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삼국유사 이바구꾼 양성과정〉 교육에 참여하면서, 삼국유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다시’ 만났다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단군신화’를 비롯한 몇몇 이야기만을 알뿐, 삼국유사를 잘 모르고 있었다. 새로 읽게 된 삼국유사 이야기들도 모두 재미있었고, 특히나 ‘일연 스님’의 여정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국내 정치 상황도 혼란스럽고 몽골의 침입도 있는 어려운 시대를 스님으로 살아가면서, 일연 스님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았을까 궁금해졌다.

차로 다녀도 먼 거리를 동서남북으로 오가면서, 이야기를 수집할 때는 어떤 마음으로 그 이야기들을 모았을까? 수많은 이야기를 앞에 두고 어떤 순서로 어떻게 엮을까를 정할 때는, 책을 통해 다음 세대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질문을 하다 보니, 그냥 시험용으로만 외우던 ‘삼국사기-김부식/삼국유사-일연’이라는 낱말이, 입체적인 사람 ‘일연’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일연 스님의 속명은 ‘김견명(金見明)’이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해가 환하게 자신을 비추는 꿈을 꿔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9살 김견명 어린이는 경북 경산 압량마을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떠나 바랑 하나를 메고 지리산을 넘어 전라 광주까지 갔다. 14살에는 강원도 양양에서 스님이 되겠다고 출가를 했다. 나의 9살, 14살을 돌아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일연 스님은 정말 어떤 사람이었을까?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면 ‘영재발굴단’에 나왔겠지!

일연 스님의 어머니와 같은 결정을 내가 양육자로서 할 수 있을까? 험한 시대에 혼자 어디를 가냐며 막지 않을까?

경연학당을 이끄시는 이윤숙 선생님께 한자를 배울 때, ‘밝을 명明’은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있음을 아는 것(낮에 달이 안 떠도 달이 있고. 밤에 해가 안 보여도 해가 있음을 안다), 즉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아는 것이 밝음이다’라고 풀어주신 것이 떠올랐다.

9살 견명이가 세상을 향해 품었던 마음, 그리고 ‘밝음을 본다’는 이름에 담긴 지혜를 본받고 싶었다. ‘견명’이라는 이름을 살려 어디에 써볼까 궁리를 해보았다. 우리집 삼 남매와의 나들이를 갈 때 ‘견명투어’라는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까?

나들이를 가서 하나라도 뭔가를 더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양육자의 욕심인 줄 알지만, 안다고 또 그 욕심이 멈춰지는 게 아니었다. 양육자라는 위치에서 아이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이왕에 그렇게 흐르는 마음으로,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본다. 지혜로움을 발견한다.’는 태도를 본받고자 ‘견명투어’라는 간판을 달아본다.

 

군위로 이사를 오지 않았다면, 삼국유사를 들여다볼 일이 있었을까?

일연 스님에 대해 궁금해할 계기가 있었을까?

아이들과 ‘견명투어’를 다닐 여유가 있었을까?

오래전에 일연스님께서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엮으셨고

인구소멸지역에서 벗어나려는 군위지역의 열망과 지자체의 노력이 있어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라는 지역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나는 양육자로서 아이들과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지, 세상에서 무엇을 배워나갈지 다시 한번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었다.

오래된 이야기에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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