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의 미래를 향한 기억 투쟁의 시간

 

"노회찬6411" 포스터 이미지
<노회찬6411> 포스터 이미지

1_박제가 되어버린 노회찬을 아시오?

 

2018년 7월 23일 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한국 진보정당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적을 남긴 고인을 기리며 여러 기념사업과 추모행사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영상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고인에 대한 전기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이 첫선을 보였다. 이후 내부 시사를 거쳐 10월 중순부터 일반에 개봉한 상황이다. 한국사회의 양당 독식 구도 중심 정치 지형에서 제3 정치세력의 특정한 결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를 차지했던 고인의 위상에 비춰볼 때 추모 영화는 당연히 나올법한 기획이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염려가 앞선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노회찬 의원이 생전 마지막 맡았던 당직은 정의당 원내대표다. 의원 수가 적어 비교섭 단체였던 정의당의 원내대표란 위치는 거대 양당 원내대표의 위상과는 급수가 다른 자리다. 일 거수 일투족이 국회 출입 기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그 둘에 비교해 소수정당 원내대표는 늘 고래 등의 새우 신세다. 그런 와중에 검증된 개인기와 온갖 궁리를 다 동원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위치다. 어떻게든 진보정당의 존재감을 높이고 ‘2중대’ 소리 안 듣도록 하면서도 비현실적이라는 무시나 외면은 안 당해야 하는 줄타기가 그의 앞에 늘 놓인 길이었던 셈이다.

이후 정의당이 정부 여당과 대립각을 세울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인터넷 댓글 창에 달리는 고정된 주장이 있다. 노회찬 의원이 타개한 후 정의당은 끝났다는 둥, 노회찬 정신은 사라졌다는 둥 상투적인 문장들이다. 그 주장을 대충 뭉뚱그려보면, 노회찬 의원이 살아 있었다면 정부 여당과 대립하지 않고 잘 협조해서 보수 야당을 고립시켰을 텐데 지금의 정의당은 그저 더불어민주당 딴지에 집착하는 ‘가짜’ 진보정당이라는 셈이다. ‘진짜’ 진보정당의 기준은 대체 뭘까? 정말 고인이 생존해 있다면 모두가 WIN-WIN 할 수 있었을까?

그런 궤변을 접할 때마다 죽은 노회찬은 오직 현실의 진보정당들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진정성을 상실한 가짜라는 선전에만 유용한 존재로 활용될 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생전에 평생을 바쳤던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성찰이나 평가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이들이 익명으로 마치 진보정치 평론가라도 된 양 손가락을 놀리고 클릭을 해대는 것을 접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떠오르곤 한다. 과연 노회찬은 어떤 사람이기에?

"노회찬6411" 포스터 이미지
<노회찬6411> 포스터 이미지

2_위인전이 아닌, 현실에 영감이 되는 전기 영화란

 

‘역사 인물’을 영화로 다루기란 무척 매력 넘치는 소재 거리다. 영화 홍보 이전에 인물에 대한 인지도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득만 있는 건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중심으로 삼는다면 홍보엔 애를 먹겠지만 감독은 표현에 있어 재량이 넓어진다. 그러나 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삼게 된다면 반대로 주인공의 존재와 생애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고, 평소 그를 알거나 지지하던 이들의 시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그 찬반이 격렬히 나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외줄 타기 혹은 살얼음판 걷기에 진배없는 작업이 될 테다.

고인을 다룬 첫 전기 다큐멘터리 영화 <노회찬6411>은 그런 고난도 조건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전에 이미 잘 알려진 정치인이었고, 지금도 인터넷 검색 잠깐만 해보면 그의 생애에 관한 잘 정리된 정보 글을 접할 수 있다. 문제는 평가와 형상화다. 고인이 남긴 발자취와 관련한 사회적 평가를 어떤 식으로 담아낼지, 어디에 초점을 둘 지가 관건이 된다.

