경지대 난민들의 생활조건 전반을 소개하는 데 감독과 카메라는 집중한다.

미얀마 난민들은 태국 시민권이나 정식 체류비자를 대부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쉽게 말해 ‘무국적자’ 상황이다. 이들은 태국 땅에서 수십 년간 살아왔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어렵다. 이들은 대개 태국인의 농장이나 가정집에서 일용직에 종사하거나 강과 호수에서 벌이는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 힘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다 법적 신분이 부재하다 보니 육지에 집이나 땅을 소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배와 뗏목을 이용한 수상가옥은 그런 상황이 가져온 결과물이다.

수상촌락 주민 중 ‘미 뗑’ 씨의 가족을 중심으로 카메라는 찬찬히 난민촌의 시간을 기록한다. 가족과 이웃들은 뗏목 위의 오두막에서 주거를 해결하고 어업을 통해 돈을 벌며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생선을 잡아 버는 돈은 턱없이 적은 데다 태국 정부가 어족자원 보호를 위해 설정한 금어기에는 그물을 칠 수 없다. 금어기 단속을 피해 몰래 그물을 치다 적발되면 고기 팔아 버는 돈보다 더 엄청난 벌금을 내야 한다. 음성적으로 불법 어업이 이뤄지는 현장에선 공무원과 어민 사이에 숨바꼭질이 벌어지는 중이다.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영화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당연히 그 기간에는 수입원이 사라지기 때문에 뭍으로 나가 태국인의 농장이나 가정에서 잡일을 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권이 없는 미얀마 난민들이 내륙에서 일하려면 태국 지방관청의 노동 허가증이 필요하다.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다지만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나 비협조로 인한 고통은 여전히 적지 않다. 그나마 인터뷰 대상자들은 과거보다 공무원 비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항상 규제 일변도의 단속은 인권을 유린하고, 불신을 낳게 마련임을 보여주는 부정적 사례다.

그런 난민들의 임금은 형편없이 낮게 책정되고, 근로조건은 브로커에 의해 좌지우지되게 마련이다. 양심적인 지방공무원들은 행정 실무자로서 그런 현실에 대해 개선책을 제안하는 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약하나마 노력하는 중이다.

수상촌락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을 카메라는 해설하기보단 상세히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현실 문제를 고발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일상의 다양한 풍경을 담아 전시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느슨해 보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입장을 선전하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취사선택해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특징적인 점이라면 단속과 계도의 양 측면을 모두 담당하는 지방공무원과 지자체 관료들의 인터뷰도 상당한 비중으로 담겨 있다. 처음에는 미얀마 난민들을 방치하거나 일회성 정책으로 급급했던 태국 정부도 갈수록 누적되어가는 문제를 그냥 바라만 보긴 어려워졌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여기엔 태국 국내 사정도 한몫한다. 동남아 국가 중 태국의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가장 낮은 편이다. 인구가 적진 않지만, 연령대별 분포로 따지면 인구절벽 상황에 다가선 태국 현실에서 미얀마 난민들의 저임금 노동력 가치는 날이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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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3_ 미얀마와 태국 사이에 선 난민들의 정체성 고민

미얀마의 민주화가 거듭 좌절되고 궁핍과 혼란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접경지대의 난민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증가일로다. 자연히 30여 년간 누적된 난민들 사이에서 태어난 무국적 2세가 적지 않다. 다행히 이들은 태국 공교육 기본체계에 접근은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난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미얀마에는 점점 연고가 사라지는 상황이다. 미얀마 출신이라 하지만 고국과 접점이 없는 비율이 늘어가는 것이다. 태국 교과서로 교육을 받는 이들 2세의 신분과 미래는 계속 불투명할 따름이다. 공교육 체계에서 교육을 받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미얀마 난민의 정체성이 태국의 역사와 문화에 입각한 공교육 내용과는 상이할 수밖에 없기에 2세들의 입지는 모호해져 간다.

학교에서 태국식 교육을 받을 순 있지만, 접경지역의 학교에서 미얀마 난민 2세들은 버마족, 카렌족, 몬족 등 주요 민족별로 색깔에 의해 구분되는 전통의상 착용이 강제된다. 아마도 난민들의 관리 차원에서 주요 민족별로 교복 형태로 착용시키는 상황으로 보이는 바, 민족과 국가 정체성이 과연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일지 해당 쟁점은 다큐멘터리 전개 내내 이어지는 문제다.

