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눈을 한 채, 소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만 좀 하소"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그만 좀 하소> 스틸 이미지

1. ‘소싸움’의 세계 : 동물 학대와 전통문화 사이에서

라벨의 볼레로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화면이 밝아지면서 한 마리의 소가 등장한다. 소는 그저 인간의 손에 이끌린 채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 덩치는 위압감을 저절로 느끼게 할 만큼 웅장하고 거대하다. 소는 세로로 길게 뻗은 천변을 지나 계속 이동한다. 저 소는 어디로 가는 걸까? 화면 바깥 관객들 못지않게 화면 속에 찍힌 거리의 사람들도 궁금해하는 것 같다. 대낮에 소가 시골 초지가 아닌 도회지 저잣거리 한복판을 활보하는 경우를 보기란 드문 일이긴 할 테다.

감독의 카메라는 말 못 하는 소의 감정을 이미지로 전하겠다는 집념에 휩싸인 듯 다양한 각도와 거리감을 살리는 촬영으로 소를 끊임없이 묘사한다. 볼레로가 익숙한 절정을 향해 치닫는 화면은 어느새 항공 부감 샷으로 전환되고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만 좀 하소>는 본격 소싸움 탐사보도 다큐멘터리 영화다. 소와 인간의 싸움은 스페인의 ‘투우’를 대표 격으로 유명하지만,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소 vs 소’의 싸움은 엄연히 오래전부터 성행해 왔음이 확인되고 있다. 소는 벼농사를 짓는 지역에서 전근대 시절에는 집에 비견될 만큼 중요한 재산 목록이자 농사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유사한 소싸움 문화는 대규모 방목이 이뤄지는 아르헨티나 등에도 존재한다)

한반도에선 특히 남부 지방에서 성행했다고 전하며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일제가 군중이 모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소싸움을 금지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후 대가 끊어졌던 소싸움은 1970년대에 부활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지방자치제도 본격화 이후 역설적으로 지자체들에 의해 경쟁적으로 육성되어 오늘에 이르는 중이다.

청도 소싸움이 가장 유명하지만, 현재 소싸움이 정기적으로 경기로 유치되는 곳은 10여 곳에 달한다. 역시 경북, 경남, 전남 일대가 대부분이다. 농축산업 위주의 재정 자립도가 빈약한 지자체들은 적극적으로 관광산업 부흥과 함께 동물학대법에서 예외규정으로 ‘경우’가 허용되는 소싸움 활성화를 통해 합법적 도박 산업 유치를 꾀한다. 한편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동물 학대’ 규정을 비켜난 소싸움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늘어나는 중이다. 영화는 그 논란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이끈다.

 

"그만 좀 하소"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그만 좀 하소> 스틸 이미지

2. 정교하게 세분된 7개의 챕터로 살펴보는 찬반 논란

영화는 70여 분의 러닝타임 동안 앞서 소개한 인상적인 볼레로 오프닝을 제외한 분량을 7개의 챕터로 나눠 진행한다. 각 챕터의 테마와 (인간을 포함한) 중심 동물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챕터별 역할과 기능도 세밀히 구분되어 있다. <그만 좀 하소>는 관객에게 일정 내용과 감독의 시선을 소개하고 나머지 판단을 맡기기보다는, 영화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지는 견해에 대한 최소 반론권을 보장한 가운데 명백히 특정 진영에 기우는 태도를 숨김없이 취한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는 그런 (나쁜 의미가 아니라 사전적인) 편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_1. <사람들은 우릴 보고 웃지>

vs <[싸움-소] : (명) 싸우는 기계>

vs <억울한 사람들>의 충돌하는 입장(들)

