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하순의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내던 고향 동생을 보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전동휠체어가 신체의 일부인 중증 장애인인 나에게 시외 이동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전동휠체어로 시외를 이동하는 방법이라곤 시외 이동이 경북으로만 제한된 특별교통수단인 ‘부름콜’과 전동휠체어 좌석이 있는 기차뿐이다.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지역사회에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이동 수단이 있지만,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탈것’은 늘 우리가 세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낙엽 지는 가을날처럼 나를 한없이 초라하고 외롭게 만든다.

동생이 사는 곳은 대전…. 내가 탈 수 있는 것은 지정된 기차뿐이다.

그렇게 기차표를 사기 위해 표를 보는데 어찌 된 일인지 휠체어석이 전부 “매진”이었다.

가능한 것이라곤 아침 일찍 출발하는 KTX뿐이었다.

 

△ 대전역 엘리베이터 운행 중단을 이유로 코레일은 열차 예매 화면에 ‘전동휠체어석 매진’이라고 공지했다. 사진=뉴스풀

약속 시각보다 몇 시간이나 일찍 도착할 순 없었기에 다른 기차를 찾아보았지만 모두 “매진”뿐이었다.

다른 날짜를 아무리 눌러봐도 같은 현상이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코레일에 문의해 보았다.

처음에 상담원은 “매진이 맞습니다, 고객님”이라고 답변하였다.

나는 하루 이틀은 몰라도 보름 뒤까지도 KTX를 제외한 모든 열차의 휠체석도 모두 매진인 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물었다.

그러자 상담원이 “고객님, 알아보니 경산~대전 구간 KTX를 제외한 일반 열차 플랫폼에 노후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고 있네요, 아마 그래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시는 분들의 이용이 불가하여 임의로 통제를 해놓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변을 하였다.

당황한 나는 “그렇다면 공지로 안내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상담원은 매진으로 통제를 걸어 놓았기 때문에 이용 불가의 사실이 변함이 없다는 듯 안내했다.

나는 매우 기만적 느낌이 들었다.

 

△코레일은 엘리베이터 공사 관련 별도의 공지를 하지 않았다. 대전역 엘리베이터 공사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대전역으로 가는 열차 이용이 제한됐다. 사진=뉴스풀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면 그에 대한 정확한 안내가 있어야 하며, 엘리베이터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이동 수단 마련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장애인들에게 사실을 공지한다고 공사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못 하게 할 수도 없다.

다른 것은 작은 것 하나도 공지하여 주는 이 나라를 대표하는 공기업 코레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어째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이동과 선택적 권리가 달린 열차 이용에서 엘리베이터 공사를 “매진”이라고 둔갑하여 장애인들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것인가 묻고 싶다.

나는 거세게 항의하였다.

하지만 코레일 앱에도 홈페이지에도 대전역 주차장 공사를 한다는 공지가 뜰뿐 엘리베이터 공사에 대한 공지는 없었다.

나의 항의 때문인지 당일 어쩔 수 없이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대전역으로 가보니 공사를 하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관련 공지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장애인들이 대전역을 직접 방문하거나 따로 직원에게 문의해야지 알 수 있는 것이었고 여전히 앱이나 홈페이지로 예매 가능한 표를 볼 때는 매진으로 표기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요청하고 항의했지만, 코레일에선 “차별도 아니고 알 권리에 침해도 아닌, 그냥 노후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는 것뿐인데 이것이 왜 고객님께서 이토록 불쾌감을 느낄만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답변의 느낌이었다.

현재 나는 국가인권위에 장애인 차별 진정을 접수해놓은 상황이지만 어떠한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외치고 싶다.

지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중증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에게 기차는 거의 유일한 시외 이동 수단이다.

코레일의 기차를 이용하는 모든 국민은 기차의 운행정보를 알고 이용할 권리가 있고, 코레일은 그것을 정확히 알려줄 의무가 있다.

분명한 것은 경산에서 대전으로 가는 열차의 휠체어석은 매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노후 엘리베이터 공사로 인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을 뿐이다.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결코 아니다.

표가 없어서 이용할 수 없는 것과 엘리베이터 공사로 인해 이용할 수 없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 그 차이에 대해 공지를 해달라는 것이다.

비장애 이용객들이 열차의 어떠한 운행 사정을 공지 받고 이용하듯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코레일을 이용하는 국민임을 외치고 싶다.

무엇 때문에 모든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의 운행정보를 어떤 국민에게는 매진을 매진으로 또 어떤 국민에게는 매진이 아닌 것을 매진으로 표기하여 알려주는 것일까?

나는 코레일의 공지사항이 그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지사항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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