하필 해당 작품의 제작사가 故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곳이기에 꽤 많은 이들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노무현입니다> 2처럼 만들어지지 않을까 우려한 게 사실이다. 그 예상치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온전히 객관적 평가를 하기엔 3년은 너무 짧은 시간인지라 냉정하게 고인의 공과를 평가하고 연구 결과를 반영하기란 애초에 달성하기 어려운 숙제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거기에 영화의 공동제작자로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이 함께 하기에 본 작품에 파격적인 면모를 기대하는 건 과도한 주문일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고인의 인생역정을 그저 선량한 ‘개인’으로 가두는 게 아니라 객관적 평가를 어떤 식으로 수행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영화가 그저 평소 고인을 지지하던 이들의 마음을 달래거나 감성에 호소하는 신파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삶을 어떤 관점과 기준으로 형상화해낼 것인가의 문제로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행하게 된다. 이 숙제는 국내 다큐멘터리계에선 드문 방식, ‘관찰영화’ 작업을 일관되게 진행해온 민환기 감독이 맡았다.

민환기 감독은 그동안 다양한 인물을 관찰하는 데 장기를 보여 왔지만, 저명인사를 작업한 적은 드문 편이다. 인디 뮤지션으로 잘 알려진 요조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사회적 기업 내에서 벌어지는 구성원 간 갈등을 다룬 <미스터 컴퍼니>, 뮤지컬 시범학교로 선정된 시골 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과정을 담은 <뜻밖의 수업>, 4.3과 강정, 제2공항이라는 제주 근현대사를 인물들로 엮어나간 <제주 노트>와 그 과정에서 만난 제주 녹색당의 지자체 선거운동 과정을 담은 <청춘 선거> 등의 작업을 선보였던 감독과 한국 진보정치의 상징이자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인 노회찬 의원의 생애가 만나 <노회찬6411>은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노회찬6411" 스틸 이미지
<노회찬6411> 스틸 이미지

3_절충과 중용이 돋보이는 전기 다큐멘터리

 

그렇게 탄생한 <노회찬6411>은 감독의 평소 스타일을 기대한 이들에겐 평이한 인물 전기영화로 보일 법하다. 그만큼 아주 파격적인 재해석이나 충격 폭로 같은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전기 다큐멘터리에 기대하는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전형성 가운데 감독의 작가로서의 인장이 감춰진 듯 박혀 있음을 영화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확고하게 집중할 지점을 설정하고 제대로 그 방향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우선 이 영화는 고인이 일생을 바친 영역, 즉 진보정당 의제가 그의 개인적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해석 방향을 확고히 잡았다. 영화 속에서 장년 이후 노회찬의 삶은 철저하게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한국 진보정당운동사의 총집 편을 보여주듯 통합된다.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주인공의 삶은 온전하게 21세기 한국 진보정당의 흥망성쇠와 그대로 직결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노회찬6411>은 고인의 전 생애를 요약해 소개하지만, 성장기 시절을 제외하면 진보정당 운동에 몸 담기 전 노동운동가 경력이나 1991년 민중당 창당 이후부터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기 전까지의 부침을 거듭해왔던 정치 활동 시기는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는 편이다. 내용이 사회운동가들 외엔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과감히 생략한 판단일 테다. 또한 그의 정체성에서 기본 바탕이 된 노동운동가 시절과 ‘인민노련’에 관련된 내용은 2005년에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방송분인 “한국의 진보를 말한다” 3부작으로 비교적 상세히 소개된 바도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분량을 덜어낸 만큼 영화는 온전히 관객들에게 친숙한 대중정치인 노회찬의 활동 시기, 2000년 민주노동당 출범 이후 죽음을 맞기까지 약 20년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고 있다.

1990년대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이후 동료들이 하나둘 운동 현장을 떠나 소시민의 길로 숨어들거나 ‘전향’ 혹은 ‘변절’이라 불리는 행보로 출세할 때 노회찬을 비롯한 일부는 끝끝내 그 길에 왜 남게 되었는가? 다들 불가능하다며 포기하거나 외면하던 진보정당 운동의 당위성을 확신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버텼는지는 워낙에 중대한 과정이기에 요약 설명된다. 돈도 힘도 없는 가운데 사람들을 규합하고 이끄는 일은 엄청난 고난의 길이다. 그 과정은 영화에 모든 내용이 담기길 기대하기보단 영화를 본 이들의 각자 기억과 경험을 반추하는 토론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민주노동당 창당 후 21세기 초에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이 도출된다. 노회찬 또한 속된 말로 ‘금배지’를 달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그다음부터다. 정치인 개인으로서 노회찬은 이제 유명 인사가 되지만 정치 국면은 순탄치 못했다. 민환기 감독의 ‘관찰영화’적 특성은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거듭되는 좌절과 실패 속에서 생전의 노회찬 의원이 시기마다 어떤 고민과 판단을 겪어왔던가를 충실하게 재현하려 노력한다. 그 시행착오와 실수의 기록이 한국사회와 정치사에 어떤 족적으로 남게 되었는가에 대해 감독은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고찰해 보자는 식으로 당시 쟁점과 상황을 선명하게 그려 보인다.

