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

 

1_ 정치의 주체가 아닌, 인질이 되어가는 시민들

 

20대 대선이 이제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2022년 3월 9일에 치러질 선거는 최초로 21세기 출생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선이기도 하다. 대선이 끝난 직후엔 숨 돌릴 틈도 없이 6월 동시 지방선거가 연속으로 예정되어 있다. 2020년대 한국 사회의 향방을 좌우할 중차대한 결정적 국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다.

하지만 주변에선 지지율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들 아니면 대체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체념이 교차할 뿐이다. 한국 사회의 전망이나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 담론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개별 시민의 권리 일부를 합법적으로 위임받기 위해 정당들이 한국 사회에 대한 입장과 정책을 평가받는 자리일 텐데, 작금의 선거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된 것일까?

이런 고민은 비단 2021년 연말의 한국 사회에만 국한된 문제일 리 없다. 우리는 세계 각국에서 실질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난맥상을 목격하는 중이다. 권위주의 독재 혹은 선동적 포퓰리즘이 득세한다는 지구촌 곳곳의 소식은 외신을 통해 숱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경제 불황과 빈부격차 심화, 국제분쟁의 위협에 직면해 시민 공동체의 설자리는 위축되고 원자화된 개인들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는 요즘이다.

개개인은 암담한 현재와 막막한 미래 앞에서 각자의 일상을 건사하기에 바쁜 나머지 ‘정치’에는 신경 쓸 새가 없다. 기껏 투표해 봐야 내 한 표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 될 사람 밀어주자거나 꼼꼼히 정견을 살펴보기보단 세간 평판 따라 고르면 된다는 냉소가 팽배한 세태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를 남의 일처럼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 그저 4년에 한 번씩 인기투표 혹은 차악을 별로 내키지 않는데도 택해야 하는 ‘위임’에 그쳐도 되는 걸까?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포스터 이미지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포스터 이미지

2_ ‘잊혀버린 혁명’을 찾아서: 사파티스타의 사례

 

넷플릭스에선 매달 수백 개의 새로운 영상물이 업데이트된다. 너무 많은 콘텐츠가 올라오는 바람에 어떤 게 추가되었는지 제대로 체크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런 중에 2021년 11월에 이색적인 작품이 한편, 소리 소문 없이 등재되었다. 멕시코 다큐멘터리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La Vocera>(2020)다. 이 영화는 2018년 멕시코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원주민 여성 ‘마리 추이’의 예비후보 운동 과정을 8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찬찬히 따라간다.

멕시코는 20세기 내내 70여 년간 제도혁명당이 단독으로 집권해 왔었다. 20세기 초반,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판초 비야 같은 전설적인 혁명가들의 봉기로 러시아 혁명에 앞서 국가 차원에서 혁명이 일어났지만, 먼로주의를 내세우며 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패권을 주장하던 미국의 이권 개입과 보수 세력과의 내전으로 인해 기념비적 혁명은 미완에 그치고 만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멕시코의 모습이다.

변질된 급진정치세력으로서 제도혁명당은 이후 20세기 거의 내내, 70여 년간에 걸쳐 단독 집권하지만, 일종의 거대한 기득권 집단의 담합 체제로 굳어졌다. 멕시코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는 달리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거나 미국의 군사개입에 시달리진 않았지만,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은 거대한 덩굴처럼 자리 잡은 상태다. 장기집권의 피로와 정당 내 분열이 진행되면서 21세기 들어서는 2018년 선거 직전까지 3개 제도권 정당(제도혁명당/국민행동당/민주혁명당)이 독식하는 구조로 움직여 왔다.

이런 정치지형에서 소속 정당도 정치적 후광도 전무한 마리 추이는 무슨 생각으로 선거에 뛰어든 걸까. 어쩌면 우리 대선 시기마다 등장하는 몇몇 기인들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걸까 의심스러워질 만하다. 영화 초반에 자신의 지난 생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그녀는 가난한 소작농의 자녀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지켜봤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 추이가 개혁을 꿈꾸며 자수성가한 변호사나 사업가도 아닌데, 그녀는 무슨 믿는 구석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이제 그 의문을 풀어보는 시간이다. 마리 추이가 대선 예비후보로 결정되는 순간은 우리에겐 낯선 ‘원주민 의회’ 회의 현장이다. 마리 추이는 원주민 의회의 대변인을 맡고 있었다. 멕시코에는 국가의 지원을 일체 거부하고 공동체 자치로 꾸려가는 지역들이 점점이 존재한다. 전국에 산재한 500여 개가 넘는 공동체에서 파견된 대표들이 멕시코의 선주민 출신들이 대부분인 가난한 농민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상징적으로 꾸린 대표체이다. 이들의 결집 과정에는 1994년 남부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도서 표지 이미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도서 표지 이미지