중반부에 카메라는 미얀마에 다녀오는 난민 가족과 동행한다. 촬영 시기가 최근 군부 쿠데타 이전이므로 민간정부 시절이긴 하지만 여전히 당시에도 군부의 권력은 막강했던 때다. 검문소와 군인들을 피해 미얀마의 친지들을 만난 난민들과 동행 과정에서 어렵게 담은 장면들은 여전히 암담하고 복잡한 현지 사정과 함께 난민들의 이중 정체성 상황을 심화 해설하는 역할을 맡는다.

2010년대에 군부와 아웅산 수치 계열이 동거하던 미얀마 정부는, 국외로 간 난민이 등록을 하면 왕래나 귀국을 제한적으로 허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민 가운데 심각한 정치적 문제가 없는 이들이라면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불안정한 정국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돌아가길 망설인다. 거기에 난민들의 민족 정체성도 제각각이다. 그들이 만난 미얀마 현지의 친척들은 정부군에 뜯기고 카렌족이나 몬족 반군에도 뜯기면 못산다며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런 불안한 현지 상황은 자연히 태국과 미얀마 간 경제적 격차를 크게 벌려놓았다. 미얀마 현지 친지 방문 에피소드는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미얀마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장면이다.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영화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4_ 난민 정체성을 유지하며 태국 사회에 동화되는 풍경

난민촌의 핵심 과제는 태국 시민권 획득이다. 장래가 보이지 않는 미얀마 국내 사정 때문에 난민 1세대는 귀국을 놓고 갈등하는 중이다. 노인이 된 ‘8‧8‧8‧8’세대는 고향으로 돌아가길 꿈꾸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층일수록 여러 이유로 태국 정착을 꿈꾼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교육적 측면이다. 점점 후속 세대가 주류가 될 것이기에 미얀마 난민들은 2세대 이후는 미얀마계 태국인 정체성을 갖게 될 상황이다. 현지 군수와의 인터뷰 및 관련 제도 변화 취재를 통해 해당 문제가 논의되는 과정과 쟁점이 꽤 상세히 설명된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카메라에 난민 가족들의 염원이 담긴 인터뷰가 몇 해에 걸쳐 지루한 진행 상황의 변천사를 풀어낸다. 1세대는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자녀들이 답습하지 않길 원한다. 그 소망은 차별로부터 법 제도상 벗어날 수 있는 시민권 획득으로 집약된다. 최소한 월급 받는 직장을 구할 수 있고, 일하기 위해 노동과 이동 허가 종이 한 장에 뇌물이나 브로커를 끼진 않아도 될 테니깐.

태국 현지의 사정(난민 증가와 정착 심화, 저임금 노동력 수요 등) 때문에 다큐멘터리 말미에서 수상마을의 2세들은 대부분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는 근황이 소개된다. 공교육 체계에 2세들이 대부분 편입되어 있었던 게 주요한 근거가 된다. 난민들이 제도권 바깥에 있었기에 속지주의에 의한 출생지 근거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영화 속 수상촌락 주민들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여전히 시민권 문제는 산적해 있다.

해당 작품은 멀고 먼 태국과 미얀마 상황이라 생각되겠지만, 작품 속에 담긴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발생 원인과 그들이 겪는 현실, 그리고 사회통합 문제는 국내에서도 당장 타산지석이 될 지점이 가득하다. 난민이라면 독립운동가처럼 극소수의 정치적 상황에 한정해 상상하기 쉬운 국내 관객들에게 <표류하는 마을>이 보여주는 난민의 구체적 현실은 생생한 사례로 다가올 것이다. 정치 상황 때문에 발생했지만, 점차 경제사회적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난민들의 정체성과 함께, 물리적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2/3세대 정체성 갈등이 생생하다.

지방공무원들과의 인터뷰와 오랜 시간 공들여 기록한 법 제도 변화상을 통해 태국 정부가 자의반 타의 반 진행해온, 제도 정비를 통한 미얀마 난민의 사회적 흡수와 통합과정은 당장 한국사회에 닥쳐오는 문제다. 굳이 난민으로 간주하진 않지만, 탈북자 문제가 되건 이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부담해야 할 난민 정착 문제가 되건, 인도주의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 측면에서 준비해야 할 과정이 적지 않다. 그런 차원에서 본 작품은 영화적 재미보다 우리 사회에 영감을 주는 교육적 효용이 뛰어난 참고 사례다.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영화 <표류하는 마을> 스틸 이미지

 


작품 정보

표류하는 마을 Floating Village Asylum

2020, 태국, 다큐멘터리, 88분

감독 프리차 스리수완

2021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아-경쟁 심사위원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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