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고양이, 개, 돼지, 암소를 모두 합친다 한들 닭의 숫자에 미치지를 못한다. 거기다 쥐와 새까지 더한다 해도 여전히 닭이 이긴다. 닭은 세상에 가장 흔한 새이며 동시에 농가 마당의 친숙한 동물이다. 지금 이 순간 200억 넘는 닭들이 지상에 살고 있으며, 인간의 세 배에 달한다. (앤드루 롤러, 치킨로드, 책과함께, 2015)

 

삐뚤이. 큰삐뚤이. 연갈이. 노랑이. 얼룩이. 점순이. 소점이. 봉이. 깜순이. 꽁지. 빼빼. 얼도리. 깐도리.

보현골 집에 함께 지내는 닭들의 이름이다. 시인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우리집 닭은 내가 그들의 이름을 지어 주기 전에는 하나의 날갯짓에 지나지 않았다.

주변 지인들은 우리집 닭이 최상의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동물 복지의 첨단이니, 호텔 같은 닭장, 자연 방사니 하면서 그들이 낳는 달걀마저도 예뻐서 차마 프라이팬에 깨트려 반숙이나 완숙을 하기 아쉽다며 호기심을 표현한다.

 

삐뚤이

삐뚤이는 금년 5월 초 입양했다. 며칠 지내며 보니까 꼬리가 한쪽으로 돌아간 기형 닭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암수를 구분하지 못하여서 수탉인지 암탉인지를 몰랐다. 지금은 제법 의젓한 장닭의 풍모를 풍기며 닭장 내 가장 노릇을 한다. 삐뚤이는 천여 평 되는 자두밭을 헤매고 다니다가 밭의 가장자리에 있는 닭장에서 반대편 끝으로 이웃 마을 다니듯 다닌다. 그러다가도 한두 마리 닭장에 남아 있는 암탉이 알을 낳거나 제풀에 놀라 큰 소리로 울면 100여 미터 되는 밭의 끝에서 닭장까지 전력 질주로 제 암탉을 지키러 오는 것이 종종 목격된다.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

 

큰삐뚤이

큰삐뚤이와 깐도리, 얼도리는 입양한 중닭이다. 그 중 큰삐뿔이는 닭의 인물을 정하는 벼슬이 앞에서 보아 오른쪽으로 넘어져서 큰삐뚤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꽁지 부분에 늘 계분을 묻히고 다니지만, 입양 보름 후쯤 처음으로 내게 달걀을 선물했다. 요즘은 스스럼없이 농장 창고에 들어와서는 동글동글한 닭똥을 싸놓고도 태연하게 주인 옆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놈이다.

깐도리는 주인이 글을 쓴다고 전을 펴면 앞으로 와서 초상 모델이 되어 줄 것이니 글만 쓰지 말고 자기 그림도 그려달라고 우기는 것처럼 행동하는 놈이다. 수탉이 연애하자고 달려들면 이름처럼 밀당의 고수인 마냥 여유롭게 반항하며 좀처럼 자기의 뒤를 내어 주는 법이 없다.

얼도리는 깐도리와 반대되는 행동으로 수탉의 횡포에 늘 머리 부분에 상처를 달고 산다. 주범인 봉이를 얼른 이웃집으로 귀양을 보내야 얼도리의 머리가 성할 날이 올 것 같다.

연갈이는 얼룩이, 노랑이를 23일 동안 품어 부화시킨 위대한 모성을 가진 닭이다. 스무사흘을 얼룩이, 노랑이를 품어 부화시키느라 먹이와 운동량이 부족했던지 같이 입양된 닭들보다 덩치가 왜소하다. 털과 깃의 색이 연한 갈색이라서 연갈이라 부른다.

노랑이는 아직은 아명으로만 불러야겠다. 주인이 서툰 탓에 호텔 같은 닭장을 지어 주고도 겨우 두 마리의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성적을 거두었다. 두 번째 깬 병아리가 노랑이다.

얼룩이는 노랑이의 하루 터울 형이다. 보름 정도 같이 잘 지내더니만 주인의 어린 병아리 수발이 매끄럽지 못한 탓인지 그만 먼저 가버렸다. 자두나무 아래 고이 묻어 주었다. 마음이 아리다. 주인 잘못 만난 탓이다.

