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도시 노숙인 문제 다이제스트

 

"나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 이미지
<나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 이미지

1_ 노숙인을 바라보는 양가적 시선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노숙인 문제가 대두된 것은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부터다. 그 이전에는 ‘노숙인(노숙자)’나 ‘홈리스’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부랑자’ 혹은 ‘행려병자’ 같은 멸칭으로 불리곤 했다. 구걸할 경우 ‘거지’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구제금융 위기 때 대량의 실직자가 발생하고 불황의 여파로 상당한 숫자의 자영업자가 길거리에 나앉으면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 갈 곳 없는 신세가 되면서 그 이전 극소수의 ‘나랑 상관없는 사람들’이란 인식은 점차 변하게 된다.

아직 한국사회 내에서 노숙인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하면 그 비율상으론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노숙인의 인정기준에는 대부분 ‘집’이 아닌 공간에서 정착하지 못한 채 거주하는 이를 포괄한다. 이를 감안한다면, 쪽방이나 고시원을 전전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노숙인과의 경계 선상에 서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대도시 공간, 특히 장시간 개방되는 역전 지역 일대에서 배회하는 노숙인은 일상화된 풍경이 되어간다. 연령대 또한 다양화되고 여성 노숙인의 비율도 확대일로다. 여기에 근래 폭증하는 대도시 주거비용은 주거불안정을 부추기는 중이다.

도시에서 살 권리, 도시 거주자의 인권 문제에서 주거권은 가장 핵심적인 의제가 되었다. 과도한 주거비용 지출은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부동산 소득의 과잉은 사회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상황에서 타국, 특히 1세계 국가 중 가장 심각한 노숙인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의 사례는 타산지석으로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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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미국 서부 대도시 노숙인 문제에 관한 최신 리포트

 

미국은 전 인구 대비 0.2% 가까운 비율이 공식적인 노숙인 통계로 잡힌다. 이 수치는 이제 노숙인 문제가 극히 일부 지역 문제라고만 볼 수 없게 된 한국이나 일본의 8배에 달하는 정도다. 국가를 초월해 대도시 지역에 노숙인이 집중되는 건 공통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월가 발 금융위기 이후 주택을 차압당하면서 길거리에 유입된 노숙인이 줄어들 기미가 없다.

근래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는 대도시 노숙인 문제를 조명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2017-2020, 3년에 걸쳐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등 주로 서부 대도시의 노숙인 현황을 소개하는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40분 내외 분량에서 공동감독들은 해당 문제를 소개하는 방법론에서 특정 주인공과 깊게 교감하며 영화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영화’적 접근법 대신, 상황 자체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내용 전달에 집중한다.

매일 미국 전역에서 50만 명 이상이 거리에서 잠을 청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도시 가운데 오클랜드 지역은 최근 4년간 2배로 노숙인이 증가한 상태다. 인구 총수의 증가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런 폭증 상황은 심각한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방정부 담당자들의 토로대로 뾰족한 해결책은 아직 없는 상태다. 카메라는 십 수 명의 노숙인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하고 개별적인 사연을 부문/테마별로 나눠 소개한다. 그리고 이들을 돕는 구호단체나 지원시설 담당자의 해설을 추가로 담아내 객관적 상황을 전달하려 애쓴다. 장기간 촬영 후 안정된 편집 여건이 받쳐주기에 이 다큐멘터리는 제한된 분량 안에서도 효율적으로 기본적인 상황을 요약 정리해준다.

