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동료 이성우 활동가를 추억하며…
보고 싶은 동료 이성우 활동가를 추억하며…
  • 김성열
  • 승인 2021.10.14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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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성우 활동가. 

성우와의 첫 만남은 2017년 포항 지진 다음날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스피커폰의 잡음이 섞인 흐릿한 목소리로 “나도 이제 살고 싶어요…”라고 했었다. 식사 중이었던 나는 얼른 통화를 마무리하고 동료와 함께 포항 창포 주공으로 향했다. 12층으로 올라가서 벨을 누르는 순간까지도 성우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할지 궁금했었다.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아무도 나오지 않아 약간 멈칫하다 문을 살짝 열었더니 그제서야 들리는 성우의 목소리.

“들어오시면 돼요.” 

방까지 들어가는 거리는 5미터 정도였고 방 쪽으로 열린 문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 우측 구석 벽에 등을 기대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앉아있는 성우를 만났다. 성우는 얼핏 봐도 말라있었고 이발을 한지 오래된 것 같은, 마치 애니메이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처럼 눈을 찌를 정도의 길어진 머리카락과 면도를 하지 않아 짙은 검은색 수염이 입술에 닿아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센터로 연락을 준 사연과 살아온 과정을 2시간 정도 대화를 하며 성우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다.

성우는 근육장애가 있다고 하였고, 어머니도 같은 장애로 힘들어하셨다고 했다. 혼자서 생활하며 활동지원 90시간을 받으며 살고 있었고, 혼자서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37살이였던 성우는 20살 즈음 몸의 이상이 시작되었고 어머니의 장애를 쭉 지켜봐왔던 그는 자신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기에 세상과 스스로 단절하고 칩거 생활을 17년간 했다고 했다.

 

 

그런데 포항에 지진이 일어났고 유일한 혈육인 시집간 여동생이 오빠가 걱정돼서 한달음에 달려와 혼자서 휠체어를 힘들게 태우는 모습을 보고 동생에게 짐이 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니, 포항에도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으니 그쪽으로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마음에 검색을 했고, 홈페이지가 있는 비슷한 기관에 연락을 했으나 포항시로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고 포기하려는 순간, 홈페이지도 없고 정보도 검색되지 않는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당시 센터는 시작하는 단계여서 홈페이지도 없던 시절이었다) 전화번호를 보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렇게 본인의 얘기를 시작했고, 훗날 센터 활동을 하면서 워크숍에서 성우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길 “센터 동료들이 나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고 느꼈기에 세상과 단절했던 나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 우리는 활동지원 시간부터 늘리기 위해 노력을 했고 결국 481시간이라는 당시 경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지원받게 되었다. 외출과 활동이란 것을 함께 하기 시작했으며 밤이면 성우 집에 모여 게임,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성우는 당시만 해도 혼자서 밥은 먹을 수 있었고 무리하지 않으면 밤새도록 수다도 떨 수 있는 체력이 되었다. 성우는 근위축으로 몸의 근육이 마르고 호흡이 힘들어지는 장애였다.

 

물놀이장에서 이성우 활동가(사진 오른쪽)와 하용준 활동가(왼쪽).
포항 지진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는 이성우 활동가. 이미지 출처=방송 영상화면 캡쳐

거동이 힘들고 본인이 익숙하고 편한 환경이 아니면 신변처리가 힘들었기에 우리는 성우 집에서 주로 만났고, 센터 사업도 구상하고 회의도 하며 성우 집은 제2의 센터가 되었다. 센터 운영위원으로, 자립생활 지원 상담가 역할도 하면서 장애해방을 위해 전국을 다니는 활동가였다. 때론 귀신을 본다며 자신을 지켜주는 귀신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너스레도 떨었고 회원들의 갈등을 중재하면서 자연스럽게 센터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포항 지진의 인연으로 중증 장애인의 재난 상황을 증언했다. 일상이 재난이라고 외치며 정책 개선에도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았으며 경북에 최초로 포항에서 시작한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투쟁 선봉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성우를 기억하면 성우가 밤에 신변처리가 급해서 새벽에 여러 번 연락한 것과 목욕을 도와줬던 것이 생각난다. 성우는 첫 만남 때도 머리 감기를 부탁하였고,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 병원으로 갈 때도 목욕을 부탁했었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성우의 근육은 빠져갔고 가래도 뱉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고서야 그렇게 가기 싫었던 병원을 가야 했다. 병원생활도 오래 할 수 없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장기 입원 시에 한 달만 가능했기에 목에 구멍을 뚫고 석션이라는 의료 행위도 필요해졌다. 하지만 집에서 활동지원사님은 석션을 하면 안 되는 규정이 있었고 입원, 재입원을 반복하다 결국은 요양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요양병원에서 2021년 8월 27일 새벽 4시 30분에 조용하게 숨을 거뒀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10월 14일이고 성우가 떠난 지 49일이 되는 날이다. 나는 조금 후에 동료들과 성우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생전에 유언처럼 자기가 죽으면 찾아오기 쉬운 곳에 뿌려 달라 했던 약속을 지켰다. 언제든지 성우가 생각나면 난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성우는 비록 옆에 없지만 마음속에 항상 동행하면서 함께 활동할 것이다. 성우가 떠나면서 던져준 메시지가 분명 존재하고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초심을 다시 한번 다잡는다. 그곳은 아픔이 없고 먹고 싶은 음식들 다 먹으면서 무릎 펴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길 바라며 언젠가 만날 그날을 기다리면서 글을 마친다.

 

8월, 이성우 활동가를 떠나보내며.



글 / 김성열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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