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을 보내기 아쉬운 듯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도 청아했고 땅에는 무수히도 많은 마른 낙엽들이 나의 귀를 즐겁게 했던 10월의 끝자락이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들뜬 기분이었다.

평소 관심이 아주 많던 차별금지법 투쟁에 미력이나마 함께한다는 것, 이동하는 것 자체가 곤욕이던 내가 이동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눈치 보지 않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도록 함께해 주시는 활동지원사분까지 그날 하루는 나에게도 모든 것이 평등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음 한쪽에는 가을 소풍을 나서는 듯한 설렘을 또 한쪽에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품고 길을 나섰다.

 

차별금지법이 오랜 시간 제정되지 못한 것은 내게 뼈아픈 한으로 남아있다. 장애를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내게도 이제는 장애인 차별금지법과 더불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름을 존중하고 그것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장치가 꼭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그동안 장애인 차별금지법으로 분리되어 오던 장애인, 혹은 이러한 법적 보호망조차 존재하지 않아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만 했던 우리 사회의 수많은 소수자까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사람을 분리하거나 차별하지 말자는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진리가 무엇이기에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이들은 목 터지게 절규하며 수백 리 길을 걸어야 할까?

10여 일을 걸으며 온몸이 지쳤을 텐데도 전동 휠체어를 타는 단 한 명의 나를 생각해 나의 몸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아 밥 한 끼를 함께해 준 미류, 중걸 동지를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측정할 수 없는 평등함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며느리가 남성이면 어떨까요? 안될까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활동가가 말했다. 이 말이 뇌리에 박혔다.

 

대학 시절, 나와는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친구가 힘들어하다가 끝내는 함께하지 못하고 떠나는 걸 보면서 차별과 혐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들어 차별금지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딛는 한 걸음마다 자신을 자신으로 인정받지 못해 몸부림치던 나의 벗의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오랜 세월 숨겨야만 했던 자신의 현실 앞에 친구였던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그때는 어리고 몰라서 혹은 힘이 없어 침묵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

그리고 굽이진 길에서 구부러지는 나의 몸을 잡아 세워주는 동지가 있고, 그 누구든 어떤 이유이든 다름을 거부당해서는 안 되며 그 자체로써 존재하여야 함을 알고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 결코 정의될 수 없고 무엇이 맞고 틀림의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는 굳은 신념이 있다. 설령 정상과 비정상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타파하고자 칠 수 있는 작은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있다.

이번 평등길은 차별을 차별로 보지 않고 정당화하는 세상을 향해 함께 외친 포효였다.

끝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하며 아픈 발을 내디디고 있을 모든 이에게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10월 23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길#1110’ 행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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