작품 속에 출연하는 이들은 단순히 ‘노숙인’으로 뭉뚱그리기엔 퍽 다양한 층위의 존재들이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상상하는 스테레오타입의 ‘노숙인’도 분명 있지만 나름의 일자리를 갖고 매일 출근하거나, 노숙인과 차상위계층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 더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이들이 노숙 생활에 들어서게 된 각자의 과정과 배경이 풍부하게 소개되며 우리의 고정관념을 조금은 바꿔내기 시작한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사연은 실로 믿을 수 없을 만치 다양하다. 어떤 이는 9.11 사건 이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얻었다고 한다. 영구적 질병으로 인한 과도한 의료비 문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중 거리에 나앉은 이도 당연히 등장한다. 성소수자로 커밍아웃 후 가족의 지원이나 교류가 단절되면서 노숙인으로 전락한 이의 사연도 소개된다. 미국의 노숙인 중 21세기 내내 진행된 ‘테러와의 전쟁’ 참전 후 PTSD로 인해 거리를 떠도는 전직 군인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미국의 노숙인 문제가 소수의 게으르거나 운 없는 사람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입증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구호단체 직원이 노숙인의 폭력에 위협을 받는 다른 노숙인을 멀리 떨어진 보호시설로 대피시키면서 농담 반 진담 반 들려주는 이야기가 걸작이다. 자신도 급여를 한 달만 못 받게 된다면 당신 옆자리에 텐트를 쳐야 한다는 넋두리다. 그만큼 미국 도심의 과도한 주거비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정작 노숙인 대부분은 재활과 자립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안정된 거처,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토로하는 내용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부분이다. 그들의 소망이 얼마나 절실한지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 감독들이 정교하게 배치해둔 장면이리라.

 

3_ 노숙인도 ‘위태로운’ 사랑을 한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영화 중간중간 노숙인이 구호단체 봉사자나 지원활동가와 유기적 관계를 이어가고 도움을 청하는 광경이 등장한다. 공무원이나 경찰보다는 그들의 처지에 관심을 일상적으로 갖고 관찰하는 이들이기에 보다 진입장벽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상담을 통해 실질적인 지원이 오갈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처지의 노숙인 간 교류와 관계가 더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노숙인이 거리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우정이나 사랑을 형성하곤 한다.

집은 없지만, 저임금 일자리와 규칙적 일상을 유지하며 어울리는 중년 커플은 빨래방에서 담소하며 그들만의 시간을 가진다. 천막에서 동거하지만, 어렴풋이나마 장래를 기약하며 계획을 세우는 젊은 커플도 등장한다. 그저 집이 없을 뿐 우리와 별반 차이 없어 보이는 풍경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삶에 포위된 사람들의 연애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함께 살던 노숙인 남성의 폭력에 노출된 여성은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급히 피신해야 한다. 한눈에 구타가 일상화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상당수의 여성 노숙인이 덩치 있는 중형견을 반려동물로 데리고 다니는 데에는 이런 문제와 관련된 측면도 있다) 헤어진 전 애인의 스토킹과 성폭력에 시달리다 원치 않는 임신에 처한 사례도 등장한다.

노숙인 간의 폭력이나 성폭행도 문제이지만 일반인들의 노숙인에 대한 폭력 또한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고 실제로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혐오폭력은 노숙인의 처지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성별로는 여성이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고, 백인보다는 유색인종이 수시로 노출된다. 청장년 남성보다는 노인이나 여성, 성소수자가 더 큰 위기에 처한다. 결국, 사회 전반의 혐오범죄 양상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셈이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노숙인이 실제로 수차례 폭행에 시달리거나 위협받는 경우를 증언하고 있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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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 복지사각지대가 초래하는 인위적 비극

 

사회복지제도가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 중에서 가장 떨어진다는 미국 사회는 노숙인을 양산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초반부터 복지 사각지대 문제에 적절한 비중을 할애한다. 비현실적 지원조건 때문에 근로의욕을 발휘하기보다 지원제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줄어들지 않는다. 일자리를 만들고 빈곤층이 사회 일원으로 소속감과 미래 설계를 가질 수 있도록 시간과 노력을 공들여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함에도 미국뿐 아니라 다수의 국가에서 최저 수준의 복지수당 지급만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두 아이를 부양하는 중년여성은 일하는 만큼 수당이나 푸드스탬프가 차감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삶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제도의 허점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일자리를 찾아 열심히 노동한 덕분에 각종 지원금이 삭감되어 집세를 못 내고 다시 길거리로 쫓겨나게 된 이 가족은 밤에는 보호시설, 낮에는 도서관 등 공공장소를 오가고 있었다. 이 여성 노숙인은 일해서 수입을 벌어 자녀들에게 온전히 쓸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창 먹성 좋은 아이들에게 2주 후 집세와 당장 오늘 한 끼 잘 먹이는 것 중 늘 후자를 택하게 되고, 그 결과는 간헐적 노숙의 고착화다. 아무리 교육열이 높다 한들 이런 조건이 아이의 성장환경에 좋을 리가 없다. 대도시의 과도한 주택 임대비용은 역시나 노숙인을 양산하는 악순환이다.