EZLN은 멕시코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최남단 치아파스 변두리 지역 몇 곳을 점령한 후 무장투쟁을 최소화한다. 이들은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무장 수준은 북부의 마약 카르텔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력으로 멕시코 정부를 전복하기는커녕 정부군의 진압 작전에 얼마나 버틸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후 행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EZLN은 미디어로 자신들의 이념과 주장을 펼치며 새로운 형태의 ‘혁명’을 시도한다. 이들의 선언은 동구 사회주의 블록이 무너진 후 수세적이던 전 세계 좌파들에게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한때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장투쟁과 합법 정당이라는, 흔히 여느 좌파 정치세력이나 처하곤 하던 갈림길에서 ‘탈주’해버린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그들이 점령한 ‘해방구’ 공동체와 원주민 권리 투쟁에 전념하는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2003년 그들의 근거지인 라칸돈 정글에서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평화 대행진을 마친 후 이들의 존재는 한동안 잊혔다. 그 이후 한때 국내에서 반짝했던 그들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해방구’를 유지하며 건재한 가운데 그들의 ‘공동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마약 카르텔이 발붙이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지역, 반정부 무장단체가 점령한 덕분에 치안이 가장 안정적이고 가난한 농민들이 빈궁해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기묘한 상황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그렇게 마치 철 지난 존재처럼 잊힌 EZLN이 영화의 주요 배경인 2018년 멕시코 대선 후보 출마 결정으로 다시금 일부 국내 언론에 조명된다. 원주민 의회 회의장 곳곳에서, 그리고 마리 추이가 누비는 전국의 공동체 현장 여기저기에서 사파티스타 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 하나. 마리 추이가 원주민 의회에서 후보 수락 연설을 할 때 아무 설명 없이 스키 마스크에 파이프 담배를 문 사내가 얼핏 스쳐 지난다. 눈썰미가 밝은 이들이라면 탄성을 지를법한 장면이다. 바로 EZLN의 상징과도 같은 ‘전’ 부사령관 마르코스다. 자신이 지나치게 사파티스타를 과잉 대표한다며 부사령관 직위도 내려놓고 은둔했던 그가 몇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영화에서 모두 설명하진 않지만 지금 현존하는 21세기 혁명세력의 발자취를 확인하는 드문 기회인 셈이다.

 

3_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실천의 현장

영화 속 마리 추이는 전국을 다니며 대통령 후보 등록을 위한 서명 작업을 병행해 유세를 이어나간다. 대개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격렬하고 급박한 전개를 취하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는 마리 추이를 우상화하지도, 치열한 스릴러 진행으로 보는 이를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격렬하고 역동적인 선거투쟁과 박빙의 승부 현장을 기대한 이들이라면 평범한 전개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 대신 카메라는 마리 추이와 원주민 의회의 활동가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가난한 농민들의 지역 공동체 현안을 교류하고, 지역별로 원주민들이 겪는 탄압과 멕시코 전역을 감도는 강제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한다. 마리 추이의 여정에만 집중하기보단, 제2, 제3의 마리 추이라 할 지역 활동가들의 인터뷰와 상황 해설이 국면마다 등장한다. 멕시코 각지에서 가난한 농민과 지역 공동체는 공유지를 빼앗기고 자원을 수탈당하고 있다. 수백 년간 선조들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경작지는 송유관과 철도, 송전탑과 태양광 패널로 뒤덮여버린다. 원주민들은 소송과 시위 등으로 저항하지만 부패한 정치인과 작당한 거대 자본의 로비 앞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파묻히기 십상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스틸 이미지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스틸 이미지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스틸 이미지

마리 추이와 동료들은 유권자 100만 명의 서명을 얻어내야 대통령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30여 명의 예비후보가 난립하는 가운데 원주민 의회에서 모집한 자원봉사자와 지역 공동체에 의지한 마리 추이의 선거운동 과정이 찬찬히 전개된다. 기층 조직의 지지는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주요 지지층은 가난해서 서명 앱 구동이 가능한 사양의 스마트폰을 사기조차 힘들다. 공동체 단위로 어렵게 최신 스마트폰을 한 대 구입해 여럿이 공유하며 서명을 받아야 할 지경이다. 그리고 다수의 공동체는 숫제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지역에 있다. 부의 집중과 사회 인프라의 부실함은 이를 개선하기 위한 운동에도 해를 끼치는 셈이다.