 

어느 날 유정란 여섯 알을 넣어서 두 마리의 병아리를 얻었다며 건설 노동일을 하는 친구에게 술자리에서 자랑삼아 흰소리를 하였다. 그 친구가 내게 나머지 네 알의 형편을 물었다. 두 마리만 까고 나머지 네 알은 자꾸 우리 밖으로 밀어내길 반복하여 부화가 불가능한 달걀이라 생각해 폐기했다고 말하니 그 친구가 내게 핀잔을 주며 바보 같은 처신을 하였다고 나무랐다.

“너는 사회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우리한테 아는 체를 하더니 병아리를 품은 어미의 처지는 그렇게 아둔하게 모르나?”

“…….”

“우선 깬 두 마리 돌보기도 바쁠 것인데 나머지 알을 품을 정신이 있겠나? 다음 따뜻한 봄에 다시 식구들을 불릴 요량이면 갓 태어난 병아리는 순서대로 어미 닭한테서 삼사 일간 분리했다가 다 알이 깨고 난 뒤에 다시 어미 품으로 돌려주면 달걀 열 개 정도는 자연 부화할 수 있네.”

“…….”

“어리석기는….”

어리석다는 핀잔을 열두 번도 더 들을 만하다. 

 

연갈이와 얼룩이
노랑이

점순이는 아마 오골계와 토종닭의 교잡종인 것 같은데 등에 난 점이 말괄량이 삐삐의 주근깨가 연상된다. 엉덩이 부분 회색 털이 너무나 복스럽게 생긴 놈이다. 아마 우리집에서 부화가 된 노랑이의 본 어미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소점이는 점순이와 마찬가지로 등에 난 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드문드문 난 까만 점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지난여름 큰물이 지나간 자호천의 강돌 사이 드문드문 박힌 까만 차돌을 연상시킨다.

 

점순이
소점이

 

봉이는 봉이 김선달을 닮았다. 어릴 때부터 토종닭들 사이 작은 덩치로 지내며 먹이를 주면 잽싸게 물고 다른 닭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으로 도망가서 배를 채우곤 했다. 삐뚤이 다음의 수탉인데 삐뚤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다른 암탉에게 연애 수작을 한다. 그 성공 확률이 처음에는 형편없더니 요즘은 안타를 치는 확률이 1할은 되는 것 같다. 다른 닭들과 달리 다리에도 제법 요염한 털이 나 있다. 애정행각을 시도하는 삐뚤이를 거들면서 봉이는 삐뚤이의 신임을 얻은 것 같다. 삐뚤이가 수컷인 자신을 표적으로 삼는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처신하는 것이 영락없는 봉이 김선달의  꾀주머니를  빌려 온 듯하다. 최근 들어 봉이의 횡포가 점점 심하여 이웃 어른 집으로 귀양을 보낼까 생각한다.

 

봉이
깜순이

깜순이는 우리집 닭들의 척후병이다. 밭 어디에서 놀다가도 농장주의 인기척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달려와서 농장주의 손에 먹이가 들려 있는지 확인하고 그 유무를 다른 닭에게 전하는 것 같다. 정은 얼마나 많은지 도대체 농장주를 겁을 내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철저하게 선은 지킨다. 하루는 얼마나 많은 정을 내기에 바닥에 뿌려 주던 먹이를 손 위에 올려 주었더니 경계를 하여 덥석 달려들지 않고 겨우겨우 한두 번 먹이 쟁취 시도를 해보고는 등을 돌려 나무 아래로 벌레 잡으러 가버린다.

 

꽁지
빼빼
얼도리
깐도리

꽁지는 도톰하게 솟은 꽁지가 매력적인 암탉이다.
빼빼는 우리 집 암탉 중 목선이 가장 아름다운 닭이다. 늘씬하면서도 주변에 대한 경계가 특히 심하다.

새 생명이나 나와 인연이 있는 사물들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지으려니 꽤 신경이 쓰인다. 음양오행에 따른 작명법도 좋고, 우수·기수·획수에 따른 작명도 좋고, 소릿값에 따른 음향학적 작명도 좋고, 유명한 작명가의 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상업성이 물씬 묻어나는 <이름 누가 함부로 짓는가> 등의 저서에 따르는 것도 좋다. 유명 스님에게 구복 차원의 걸명도 좋고, 시내 작명소 간판을 걸고 밥벌이하는 작명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의 이름, 동물의 이름, 사물의 이름을 떠나 새 생명을 애정으로 두루두루 살피며 새 생명의 특징을, 가족의 희망을 모두 담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었으면 하는 보현골 농부의 오지랖이다.



초겨울 나들이. ⓒ정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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