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7] 〈마을 극장〉이 살찌는 시간
[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7] 〈마을 극장〉이 살찌는 시간
  • 이은주
  • 승인 2021.11.0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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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3박 4일 개인 상담 겸해서 석사 졸업여행으로 엄마와 함께 오고 싶다는 분이 있어 다녀가고, SOS 마을에서 자립을 준비하는 18살~24살 청년 아홉 명이 다녀갔다. 나는 집을 청소하고, 이삿짐이 덜 온 상태라 부족한 이불과 그릇을 마련하고 장을 보고 음식 장만을 하느라 종종거렸다. 이웃에 사는 자연요리연구가이신 ‘홍샘’이 점심 준비를 해주셨는데도 발바닥이 아팠다.

제시간에 담당 선생님과 아이들이 도착했고 어수선한 마당으로 발을 내렸다. 홍샘의 카레를 먹고 몸풀기를 하고 플로잉과 스타카토의 움직임을 연습하고 자립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저녁엔 마당에 불을 피우고 새우와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다행으로 날이 좋아 초저녁에 달이 뜨고 별이 뜨고 며칠 전부터 보이던 반딧불이 녀석도 날아왔다.

청년들은 새로운 경험에 어색하면서도 즐거워했고 밤에는 와인을 마셨다. 20대 대학생들이 ‘불을 처음 피워본다’, 와인 처음 마셔본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같은 불안과 걱정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픈 발은 함께 움직이면서 나아졌다. 어쩌면 프로그램 진행하는 에너지는 10~20%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가고 나서 이불과 빨래를 햇볕에 널어 말리며 웃었다. 옛날 어린 시절 시골 장날 약장수가 “약은 공짜야 그냥 줘, 봉짓값만 받아.” 하던 이야기가 생각나.

 

ⓒ이은주

갑자기 날이 추워져 마당에 살얼음이 얼었다. 다시 날은 풀리고 코스모스는 하늘거렸지만, 그날부터인가 밤마다 서리가 내리고 아침이슬로 처마 밑에 떨어졌다가 안갯속으로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다. 아침 강가에 가노라면 물에서 피는 안개들이 아지랑이처럼 오르고 앞산엔 붉은 바람이 들어 붉으락푸르락한다. 감나무엔 이제 홍시로 붉은 알들이 나뭇잎보다 많다. 약을 친 나무들의 잎은 여전히 푸르게 남아있지만.

그렇게 뜨겁고 숨 막혔던 여름이 가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잘못된 것들을 뜯어내는 데 며칠이 걸렸다. 자원과 인력과 시간과 안전함과 즐거움과 창조의 결핍들…. 그중에 푸르른 밤하늘에 오리온이 날고, 부드러운 구름이 깃털처럼 날아갈 때, 마당에 한그루 감나무가 물 많은 달콤함을 선사할 때,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노래를 부를 때, 가끔 위안과 평화가 발끝에서 올라온다.

다시 공사가 시작되며 20여 일을 집 밖에서 지내게 되었다. 하동과 마산과 경산과 한개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차와 술잔을 기울이며 생태적 삶과 연대를 생각하다, 불씨를 뒤적이며 낯선 삶의 이야기를 듣고 노래를 불렀다. 집이 이리 되지 않았으면 멀리 갈 염을 내지 못했으리라. 노래도. 세상엔 인정이 있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는 법. 쓸쓸할 틈 없이 10월도 갔다.

 

ⓒ이은주

대도시와 달리 마을로 오면서 마을의 자치와 소통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낀다.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길 마지막 코스는 90도로 꺾이는 데다 길이 좁아 생울타리 가지와 대추나무, 감나무들이 가지를 길로 뻗어 시야를 가리고 차를 긁어버리기 때문에 나무 주인과 의논해서 가지치기를 해마다 여러 차례 해야 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나 불을 피우는 일들이 이웃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마을 반상회를 하고 싶어질 정도다. 반상회는 언제 하나, 하고.

그러던 차에 청도 문화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실행해 온 분들이 “와 보이소.” 하여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게 되었다. 인구 감소와 아이들이 줄어드는 문제, 다문화의 정착과 젊은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교육과 문화, 정책과 생태 환경에 대한 주제들.

‘시골살이 할 때는 조용히, 가만히 지내리라 했건만 삶이 그런 게 아닌 게지!’. 가소로웠던 내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난다. 9월이 되면서 가까이 있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 함께 놀고, 선생님과 학부모를 만나 나누는 이야기도 그전보다 더 깊게 가슴으로 몸으로 스미고 짜인다.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도 우리 마을의 일이고 나의 삶의 일부로 더 와 있다. 집을 짓는 긴 시간이 마을마다 다니며 동네 사람들과 <마을 극장>을 하겠노라던 나의 꿈 하나가 더 속을 채우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 11월 2일.

 

글 / 이은주 (65년 성주 생, 동화작가,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경산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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