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리 영주

딱 한 번, 아이들 교육 때문에 좀 더 큰 규모의 학교가 있는 곳으로 다시 이사 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자유학구제’가 시행되면서, 몇몇 지정학교 사이에 군위 읍내 초등 아이들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군위 읍내 큰 규모 초등학교 앞에 다른 초등학교 홍보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양육자들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오게 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대화거리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군내 한 작은 학교가 ‘방학 없는 학교’로 아이들과 그 양육자를 설득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듣자마자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이 왔다. 하지만 그 느낌은 내 편견일 수도 있고, 교육에 대한 나만의 고집일 수도 있으니 찬찬히 내 느낌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소문을 통해 ‘아이당 월 몇십만 원 교육비도 지원해 준대!’라는 내용도 접하자, ‘아! 진짜 이사 가야 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문들이 일단 두려웠다. 아이들을 방학 때도 다 돌봐주고, 아이들을 보내만 주면 돈도 준다고 양육자를 설득하는 교육기관이라면, 나는 그 교육기관을 신뢰할 수가 없다. 실적에 눈이 시뻘게진 괴물처럼 느껴졌다. 한편에서는 실적이 필요하고, 한편에서는 돌봄의 피로감을 덜고 싶어 하는 그런 보호자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돌봐지겠는가 말이다.

머릿속에 지옥도가 펼쳐진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내 두려움이 부풀린 상상이다.

확인해 보니, 작은 학교를 살리려는 해당 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양한 체험학습을 방학에도 배치한 것이었다. 어려운 조건에서 교육청의 지원을 끌어내면서 동시에 선생님들이 방학에도 출근하셔서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것이었다. 알아볼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깊어졌다. 안 그래도 짧은 방학에, 업무량도 많은데, 연수도 받아야 하는데, 방학에도 아이들에 대한 교육과 돌봄이 이어진다면 선생님들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양육자의 요구도 이해가 되는 것이 아이들이 학교라도 가야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다. 동네에 또래가 없으니, 방학이 되면 게임으로 직행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기에 농번기가 겹치면 아이들을 돌봐줄 손이 정말 절실한 것이다.

나는 좀 놀랐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사정이 이해는 되었다.

 

방학 동안 교사를 학교에 붙잡아 두는 것은 교육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열심히 가르친 교사들이 많이 느끼고 체험하고 산지식을 가슴에 품어 올 수 있도록

교사들이 개학 후 돌아와서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도록 우리는 기꺼이 그들을 더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은 누구보다 먼저 배우고 익혀서 가슴에 담은 배움을 나누어 주어야 할 ‘선생’님이다.

- <학교 내부자들>, 박순길, 에듀니티

 

<학교 내부자들>을 읽어가다가 위의 구절을 만나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하는 깊은 질문이 떠오른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될수록 무기력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별수 있나 하는 체념 대신 뭐라도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의 양육자인 나는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 좋은 자극을 받길 항상 기도한다. 그 마음으로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

교사의 전문성과 헌신이 아이들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각종 지원과 교육청 여러 행정전문가의 애씀이 아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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