직접 고인을 취재하지 못한다는 결정적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워낙 보폭이 넓고 치열하게 활동하던 고인의 생전 발자취는 영화에서도 방대한 지분을 점유한다. 감독은 거대한 역사 풍경화를 그리듯 정교한 틀을 준비해 놓고 여러 요소와 사건들을 조밀하게 배치해 내는데 솜씨를 발휘한다. 그런 꼼꼼한 연출과 편집 덕분에 겉으로는 개인적인 전기 다큐멘터리의 전형성과 별반 차이나 보이지 않음에도 실제 내용 면에서는 독특한 결과물로 빚어졌다.

통렬한 촌철살인의 풍자와 유머 감각을 뽐내며 진보정치인으로는 드문 유명세를 치렀던 고인의 정치적 행보는 사회 일반에도 꽤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노회찬6411>은 그렇게 파편적으로 개개인이 간직하고 있을 고인의 일생이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었던가를 기둥을 세우고 줄기를 뻗어 보이게 만드는 큰 그림을 꾀한다. 사회의 불합리와 기득권에 맞서 6411번 버스 승객들의 권리를 옹호하던 평생에 걸친 싸움이 본 작품을 통해 재구성돼 한눈에 펼쳐진다.

 

"노회찬6411" 스틸 이미지
<노회찬6411> 스틸 이미지

4_ <노회찬6411>에서 무엇을 얻어내야 할까?

 

우리는 그가 평생을 바쳤던 미완의 프로젝트를 영화를 통해 천천히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고인이 몸담았던 진보정당 운동이 내디뎠던 공과에 대해 성찰하고 진단하게끔 자연스럽게 태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고인의 생애를 반추하는 개별적 체험은 영화의 시간 동안 당대 한국사회에서 노회찬과 진보정당 운동이 어떻게 인식되고 자리 잡아야 되는가라는 공적 담론으로 변환 과정을 겪는다.

영화에는 고인이 대중정치인으로 활동하게 된 이후 국면들을 6411번 버스 주요 정거장 들르듯 시간 순서대로 빼곡하게 집약해 놓았다. 짧지 않은 옥중 생활 후 출소해 보니 젊음을 바쳤던 이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폐허 속에서 함께 뜻을 모았던 ‘동지’들을 어떻게 견인할 것인가? 십자가를 짊어진 존재로 영화는 노회찬 의원을 규정하는 듯 보인다. 비합법 지하조직이나 비밀결사가 아닌 공개적 대중정당으로서 태세 전환을 결심한 그는 지행합일이라는 듯, 이의 구현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영화 속 언행처럼 50년 걸릴 줄 알았는데 5년 만에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된다. 그리고 2002년 대선 대응, 2004년 총선에서 최초의 원내 입성까지 대중정치인으로서 노회찬의 탄생 과정은 한국현대사에서 50년이 걸린 진보정당 운동의 약진을 추억하는 이들에겐 말 그대로 ‘벨 에포크’의 시절이자 ‘희망의 날들’이었다. 영화는 충실히 당시 자료들을 모아서 회고한다. 하지만 그 좋았던 시간은 영화 전체로선 지나가는 정류장에 불과하다. 영화와 감독이 주목하는 건 그다음부터다.