첫 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우릴 보고 웃지>가 화면에 자막으로 등장하면 곧바로 소싸움의 스펙터클이 눈앞에 등장한다. 소싸움을 일반인들이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 경북 청도군 소싸움 경기장의 풍경이다. 소들은 경기장 안에서 육중한 덩치로 치고받는 중이다. 600~800kg 덩치의 근육질 소들이 맞붙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객석 곳곳에선 함성과 탄식이 오간다. 승부가 나면 누군가는 탄성을, 누군가는 담배를 빼 물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격정적인 현장의 분위기는 우리가 스포츠에 순수하게 몰입하는 표정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소의 페어플레이를 응원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초조하게 OMR 카드에 뭔가를 기입하고 승부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우권'이 교환되고 현금이 오간다. 소싸움 경기장에선 도박장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경마장과 별반 차이 나지 않는 풍경이 펼쳐지는 중이다.

치열한 승부의 끝, 승자가 되었지만, 뿔 주변에 깊게 팬 상처를 입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소와 그 곁의 조련사를 감독의 카메라는 따라간다. 그 싸움소 ‘박창’과 조련사 안귀분과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영화는 매주 벌어지는 소싸움장의 풍경을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그다음 두 번째 이야기. <[싸움-소] : (명) 싸우는 기계>는 첫 챕터에 대한 비판적 해설의 순서다.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의 서국화, 박주연 공동대표와 이혜윤 운영이사, 생물다양성재단 김산하 사무국장 등 소싸움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전체 내용 중에서도 가장 설명조로 전개되는 해당 챕터는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법한 질문, ‘소싸움’은 왜 동물학대법 적용 대상이 아닌가?에 대한 Q&A 시간 격이다. 동물학대법상 소싸움은 동물 학대에서 제외된 게 아니라 ‘적용 예외 대상’에 속한다는 것. 그 근거는 ‘전통문화’에 해당한다는 점이 언급된다. 전통은 무조건 유지되어야 할까? 반려동물에 대한 동물 학대 규정과 ‘가축’에 적용되는 잣대는 동일한 것인가? 고기를 주로 취하는, 즉 생명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소들에 비해 훨씬 더 긴 수명을 누리는 싸움소가 벌이는 싸움이 오직 인위적인 요소일까? 수많은 의문이 관객의 뇌리를 스쳐 지나갈 테다.

이어지는 세 번째 이야기. <억울한 사람들>에서는 소싸움을 긍정하는 이들의 반론권이 펼쳐진다. 처음 챕터에서 등장했던 싸움소 ‘박창’과 조련사 안귀분이 다시 등장한다. 한 챕터 전체가 주말의 ‘전투’를 치르고 난 싸움소의 일상 풍경과 함께 진행되는 에피소드다. 부상을 치료한 ‘박창’은 하루 두 번 제공되는 이것저것 정성스럽게 들어간 쇠죽을 양껏 먹고 체력단련을 위해 타이어를 끌며 샌드백 대용인 나무에 대고 힘겨루기 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반대 입장에 속한 이들이 흔히 상상하는 비좁은 축사와 강압적 분위기와는 좀 다른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감독은 조련사에게 소싸움에 대한 의견과 반대 여론에 관해 질문을 던지며 일종의 ‘반론권’을 부여한다. 조련사는 소에 대한 사랑과 상호 교감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시야로 과거와 타인을 재단하는 요즘 세태를 한탄한다. 급기야 조련사의 푸념은 세대갈등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감독은 서서히 인터뷰 소리를 줄여가며 화면을 전환한다. 정작 소는 말이 없다.

 

2_2. 말 없는 소, 침묵의 증언

네 번째 이야기. <소는 말이 없다>란 표제가 화면에 아로새겨진다. 전국 소싸움 ‘판’ 최고령 싸움소로 인정받는 ‘장검’이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소 나이 15살, 사람 나이로 치면 80줄에 접어든 ‘장검’의 과거와 현재가 화면에 소개되는 가운데 이제 저물어가는 싸움소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유망주였던 싸움소는 나이가 들면서 방어전 위주의 소극적 싸움을 벌이는, 권투로 치면 ‘아웃복서’가 된다.

