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 원더박스, 2020년 11월 4일, 지은이 궈징, 옮긴이 우디. 해제 정희진

 

1월 23일, 우한이 봉쇄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는 사람이 없었다. p16

 

어쩌다 책이 또 일기다. 난해한 글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책을 세련된 맛으로 포장하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프롤로그 덕분이다. 무겁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개인의 생존일기다. 전염병의 심각성을 말하기보다 단절된 마음을 회복하고 서로를 도와 치유하려 한다.

작가 궈징은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활동가다. 중국 최초로 남성만 채용한다는 취업 성차별에 소송을 제기하고 승리한다. 지금은 074직장여성법률핫라인을 만들어 취업 성차별에 맞서고 있다. 봉쇄는 관계를 단절하게 하고 무력감을 가져온다. 갇힐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궈징은 봉쇄된 도시에서 온라인으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일기를 쓴다.

일기 쓰기는 봉쇄 기간 중 내 일상을 복구해 준 활동 가운데 하나였고, 나를 다른 사람과 연결해 주었다. p16

 

강가에서 햇볕을 쬐고, 달리기한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개를 산책시킨다. 늘 제자리일 것 같은 일상생활이 봉쇄 이후 판타지가 된다.

겨울날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가 한가롭게 햇볕을 쬐는 거다. 강물이 물가의 암석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데, 그게 이상할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p95

도시가 봉쇄된 뒤, 나는 예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한다. 이를테면 주변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아마 세상의 일부분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겠지. p216

 

페미니스트들의 수다는 굉장히 다채롭다. 특히 〈가장 이성적인 나의 장례식 모습〉과 심리학자 아서 아론의 〈사랑에 빠지게 하는 36개의 질문〉은 흥미롭다. 심리적으로 봉쇄된 도시의 사람들이 수다에 응용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집을 나오거나 거리를 다닐 수 없다. 개인은 가게에서 물건을 살 수 없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죽음의 행렬이 끝없는, 봉쇄된 도시의 집에 나 혼자다. 코로나 상황은 철들지 않은 나이에 경험한 죽음으로,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기억으로 각인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을 치유해 주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변을 밝히고 힘든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한다. 궈징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해졌다. p33

개인을 때려잡는 쪽이 훨씬 더 쉬운 법이지만, 우리가 사회 구조 속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지금 느끼는 절망감은 그 책임을 어느 특정 개인에게 돌릴 수 없는, 부패한 사회 제도와 구조에 대한 실망이다. 자원과 권력을 가진 정부가 뭔가 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니까. p42

이렇게 터무니없는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터무니없음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는 것뿐이다. p64

 

 

중국 정부는 70여 일 동안 우한을 봉쇄했다. 세계 경제학자들은 중국식 권위주의가 자국민을 더 보호하는 상황을 미국식 자유주의 국가와 비교하며 주목했다. 궈징과 다수의 시민이 우한의 실상을 SNS에 올리면 특정 단어는 검열되었고, 글은 삭제되었다.

“리원량이 죽었어!”
또 한 친구가 말했다. “이건 공정하지 않은 죽음이야. 우리가 지금 살아 있는 건 그냥 우연이야.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고.”  p133

다른 사람에게 리원량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그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p135

희망이 있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니까 희망이 생기는 거다. p234

 

궈징은 기록한다는 책임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매일 밤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온라인에서 보이지 않는 친구들과의 연대는 검열과 감시에도 지속된다. 현재 파산설이 도는 헝다그룹이 봉쇄 직전 주택 대규모 할인 판매에 들어간다고 나온다. 우한이 연기로 덮였다는 해외 기사를 체크한 사실은 보이지 않는다.

가족이 격리된 뇌성마비 환아를 단지 직원들이 소홀히 돌보는 바람에 아이가 집에서 굶어 죽었고, 어떤 고양이는 주인이 격리되면서 단지 직원 손에 생매장당하고 말았다. p102

밖에 못 나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 가운데는 집에 활동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팍팍할지 가늠이 잘 안된다. p224

사람들은 봉쇄 속에서 서로 돕기 위해 항간의 소문을 퍼뜨린다. 공동구매를 비롯한 수많은 정보가 스마트폰을 통해 오고 간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없는 노인들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p228

 

서울 면적 14배나 넘는 우한이 봉쇄 가능했던 데서 통제와 감시가 일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식료품은 공동구매로 잘 보급되었다. 단지마다 능동적 집단 감시체제가 촘촘히 작동했고, 주체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코로나 확진을 받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지 못해 한참을 울다가 다리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연결해 있다는 사실은 혼자라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낸다. 먹는 것과 마스크, 의약품의 수급에 문제가 있다고 쓰자마자, 마스크를 좀 보내주고 싶다, 라면을 쟁여두라, 오래 보관되는 채소를 사라, 먹는 것도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같이 곁에 있어 드리고 싶다는 댓글들이 마음을 울린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댓글은 사회활동가의 신념을 지탱하게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한다.

 

“팬데믹의 원인은 ‘돌봄 노동(살림)’을 비하하고 ‘자연 파괴(죽임)’를 추구해 온 인간의 경제활동이다.”

코로나로 워킹맘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남성보다 더 많은 경력단절을 겪는다. 다시 여성을 평가 절하된 돌봄 노동의 시대로 가둔다. 페미니스트들이 돌봄 노동의 공적 가치 상향을 주장하지만, 강요되는 모성애와 공고한 가족중심주의 결탁의 이면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중요한 사실은 공산주의와 국가권력 주의를 선택한 중국마저도 돌봄 노동은 모든 여성에게 수평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팬데믹에 살아남은 페미니스트들의 숙제가 이토록 잔인해졌다.

봉쇄가 해제된 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격리되어 있던 가족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친구가 물었다. “도대체 잔인한 게 바이러스니, 아니면 인간이니?”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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