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촘한 그물이 답인가

점점 형태가 다양해지고 여전히 줄지 않는 학교 폭력을 해결할 묘약은 없을까? 오랜 고민의 결과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이하 ‘학폭법’)이 제정되었고, 2011년 대구 중학생 폭력 사건, 2017년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학교폭력 이슈가 있을 때마다 지금까지 10여 차례 이상 개정되어 왔다. 그 후 교육 주체를 대상으로 한 관련 의무 교육은 강화되고 늘어났지만, 학교 폭력 사안의 건수가 의미 있게 줄었다는 통계는 없다. 아이들의 세상이건 어른들의 세상이건 불화와 갈등, 강자의 가학성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인가! 그럴수록 법과 규정의 그물은 더욱 촘촘하게 짜여야만 할까. 오호, 애재라~

2020년부터 학교폭력에 대한 주요 심의 기능이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로 이관되어 2년째 시행하고 있다. 이제 경미하거나 화해와 중재가 가능한 사안들은 학교장 책임으로 자체 해결을 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경감해 준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그 후로도 관련 법과 사안 처리 매뉴얼은 강화되거나 수정되었다. (2021. 6. 23 ‘즉시 분리’, ‘전문가 의견 청취’를 필수로 하는 조치 등)

하지만 학교 울타리 안에서 그물은 더 성기게 짜야 하지 않을까. 마치 몇 조목의 관습법이 성문화되어 팔조법금이 되고 경국대전이 되고 육법전서가 되어도 잘못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을 인정한다면, 교육에까지 점점 엄한 법의 잣대를 적용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무모한가. 책임과 원칙만이 강조되면 현장의 자율성과 열의는 주눅 들기 마련이다. 친절한 법적 지침이나 매뉴얼들은 학교나 교사에게 어쩌다 책임 보험 역할은 하겠지만, 오히려 항구적으로는 장애가 되지 않을까.

 

교육지원청 ‘심의위’의 한계 혹은 딜레마

일단, 학교는 폭력 관련 사안이 신고/접수가 되면 선택할 여지없이 ‘전담기구’까지는 열어야 한다. 회복적 중재를 한다고 담임이나 담당 교사가 뭉그적거려서도 안 된다. 매뉴얼에 따라 즉시 절차를 진행하되 여기서 매끄럽게 해결되지 못하면(학교장 종결 처리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안은 ‘심의위’에 회부된다. 그런데 ‘심의위’ 개최 여부는 사안의 경중에만 비례하지 않는다. 소위 ‘학교장 자체 해결 가능 요건’ 4가지를 충족하더라도 당사자인 (피해)학생과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심의위’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도 학교는 불공평한 의혹과 민원의 여지가 없도록 매뉴얼에 충실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뜻이다. 교육청 실무자나 담당자들은 학교에서 화해와 중재, 상담 등이 바람직하다고 말은 하지만, 현재로서는 학교의 자율성이나 재량권을 크게 보장할 배짱이 관리자나 교육기관 어디에도 없다.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니까.

 

‘심의위’ 개최가 정해지면 모든 조사 자료와 ‘전담기구’ 회의 결과, 학부모 의견, 소명 자료와 추가로 제출된 방대한 자료(캡처/녹취 등)까지 첨부된다. 그런데 이 자료의 충실도가 학교별, 담당자별로 큰 편차가 있는 것도 문제다. ‘심의위’ 전에 교육청 실무자들에 의해 이 자료들이 정리, 제출되고, 위원들에 의해 꼼꼼히 검토되어야 하는데 이 자료가 부실하면 ‘심의위’ 진행도 어렵고 심의의 질도 떨어질 수 있다.

‘심의위’가 시작되면 출석한 참고인(가/피해 관련 학생과 보호자 또는 대리인)에게 차례로 질의하는데 이 과정이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럽다. 진술자의 인권을 극도로 존중하면서도 가/피해 간에 엇갈리는 사실관계를 슬기롭게 파악하여 이후 조치를 위한 판단 근거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학교생활교육위원회(‘선도위’)나 ‘폭대위’ 시절에는 이 과정에서 많은 교육적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이제는 사실만을 확인하는 딱딱한 법정 같은 느낌을 감출 수가 없다.