싸움소는 거세 후 육우 신세가 되는 다른 수컷 소들이 3년 채 못 되는 삶을 마치는 데 반해, 40개월은 되어야 시합에 나설 정도로 성숙한다고 한다. 화면에는 ‘장검’의 영광의 시절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격세지감. ‘장검’은 나이 들어 싸움을 피하면서 버티기로만 일관한다. ‘재미없는’ 스타일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 덕분에 소싸움의 1부 리그 격인 청도 시합장에 더는 출전할 수 없는 신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합에 나설 자격이 유지되는, 2부 리그인 진주 소싸움에서 이 최고령 싸움소는 15년째 반복되는 일상을 이어간다.

과연 그에게 다른 운명은 가능했을까? 감독은 불가능한 욕망. 소의 감정과 생각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어느 순간에는 자막이나 해설을 생략하고 오로지 ‘장검’의 시선을 집중 조명하곤 한다. ‘박창’의 눈에도 희로애락이 느껴졌지만 ‘장검’의 눈빛은 그가 보낸 시간의 길이만큼 더 무게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아마 영화 전체에서도 처음 시작의 오프닝 장면과 함께 장면이 가져다주는 이미지 자체에 가장 몰입될 법한 순간이다.

다섯 번째 이야기. <고기로 태어나서>가 곧바로 이어진다. 직전 챕터에서 많은 생각과 상상을 펼치던 관객의 기대가 무색하게, 이번 에피소드는 무척이나 서늘하게 시작된다. 싸움을 못 하는 늙고 지친 싸움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은퇴해서 조용한 말년을 보낼까? 이것저것 미래를 상상하던 이들의 희망이 단 몇 초 만에 짓밟힌다. 소싸움을 관전하고 돌아오던 행인들은 돈을 잃은 분풀이일까?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는 심보일까? 영 힘을 내지 못하던 싸움소를 지나치며 툭 던지는 한마디를 남긴다. ‘도축장 보내야지~’(실제로 싸움을 망설이고 실적을 못 내는 소는 근육질이라 육우보다 더 헐값에 팔린다고 한다)

그리고 소싸움이 열리는 완주군 경기장 옆에선 싸움소가 피한 운명, ‘고기로 태어난 소’ 들의 잔해 물 시식행사가 한창이다. 소싸움을 육성 및 지원하는 지자체는 대개 축산업이 중시되는 동네들이다. 안에선 소들이 치고받는 가운데 바깥에선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며 축산업 홍보가 한창인 풍경. 공짜 고기 시식에 반색하며 몰려드는 사람들. 관객은 자연스레 그로테스크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번 챕터의 결말쯤 되면 감독의 의중은 명백해진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다음 장에서 전면화된다.

 

"그만 좀 하소"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그만 좀 하소> 스틸 이미지

2_3. 결국, 사람이 문제다

여섯 번째 이야기. <소싸움이 사람 싸움으로>는 이전까지 소와 사람이 균형 있게 배분되던 출연 분량을 거의 온전히 포기하고 사람에게 집중하는 챕터다. 무대는 전라북도 정읍이다.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저조한 재정 자립도 지역인 정읍의 시장은 이전에는 연 1회 진행하던 소싸움을 상설화하려 시도한다. 지역 내 축산복합지구에 백억 대 예산을 투입해 새로 소싸움 경기장을 건설하려는 정읍시의 야심찬 시도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듯 보였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뒤부터 지역사회 내에선 찬성과 반대로 나뉜 힘겨루기가 내전의 형태로 계속 진행 중이다. 시의회 내에서의 찬성과 반대 논쟁이 방송 영상을 활용해 상세하게 소개된다. 거의 심층 기획 시사진단 수준이다.

