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고장 군위에 사는 이영주입니다!”
온라인 모임에서 나를 소개할 상황이 되면 항상 이렇게 한다.
군위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랜선 벗들은 나를 통해 군위라는 지명을 처음 만난다.
이후에 모임이 진행되면서, 절기 따라 변해가는 동네의 풍경을 나누고,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다 보면
랜선 벗들에게 나는 ‘군위 사람’이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군위에서 ‘군위 사람’이 아니다.
친정이나 시댁이 군위가 아니고, 군위에 그 어떤 연고도 없으므로 군위 사람이 아니고
군위 읍내가 아닌, 효령면 내리리에 살기 때문에 ‘군위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을 만나면 ‘어디 사람인지?’를 확인해가는 과정을 몇 번 거치다 보니
마흔이 넘어서 새롭게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디 사람이지?’

 

군위 부계면 창평지 ⓒ내리리 영주

주로 물리적인 공간과 친인척 관계망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구분하는 그 기준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나는 포항 사람이었다가, 대구 사람이었다가, 현재 군위 사람이다.
군위 사람이 되자, 군위의 위치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포항은 포항제철이 있어, 포항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지역인지 설명할 일이 없었다.
대구에 살던 20대 초반에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어머님께서 “포항 살면 아버지는 배 타시나?” 하고 물어보셔서 친구가 “배 안 타시고 떡집 한단다.” 해서 다 같이 하하하 웃었던 기억이 난다.
청년기를 보낸 대구는 내가 사는 동안 ‘보수의 상징’인 지역으로 굳어져 갔고, 지하철 참사 같은 안타까운 인재가 벌어져서 ‘고담 대구’라고 불리기도 했고, 여름엔 너무 더워서 ‘대프리카라’라고도 했는데, 대구가 그러하다는 사실은 뉴스에 늘 나오니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군위에 와서는 평생을 대구·경북에서 살고, 외국 여행 한 번 안 가본 내가
이방인의 감정을 느낀다는 게 너무 낯설고 신기했다.
매사 조심스럽고 어색했다. 어르신들은 당연히 어렵고, 또래를 만나도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나눠야 할지 골라내느라 제대로 친해지기가 너무 어려웠다. 수영장이나 도서관 문화강좌나 군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어디를 가도 부모님 세대 어르신들이 가장 많았다. 나는 어른들과 어울리는 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몇몇 모임은 모임 회비를 내라고 하는데, 어디에 어떻게 쓰는 회비냐 묻고 싶어도 물어보지 못해서, 그냥 안 나가기도 했다. 수영장 모임에는 입회비가 오만 원이나 있어, 깜짝 놀라고 ‘아이가 셋인데 외벌이라 강습료도 겨우 낸다’라고 앓는 소리를 했더니 시원하게 입회비는 면제해 주셨다. (처음부터 강권은 아니었다. 수영 후 식사도 같이하시고 나들이도 가시는 비용^^).
가끔 귀촌해서 그 지역 어르신들과 잘 어울리며 사는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던데, 나는 어렵겠다 싶었다.


대구에서 청년기를 보내긴 했지만, 태극기 부대를 가까이서 마주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정서의 기본값이 ‘태극기 부대’인 어르신들의 대화도 견디기 힘들었다. 나를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내가 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치우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앞으로 내가 익숙한 이야기만 듣고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들었다.


텃밭마다 빼곡하게 심어진 작물들이 실하게 열매 맺도록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 세대의 생산력에 감탄한다. 나는 그런 생산력이 없다. 일하고 또 일했던 시대. 이제는 그 시대의 빛과 그늘을 같이 봐야 할 나이가 되었다. 내 세대가 누린 것들은 다 앞세대에서 왔고, 내 세대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은 다음 세대로 넘어갈 것이다. 내 앞에 어르신들을 판단하는 마음을 내기엔, 나도 이제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중년에 접어들었다는 걸 알아채게 되었다. 너무 공격적인 표현에 귀가 따갑고, 논리 전개가 당황스러울 때가 더러 있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허허’ 하고 지나간다.


장롱면허를 꺼내어 운전 연수를 받고
의성으로 안동으로 구미로 대구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랜선으로도 좋은 인연을 맺어나갔다.
‘오소희 작가님’의 블로그에서 만난 모임들이 네이버 카페 ‘언니 공동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벗들이 함께했다. 정서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들을 좀 만나고 나니, 힘만 빠지는 정체성 고민은 접어둘 수 있었다.

 

군위 밖에 나가면 군위 사람이 되고
군위 안에서는 새댁이, 아기들 셋인 집 아지매, 내리동 사람, 포항 사람…이 되었다.
모두 나다.
마주 앉은 사람과 진솔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나도 혹시 마주 앉은 이를 파편적인 정보로 서둘러 판단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도 어디 사람인지를 말할 자리가 있다면
나는 지구인이라고 말해야겠다.
이병한 작가님의 ‘지구 세대’라는 표현에서 가져왔다.

 

앞으로의 미래세대, 지구 세대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소속감이 지구와의 일체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작가,
동서 저널 : 네이버 블로그(naver.com)

지금은 군위에 거주하니까, 군위에 거주하는 지구인.
다음은 또 어디 사는 지구인이 될지 모를 일이다.
어디에 살게 되든지, 나를 품어주는 거주지에 감사하며 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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