교사와 학부모가 위원이던 것이 지금은 일면식도 없는 외부 전문가와 경찰, 변호사 등이 위원이기에 접근법이 다를 수밖에 없다. 평소 학생의 생활이나 사안의 배경을 알고 접근하기보다 주어진 자료와 증언에 한정해 사실 확인 및 이에 따른 조치를 내려야만 한다. 결국 현행의 ‘심의위’는 법리적 시비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잠재적이고 정성적인 판단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위원회의 자기 검열이 철저한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 ‘심의위’의 딜레마가 있다. 처벌이 전제되는 형사사건의 절차와 달리 피/가해 학생의 보호 및 선도와 교육을 우선으로 하는 교육적 징계는 무언가 달라야 하는데,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형사사건의 처리 절차와 다를 게 없게 되는 것이다. 강화된 학폭법과 촘촘해진 매뉴얼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교육적 선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해도 이미 점수화된 양형을 가감하는 일은 위원들에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조치는 대체로 판례처럼 무난하고 공평한 형태를 띠며 위원회의 경험치와 정량적 판단 요소에 따라 다소 기계적인 양형이 정해지는 편이다. 그나마 사회봉사나 특별 교육의 시간 부여 등 ‘병과 조치’를 세심하게 조정해 보지만 이 역시 위 한계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심의위’ 조치 이후의 문제는?

예전처럼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을 때는 비교적 그 학생에 맞는 조치와 지도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의 은폐, 축소나 신뢰와 역량의 문제가 대두되어 외부 위원(학부모 포함)을 구성하게 되었고, 그것으로도 잦은 송사와 미심쩍은 여론을 잠재우지 못해 학생을 책임져야 할 학교는 (반쯤은) 학교 밖으로 공을 넘겼다. ‘심의위’ 또한 숙의하여 조치한 결과를 학교로 넘기면 그만이다. 마치 핑퐁 게임처럼.

이제는 우리 학생에 대한 조치도 외부에서 내리고, 그 시행도 외부에 의뢰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기관 간에 번다한 공문이나 서류가 오가지만 평화로운 학교를 위한 바람직한 변화가 생겼는지는 자못 회의적이다. 학생에 대한 조치 이행 과정이나 태도 변화 등에 대한 확인은 어렵지만, 행정적인 절차는 분명하게 마무리된다. 이렇게 해도 수많은 송사는 예고되어 있다.

‘전담기구’ 차원이든, ‘심의위’든 어떤 결정이 한 미성년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위원은 대개 학부모이거나 교사이거나 부모의 입장이거나 교육 관련 종사자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심의위’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미 처리한 사안들은 새로운 사안들로 인해 흘러가는 물같이 빠르게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 교육적 피드백은 학교의 몫이지만, 실상은 외부 기관이 이를 대신하고 학교는 행정적으로 종결(기록과 삭제까지)하면 한 사안이 모두 끝나는 것이다.

 

제언

중장기적으로는, 학교로 다시 공을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 폭력에 관한 법률은 전면 재검토되거나 폐지되는 게 나을 것이다. 학교 폭력의 마무리는 회복적이고 교육적인 방법으로 학교 내에서 당사자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유럽에서 학교 폭력 처리 원칙처럼 사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자가 충분히 표현하도록 하고, 학교 구성원들이 피해를 공감하게 하는 과정을 거쳐, 가해자가 철저하고 진정성 있게 사과하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요즘같이 SNS로 초연결 된 구조에서는 접촉 금지나 격리 등을 포함해 전학 조치를 한다 해도 성심을 다한 회복적 조치 없이는 미봉책일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심의위원 및 담당 실무자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수나 워크숍 등이 강화되어야 한다. ‘심의위’ 구성에 교원위원의 비율도 좀 더 늘려야 할 것이다. 또한 2년간(1기) 자료를 바탕으로 투명하고 진솔한 시·도교육청 차원으로 백서가 나와 피드백 기능을 해야 한다. 끝으로 각 교육지원청의 심의위원들과 실무자들의 노고와 사안 심의 때마다 느낄 그들의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1기 ‘심의위’의 역할에 다소 비판적 견해를 피력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장영복 _ 학교폭력대책심의위 교원위원


※ 이 글은 <학부모신문>에 최초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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