그와 함께 정읍 지역 정치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 소싸움이 벌어지는 특정지역 전반의 공통 특징과 분위기가 관객에게 이모저모 해설된다. 소싸움을 비판하는 ‘인간’들이 대거 출연해 관련 상황을 해설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개가 쭉 연결된다. 허은주 ‘정읍에 살며 소싸움을 반대하는 수의사’ 허은주(올해 개봉한 90년대 대학가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현재를 담은 강유가람 감독의 <우리는 매일매일> 주인공 중 일원이기도 한!), ‘정읍시민’ 여럿, 권대선 정읍녹색당 공동준비위원장 등이 등장해 지역 내 현황은 물론 ‘묻지마 개발’ 논리가 횡행하기 딱 좋은 낙후된 기초지자체 현실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소보다는 소를 이용하려는 인간들의 욕망이 본 챕터에선 유독 두드러진다.

이제 드디어 마지막 이야기다. <보이나요 나의 눈물이, 들리나요 나의 소리가>. 직전 챕터에 이어 카메라는 정읍의 상황 후반전을 전개한다. 감독은 전반부에서 보여준 반대편에 대한 존중을 과감히 생략하고 직진하기 시작한다. 논란 속에서 정읍 소싸움대회가 개최된다. 소싸움 현장은 전문 사회자와 흥을 돋우기 위한 연예인, 지역 정치인과 유력자들이 집결해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현장에서 비판 선전물 배포와 일인 시위를 진행 중인 반대 운동 측 시민을 카메라는 따라가기 시작한다.

잔칫집에 재 뿌리는 격이라 행사장 용역은 일인 시위 피켓을 따라다니며 가리거나 방해하고 시위자는 어느 순간에 너무나 상황 자체가 기가 막히는지 실소해버리곤 한다. 노골적인 용역의 행동에 눈살 찌푸리던 다른 시민이 끼어들어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소는 어느새 주인공에서 한참 밀려나 보이지 않는다. 벌어지는 탄압보다 더 차가운 기분을 느끼게 할 장면이 다음으로 등장한다. 반대 운동 생각을 담은 유인물을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시민에게 소싸움을 구경하던 (아마 대다수가 찬성 견해일) 관중들의 찡그림과 비웃음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투쟁 현장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익숙할, 잔인한 연극을 보는 기분이다. 그리고 다시 드러나는 소의 슬픈 눈의 시간. 그 순간에 깔리는 감정 과잉의 배경음악. 감독의 입장이 명백히 확증되는 순간이다.

 

"그만 좀 하소"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그만 좀 하소> 스틸 이미지

3. 전통과 학대를 넘어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결론

 

계몽과 논쟁을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의 마무리는 친절하게 소싸움 관련 현황을 자막 해설로 정리해 보여준다. 지역 발전이란 명분과 전통문화 진흥이란 방패 아래에서 실제 목적은 별개인 모순점이 다시금 확인되는 대목이겠다. 지역 정치인과 축산업 세력의 친화적 관계가 재차 강조되면서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의 작품이 종결된다. <그만 좀 하소>는 명확한 주제의식을 쿵-딱 쿵-딱 정해진 순서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찬성과 반대, 두 입장 중 일방에겐 후련하게, 상대방 진영에선 불편해하는 게 당연한 반응으로 나와야 정상일 <그만 좀 하소>이겠다.

그럼에도 ‘소싸움’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해도를 가졌던 이들에겐 꽤 입문용으로 (특히 전반부는) 유용한 교재로 활용될 만하다. 주제와 목적을 콤팩트하게 잡고 그에 충실히 따라가는 스타일의 다큐멘터리다. 소의 슬픈 눈이 예쁘게 다가오고, 고기가 되지 못한 소의 운명이 처연하게 느껴지는 만큼 인간이란 종의 모순과 잔인함이 그로테스크하게 전해져오는 뒷맛을 남긴 채.

 


작품 정보

 

그만 좀 하소 Locking Horns

2021, 한국, 다큐멘터리, 71분

감독 심영화

2021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시청자 관객상-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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