곧 ‘진보정당의 가을’이 찾아온다. 과거 사회운동의 한계를 딛고자 했던 진보정당 운동은 (영화를 만든 이들의 관점에 입각하면) 결국 그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고생 끝에 이제 뭘 좀 해보려는데 당은 ‘운동권 동창회’라 영화 속 인터뷰 대상자들이 자조하던 ‘정파조직’에 의해 훼손된다. 이 지점부터는 여전히 현재도 격렬하게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분당, 진보신당 창당, 다시 통합진보당으로의 결합과 이탈, 정의당 창당까지의 시간이 영화 내내 흐른다. 개별 정치인으로서도 낙선과 의원직 상실 등의 시련이 잇따라 벌어진다. 그런 우울한 시기 동안 고인의 생전 모색, 재기와 낙마 과정이 집요하리만치 꼼꼼하게 영화 속에서 재현된다.

사실 영화의 핵심적인 지점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고인의 마지막 10여 년에 있다. 노회찬과 그가 몸담은 진보정당이 2000년대 초반 이후 겪어왔던 부침과 방황이 한국 진보정치사의 ‘미싱 링크’로 떠오른다. 고인의 인간미를 추억하는 이들에겐 다소 당황스러운 전개다. 감독은 노회찬 의원의 화려하고 친근한 스타성 대신 그가 왜 대중정치인이 되려고 했는가, 그를 통해 무엇을 구현하고자 했는가를 분석한다. 그저 사람 좋고 놀기 좋아하던 낭만파 청년이 시련과 고초 속에서 그렇게 뼈를 깎아가며 분투하게 만든 일생 목표가 무엇이었나를 조명하는데 영화는 아낌없이 집중한다. 그런 면에서 <노회찬6411>은 <노무현입니다>의 후광 아래 있는 작품임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정치적 기획 측면에서 꽤 본격적으로 변주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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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6411> 스틸 이미지

5_ 다시 6411번 버스가 출발한다

 

노회찬 의원을 다룬 최초의 전기 다큐멘터리로서 본 작품에 아쉬워할 이들이 많으리라 본다. 고인을 둘러싼 수많은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한 평가와 공과를 다루는 작업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좀 더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본래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는 교차 검증이 끝나려면 한 세대는 지나야 하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의원이 상징해온 진보정치의 흐름과 그의 노선은 일방적으로 측량하기엔 너무나 넓고 깊다.

한편, 감독 특유의 관찰적 시선을 기대하던 이들에게도 영화는 통속적으로 다가올 테다. <노회찬6411>에는 감독이 비교적 사용을 자제하던 감성적 음악이나 최루성 삽입장면들이 꽤나 있다. 인위적 감정조작과 유도를 지양하는 감독의 평소 작업을 선호하던 이들이라면 실망할 수 있겠다. 반대로 고인에 대한 개인적 추억과 감성적 접근을 원한 이들에겐 영화가 그럴 틈을 별로 주지 않아 불만족일 테다.

<노회찬6411>은 특히 중반-후반부를 연결하는 지점부터 개인의 추모 영화를 넘어 21세기 진보정당 역사의 주요 지점을 설명하는 데 주력한다. 그런데도 몇몇 장면에서는 꾹꾹 억제해왔던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터뜨리고 한다. ‘6411번 연설’이나 ‘50년 된 불판’, ‘노회찬은 진박’ 같은 풍자와 위트 만발하던 고인의 입담은 물론, 이른 죽음을 추모하는 손석희 JTBC 사장의 뉴스 클로징 멘트 클립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 ‘결정적 순간’들을 그냥 넘기기란 참 어려운 노릇이다.

<노회찬6411>은 모두가 만족할 최상의 전기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균형감을 유지하며 꽤 준수하게 완성된 작품이다. 故 노회찬 의원의 일생은 그가 생애를 바쳤던 프로젝트, 한국사회 진보적 변화를 향한 도전과 거의 일치한다. 한 정치인의 언변이 수많은 이들을 때로는 통쾌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가끔은 설레게 만들어 왔음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애도와 관심이 그저 고인에 대한 개인적 팬덤 차원의 추모가 되면 안 된다고 감독은 확신을 가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대중의 추모 에너지가 고인이 평생을 고민하고 실천해왔던 미완의 숙제, 한국사회의 진보로 돌려져야 함을 <노회찬6411>은 6411번 버스노선 소개처럼 분명한 입장으로 가진다.

 


작품 정보

 

노회찬6411 The Man with High Hopes

2021, 한국, 다큐멘터리

2021.10.14. 개봉, 127분, 12세 관람가

감독 민환기

주연 노회찬

제작 명필름, 시네마6411

공동제작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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