예비후보로 활동하는 가운데 마리 추이에겐 몇 차례 방송 출연과 언론 인터뷰 기회가 들어온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도 마리 추이에겐 정말 대통령 후보로 등록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무슨 의도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식의 무례한 질문이 쏟아져 나온다. 마리 추이의 휴대전화나 SNS에는 무수히 많은 비아냥과 모욕 댓글이 올라와 있다. ‘우리집 청소부와 닮았다’느니 ‘청소나 집안일은 잘하게 생겼다’느니 같은 성차별적 문자를 읽으며 그녀는 허탈해하곤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물러설 리 없다.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정체성의 활동가들이 마리 추이와 함께 하지만 유독 강조되는 건 강인한 여성들의 존재다. 마리 추이는 평소에는 전통요법으로 지역 공동체에서 의사 역할을 맡고 있다. 다양한 여성 활동가들이 기득권의 이익 도구가 된 지 오래인 멕시코 정부 대신에 공동체를 스스로 운영하기 위한 핵심적 역할을 책임지고 선거운동에서도 중임을 맡고 있다. 카메라는 다양한 여성들의 표정과 의지를 드러내는 데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한다. 선거 유세와 맞물려 마을 공동체에선 여성들의 축구 경기가 열린다. 원주민 의회 의원은 자신이 겪었던 과거의 정부 탄압과 학살을 증언하며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영화의 시각은 국가폭력과 마약 카르텔의 조직범죄에 노출된 원주민의 봉기가 자칫 군사화-남성화될 위험에 대해 이들이 주의와 경계를 놓지 않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보인다. 사실 영화에서 분명 무장반군의 정체성을 가진 사파티스타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적어도 이들이 지난 사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도전해온 아나키즘에 기반을 둔 공동체 실험이 헛된 게 아니라는 자신감과 성취의 반영인 셈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스틸 이미지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스틸 이미지

4_ ‘양대 후보 중 누굴 택할 것인가’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결과적으로 그들의 도전은 수치상으론 실패하고 만다. 대통령 후보로 본선에 오르기엔 서명이 훨씬 부족했지만, 이들은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지역 공동체 탄압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대도시 유세를 통해 자신들이 요구하고 해결해야 할 의제를 전국적으로 환기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등록에 성공한 다른 무소속 후보들의 서명에서 무더기 서명 복사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명단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지만, 후보 등록 결과는 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 추이와 원주민 의회는 ‘쿨’하게 자신들의 진행 상황에 관한 결과를 평가하며 다음 활동 계획을 논의한다.

이들의 출마 시도부터 좌절에 이르기까지 내내 좌파 세력의 분열이란 비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멕시코 대선에선 나름대로 기존 제도권 3당 중심 질서가 대대적으로 재편되는 결과를 맞는다. 주요 3당 중 민주혁명당에서 갈라져 나온 중도좌파 ‘모레나’가 대통령을 배출함은 물론 집권당이 되었고, 노동자당과 범 좌파 계열이 약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계는 있지만, 멕시코는 기득권 중심의 보수정당들에게 ‘NO’를 외친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선거는 누가 당선 가능한가의 문제로 선택을 강요하는 듯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마리 추이와 원주민 의회의 선거운동 과정은 당선 여부를 떠나 자칫 고립되기 쉬운 원주민과 농민 공동체의 현실을 전국에 알리는 데 작은 성과를 냈다. 수도 멕시코시티 한복판에서 변방의 가난한 원주민 활동가들이 국립 명문대학 지식인과 만나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풍경은 선거라는 국면이 아니면 쉽게 열리기 힘든 그림인 게 분명하다. 과도한 환상 대신에 마리 추이의 도전은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확장하는 계기로 철저히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선거의 해’에 우리는 그저 차선 혹은 차악을 골라야 한다는 고민에 갇힌 채 마지못한 선택을 강요당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의 미래 전망을 놓고 시민 각자의 주체적 의지로 결단할 것인가. 개별적 판단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사표’ 심리에 떠밀려 원치 않는 한 표를 ‘던질’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그에 합당한 정치세력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그 길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가 전해주는 태평양 건너의 이야기는 잊고 있던 가능성의 불씨를 되살리는 촉매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포스터 이미지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포스터 이미지

 


작품 정보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

The Spokeswoman, La Vocera

2020, 멕시코, 다큐멘터리

83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루시아나 카플란

배급 넷플릭스

로스카보스 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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