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추위로 몹시 몸이 떨린다. 서둘러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며 이불자락을 찾는다. 닫힌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는 통에 더듬거리며 겨우 끌어당기려니 남편 또한 이불자락을 칭칭 두르고 있다.
지난밤 주먹 하나 들어갈 만큼 창을 열고 잠을 청했다. 늦더위가 모질게도 스멀거리며 올라왔기에. 찬기는 이에 맞서는 중인가 말이지. 꽤 으슬거렸거든.
가을은 가을이다.
근데도. 아직도. 가을은 멀게만 느껴진다.
글쎄. 9월 말.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싶다고 떼를 쓰고 있었던가 보다.
하지만 자연은 몸살이 난 게지.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사거리에서 조금은 이른 시각에 저만치서 서성이고 있었거든.
아니 버티기에 들어간 것인지 말이다.
가을 소낙비로 투정을 부리고
높은 낮 기온으로 배짱을 부리며
숲속에 숨은 모기떼들이 온통 쏘아붙였거든.
이렇게 떼를 부리는 가을과 자연은 줄다리기하고 있다.
지난여름은 나에게 뙤약볕 아래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기까지 후회와 칭찬을 반복하게 했다. 지쳐가고 있었음에도 단 가을을 늘 맛보았기에 우리는 자신을 지탱할 수 있었지 않은가 말이지.
그리웠던 가을이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을, 자연은 쉬이 허하지 않는다.

 

며칠 전 1000고지의 숲으로 향하는 내내 얕게 내리는 던 비가 제법 가파른 편도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까, 곤두서 있는 애처로운 눈빛을 단박에 무시하듯 내린다.
혹여나 싶어 말이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상상하고 싶지 않으니.
그것도 내 시야를 거의 가리며 말이다. 이번 예보도 아침이 되어서야 정확한 예보로 바뀌었다. 그렇다 한들 난 돈키호테를 사랑했기에 내 몸이 부서지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 오르막을 포기할 수가 없지. 아련히 떠오르는 그 시원했던 가을의 꿀맛을 글썽이며 소환해 본다.
조금은 더. 더 단 맛을 보아야 하는데 말이다.
도착한 넓은 주차장엔 꽤 세진 빗줄기가 내린다.
물푸레나무와 신갈나무들이 망부석 마냥 우두커니 서 있지만 진정 숲을 지키는 파수꾼이지 않나. 내리는 세찬 비의 두려움을 온몸으로 견디니 말이다.
그나저나 잦아들었다가도 팔뚝 위로 굵은 방울이 투두둑거린다.
마치 저체온증이라도 걸린 듯 다들 부르르 떨며 차 안으로 들어앉았다. 커피와 고구마 등 간식을 나눠 먹으며 잔잔한 웃음소리가 차 안을 메우며 가을비가 되어 내리고 가을바람으로 새어 나간다. 나누는 대화가 그 여름 에어컨 바람을 쐬며 단단한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나누는 대화보다 더. 더 달콤하다.

 

까칠쑥부쟁이 ⓒ이현정
꽃향유 ⓒ이현정

자! 이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내리는 가을비는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의 툭툭 치는 손길처럼 장난기를 가득히 머금고 있다. 우리는 달래듯 함께 걸어 나간다.
그렇지. 가을을 달래려고
이 빗속을 달려온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침내
숲속 데크 길을 어느 정도 지났을까 말이다.
정영엉겅퀴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까실쑥부쟁이, 꽃향유 등등도
가을꽃의 자태를 여유롭게 실렁이고 있었다.
그때, 바쁜 몸짓이 애처롭다.
딱! 물에 빠진 생쥐를 건져 올린 것인가 말이지.
어리호박벌 암컷 한 마리가 이 비에 가득 온몸이 젖은 채 쉴 틈 없이 정영엉겅퀴꽃 속을 긴 혀를 죽죽 뻗으며 내 두르고 있다.
가을은
어디까지 새침데기를 유지할 것인지.
어리호박벌 암컷에게조차 시련을 던진다. 하지만 어리호박벌 암컷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특도 하다.
이 가을이 끄트머리에 닿아야, 서릿발이 허옇게 서려야 끝날 질투심이다.
태풍이 아직 남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생명체에게 말이다.

 

정영엉겅퀴 ⓒ이현정
정영엉겅퀴 ⓒ이현정

 

우리는 어느새 시루봉에 올라서 가을바람을 달게도 들이마셨다.
지난여름 숲 또한 단 내가 진동하는 꽃들에 취했었는데. 가을 숲속의 단 내음은 또 다른 단맛이니.
가을이 무척이나 오고 싶었나 보다.
가을인가 싶으면 아닌 것 같은 현상들, 마구마구 흔들리는 날씨들을 몰고 다니니 말이다.
그래도 달래본다. 심술부림이 과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가을아 조금만 더 달게 느껴볼게. 부탁이야.

 

글 /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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