재활을 위해 자활센터를 찾아 일자리를 얻은 중년 남성은 자기만의 원룸을 얻지만, 한국의 고시텔 수준인 그 방은 월세가 700달러에 달했다. 결국, 6개월 후 더 이상 집세를 감당하지 못한 남자는 다시 차에서 노숙을 청하게 된다. 영구임대주택을 지자체에서는 확충하려 시도하지만 전 지구적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파고는 미국 서부 대도시도 예외일 수 없다.

공공기관에서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고자 노숙인 집단수용시설을 설치하지만, 과거 영국의 구빈원 제도 판박이인 현대의 보호소 역시 19세기 구빈원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곳은 백 명 단위의 노숙인이 밤에 잠만 잘 수 있도록 2층 침대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아침이 되면 다시 나가야 하는 불안정의 연속이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아울러 노숙인 수용시설이 들어설 예정인 해당지역 주민들은 동네에 수백 명 노숙인이 등장하는 걸 원치 않는다. 주민들은 노숙인들에게 따라붙는 알콜 중독이나 마약 같은 문제가 지역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거라며 자신들은 매정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한편에선 시설 설립을 지지하는 이들의 피케팅이 벌어진다. 그저 집단이기주의로만 몰 수 없는, 하지만 마음이 답답해지는 그림이다.

공권력은 도시 구석구석에 방치된 노숙인들에게 최소한의 지원과 함께 주기적인 통제도 병행하고 있다. 분명 노숙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은 범죄나 화재 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공공안전 차원에서 계도와 단속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비친다. 하지만 영화 내내 도시의 하루살이처럼 구석구석에 모여 있는 노숙인들과 도시 중심부 마천루의 불야성이 대조적으로 조명되는 이질적 느낌은 규제만으로 해결 불가능한 사안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노숙인의 인터뷰 내용처럼, 이들도 평범한 이웃들처럼 일상을 누리고 싶다. 자신들이 온전히 자기 계획대로 삶을 꾸리며 미래를 기획할 최소 여건이 마련되지 않기에 그들은 하루하루 전전하는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최소한의 식사나 잠자리가 지원되기는 하지만, 모든 게 분절된 데다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보니 건설적인 설계를 하기 어렵다는 항변은 경청할 만하다.

 

5_ 도시 공간의 민주주의와 맞닿은 노숙인 문제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한 노숙인이 텐트에서 일어나 차곡차곡 자리를 정돈하고 양치를 한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는 같은 시간대에 자신의 안정된 거처를 가진 이들이 동일한 아침 기상 패턴을 진행하는 풍경을 교차시킨다. 그 두 집단의 대비를 통해 노숙인 상당수 또한 그저 무절제한 방종이 아니라 기회만 주어진다면 안정된 삶을 위해 기꺼이 도전할 사람이란 점을 부각하는 영화적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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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버스킹, 건물 청소, 공원 환경정비 등 영화 속에 등장한 노숙인들 상당수가 각자 일자리를 갖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중이다. 그런 시민들이 잠은 텐트나 차 안에서, 세면과 양치는 공공화장실, 식사는 공공급식이나 푸드스탬프로 해결하면서 조각조각 쪼개지고 분절화 된 하루살이 삶에 급급해 한다. 그들의 사회적 재기를 위해 도시의 책임자들은 노숙인 문제 해결을 화두로 토론하지만, 현재의 대책으로는 조족지혈이다.

설상가상으로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려하듯,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미 도시 내에서 가장 취약집단인 이들에게 더 큰 위협 상태를 초래한다. 재난은 항상 가난하고 집 없이 떠도는 이들에게 가장 가혹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위한 기본조건, 특히 주거와 일자리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에서 도시마다 노숙인이 넘쳐나는 기괴한 풍경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도화선 같은 상황으로 내몰리는 중이다. 영화는 그 해답을 뾰족하게 내지는 못하지만, 해당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는 데에는 꽤 유용해 보인다. 문제해결을 위한 실사구시와 응용은 영화를 본 이들에게 앞으로 던져진 숙제일 것이다.

 

 


작품 정보

 

나의 집은 어디인가 Lead Me Home

2021, 미국, 다큐멘터리

2021.11.30. 공개, 39분, 15세 관람가

감독 페드로 코스, 존 셍크

제작사 Actual Films Production

배급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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