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났다’, ‘세금을 이렇게 좀 써라’. 2조 원의 예산을 투입한 12년간의 연구 끝에 한국의 독자 기술로 개발되었다는 누리호가 발사된 순간, 미디어가 전한 사람들의 반응은 벅찬 감동과 환호, 자부심이 뒤섞인 것이었다. 같은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굉음과 연기를 내뿜으며 솟아오르는 로켓은 우주를 향해 겨눈 총구 같았다. 파리의 에펠탑에 송전탑이 겹쳐 보였던 과거의 어느 날처럼, 나는 ‘자랑스러운’ 누리호와 북한이 걸핏하면 쏘아 대는 미사일이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은 로켓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 뒤에는 나로도의 하늘과 바다가 있었다. 우주센터의 최적지로 거론되었으나 주민 반대에 부딪힌 제주 서귀포의 대정읍 대신 입지로 선정되는 ‘영광’을 떠안게 된 곳이다. 아름다운 바위들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오래된 비단결(羅老) 같다 하여 붙여진 고운 이름을 가진 섬은 이제 그 바위들을 ‘낡은’ 것으로 보이게 만들 위력을 가진 첨단 기지의 ‘속국’이 되었다. 90년대 중반의 나로대교 건설은 그런 ‘발전’의 시작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로도의 주민에게서 들은 말은 ‘도둑이 없던 섬에 다리가 놓인 후로 온갖 도둑놈과 사기꾼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우주센터는 그 다른 언어들 사이 어디쯤 위치 지을 수 있을까. 그 주민도 누리호를 지켜보며 기뻐했을까.

우주 강국에 다가섰다는 감격의 여운과 46초의 연료 연소 시간 부족으로 인한 ‘절반의 성공’이라는 결과는 국가뿐 아니라 민간의 우주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에 불을 지핀다. 이미 나로우주센터의 ‘제2 발사장 뒤쪽 산 너머 해안 기슭의 청석금이라 불리는 지역’을 평탄화하여 민간 발사장을 건설할 계획이 수립되어 있고, 우주 시장 진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우주센터를 막아낸 제주에서는 국가위성통합운영센터 설립이 비밀리에 추진되었던 것이 드러나 지난 2월 논란이 일었다.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보안시설’로 분류된 센터의 군사적 이용 가능성과 전자파 발생, 곶자왈의 환경 파괴 등을 우려하며 또다시 힘겨운 싸움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주 산업의 발전은 무해한 동화 같은 것이 아니다. 얼마나 더 많은 섬과 바다가 우주 진출의 제물이 되어야 족할는지.

최초의 생명체를 낳은 바다는 그로부터 진화해온 육지 동물의 기원이기도 하다. 레이첼 카슨이 말하듯 인간을 포함한 바다의 후손들은 몸속에 이를 증명하는 ‘바다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피는 ‘바닷물과 비슷한 비율의 나트륨, 칼륨, 칼슘’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의 뼈는 ‘칼슘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던 캄브리아기의 바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육지는 생물이 뒤늦게 적응하게 된 예외적 삶터였다. 우리가 딛고 선 이 대지도 어떤 면에서는 물의 세계 가운데 ‘잠시 솟아있는 땅덩어리’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육지의 신성함을 떨어뜨리기보다는 바다가 갖는 ‘근원’으로서의 의미를 되새겨준다.

우리를 둘러싼, 그리고 우리의 몸속을 흐르는 바다는 우주의 신비가 지구에 선사한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제임스 트레필에 따르면 우리가 해변을 거닐 수 있는 것, 즉 4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다가 얼어붙거나 사라지지 않은 것은 지구가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별(태양)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를 도는,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행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바닷물과 모래는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주로부터 끌어당긴 물질들로 구성된 것이다. 트레필이 ‘우리가 보는 모든 모래와 물이 역사적으로 한 번 이상 우주에 존재했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바다의 아이인 우리는 결국 우주의 아이인 것이다.

위대한 발전의 끝에서 마침내 우리는 우리를 존재하게 해 준 바다와 우주에 총을 겨누는 신세가 되었다. 이 막중한 우주 진출의 과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인터넷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GPS를 개선하며 달 탐사를 할 수 있다는 따위의 ‘안 하는 게 더 나은’ 김빠지는 것들이다. 우주로 확대된 제공권(制空權)을 장악하려는 군사적 목적이나 우주 자원 개발을 통한 경제적 이익과 같은 보다 ‘중요한’ 이유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이 역시 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각국에서 마구잡이로 쏘아 올린 위성들은 이미 우주 쓰레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쓰레기는 아주 작은 것까지 포함하면 1억 3천만 개로 추정되며, ‘아직 쓰레기가 되지 않은’ 위성들도 언젠가 수명이 다하거나 고장 나게 될 ‘쓰레기 후보’들이다. 이와 함께 쓰레기를 처리할 또 다른 위성을 보내는 등의 우주 쓰레기 처리 산업과 관련 기술의 발전도 희망찬 미래를 앞두고 있다. 물론 쓰레기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는 ‘우주 개발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지구의 쓰레기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은 지구의 집이며 따라서 우리의 집이기도 한 우주(宇宙)마저 개발의 대상으로, 그리고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파괴하고 있다.

 

지구를 둘러싼 우주 쓰레기 ⒸNASA

누리호에 대한 해설들은 고속도로의 비유를 여러 차례 들곤 했다. 산업화와 경제부흥을 위한 ‘민족의 염원’이었던 고속도로도 처음에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 모르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머지않아 국가 발전의 중추임이 증명되었듯, ‘우주로 가는 길’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1970년, ‘순수한 우리 돈, 우리 기술로 완공된’ 경부고속도로 개통에 맞춰 만들어진 <고속도로의 노래>는 ‘달려라 자유의 길, 달려라 평화의 길’을 부르짖었다. 지난해 국토부 장관 명의로 세워진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는 조국 근대화와 국가 발전, ‘하면 된다’는 국민정신 고취에 대한 고속도로의 기여를 자랑스레 새기고 있다. 50년 전 노랫말에서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조상 때 못한 일’을 이루고 ‘자주와 부강과 승리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역사를 창조할 것이다. 비록 노랫말의 서두에 실린 ‘산 좋고 물 맑은 고을 고을’은 이제 없더라도. 고속도로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도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누리호를 향한 박수부대의 대열에 섰을까. 지구를 망친 고속도로는 이제 우주를 향해 깔렸다. 달려라, 자멸을 향한 번영의 길이여!



 

글 / 김혜나 대구대학교 연구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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