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8] 온막에서 첫 겨울나기
[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8] 온막에서 첫 겨울나기
  • 이은주
  • 승인 2022.01.0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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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9월 말에 시작한 집 보수공사는 12월이 되어도 완성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완성되기를 재촉한 덕분에 이제 거의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남은 공사는 언제 될지 알 수 없으나, 봄이 와야 할 것 같다. 땅이 얼었으니 마당 공사와 나무 심기는 미루었다.

대추나무를 베어내고 난 텅 빈 밭에는 새들이 오고 바람이 산다. 배가 노랗고 갈색 꼬리를 까딱거리면 딱딱 소리가 나는 딱새, 벼슬이 왕관처럼 우아한 후투티, 수백 마리의 참새떼가 베어놓은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 벌레를 잡고 화르륵 날아가고 나면, 꿩이 게으르게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푸르고 보랏빛이 나는 수백 마리 새들이 주인처럼 생울타리 너머 묵밭에 제멋대로 자란 버드나무 가지와 전깃줄에 사열을 했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드물게 독수리가 높이 날고, 이사를 하는 날엔 재두루미가 아침에도 저녁에도 마당 입구 전봇대 위에 앉았다가 날아갔다. 바람과 새가 밭의 주인이었던 게다.

겨울이 시나브로 왔다. 뒷밭에 매달린 감들이 붉다 지쳐 검붉어졌다. 밭주인인 반장댁은 연세가 있어 도시에 있는 아들이 와서 약을 치고 농사를 짓는 듯했다. 마을에서는 느지막이 하루 놉을 해서 감을 땄다. 20대 청년도 있고 3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일꾼들은 세대와 남녀가 섞여 있다. 5시가 되자 일손들은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처럼 나무에 조롱조롱 달린 감을 내버려 두고 밭을 총총 떠나갔다. 한두 그루 따자고 새로 놉을 하기보다는 버려두는 게 나았는지! 홍시는 새 밥이 되고, 영하의 검은 칼바람에 베었다 황금 햇살에 몸을 녹이다가 나무에 매달려 겨울을 나려나 보다. 저 감이 떨어지면 봄이 오려나…. 결국 남은 감들은 나무에서 송구영신을 맞이했다.

 

ⓒ이은주

겨울이 오고 날마다 애가 쓰이는 것은 땔감이다. 마당에 뿌리째 뽑아놓은 대추나무가 널브러져 있지만, 벽난로에 땔 수 없다. 덜 마른 나무는 매캐한 연기가 목과 눈을 따갑게 한다. 벽난로 땔감으로는 잘 마른 참나무를 사용하는데, 나무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참나무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10월부터 주문한 나무가 12월이 끝나갈 때야 트럭에 실려 마당에 부려졌다. 4.2톤이라는데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관내에 벌목 허가가 나지 않아 늦었다며, 나무가 모자라 겨우 가지고 왔다며, 나무 가격이 올랐다며 처음 주문할 때 50만 원 하던 것이 60만 원으로 오른 가격으로 우리 마당에 온 것이다. 마른 나무가 아니라 생나무이긴 하지만 마당에 누운 나무를 보니 불 때기도 전에 배부르고 등이 따시해졌다.

위드 코로나가 된다 하여 우리는 서둘러 만남을 기획했다. 이 집을 지은 것은 다 ‘영혼의 성장’을 위한 ‘소풍’을 하겠다는 서원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미크론이 등장해서 활개를 치고 확진자 수가 7000을 넘어가며 우리는 주저했고, 결국 하 선생님 학교에 확진자가 나와 전교생이 크리스마스 날 아침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가야 했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해야 했기 때문에 하려던 ‘소풍’은 취소했다. 결과는 다행히 전교생 모두가 음성이었다. 집은 다른 사람들이 와서 분주하고 풍성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90이 넘은 엄마, 아버지, 가족이 다녀가고, 다음날은 부산에서 친구가 다녀가고, 그날 저녁에는 하동에서 생태연구소를 꾸리고 있는 김하원 선생님이 왔다. 평소 결가부좌 수행을 하는 큰언니를 만나고 싶어 하던 차에 이삿짐에서 나온 청소기와 가스레인지, 그릇들을 가지러 겸사겸사 다녀갔다. 오리온이 마당 중천을 지나 서산으로 날아갈 때까지 우리는 수련과 정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들고 나는 사이 틈틈이 정리의 달인인 큰언니 덕분에 냉장고와 찬장이 정리되었다. 엄마 아버지가 가시고 그녀가 남아 2박 3일을 우연히 머물게 된 덕분이다.

새해 첫날에는 도끼로 장작을 패고, 둘째 날엔 평화학교 선생님들이 왔다. 코로나로 제한된 인원이었지만 나와 가장 오래 평화학교를 해 온 선생님들이다. 우리는 2021년의 마무리 소감과 새해 화두를 이야기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내가 운영하는 소풍에 가장 많이 참여하고 주인공을 많이 했던 영숙 선생님은 “많은 전문가를 만나고 많은 곳을 가봤지만, 이곳이(평화학교 선생님들) 가장 안전했”노라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다 말할 수 있었노라고, 감사하다고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오쇼젠 타로’ 카드에 이야기를 얹어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이야기를 펼쳐갔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감자와 고구마가 익는 동안에……

 

ⓒ이은주

이제 남은 것은 책 정리다. 이사할 때 많이 버린다고 버렸는데 방마다 책장을 두고도 거실에 한 무더기가 누워있다.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제 눈이 어두워 책을 잘 읽지도 못하는데… 버리자니… 아직도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지… 아니 그것보다는 책 읽는 즐거움을 버리는 것 같은지 쉽지가 않다.

책은 나에게 ‘재미’다. 생각해 보면 나를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재미있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였던 것 같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다독가도 아니고 책을 들면 졸기 일쑤고 대부분 별 재미가 없다. 어려서부터 나는 사물과 세상의 이치를 알고 싶었는데, 50대 중반을 넘어서도록 내가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자연과 일상의 삶과 경험을 통해서였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궁무진했던 이야기들, 10대엔 재미있는 만화책과 소설책에 날 밤을 새웠다. 그때 열일곱 나도 ‘마가렛 미첼처럼 죽기 전에 한 개의 소설을 쓰리라’ 생각했다. 아이 두 돌 때 분가를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약간의 우울이 왔을 때 태백산맥과 해리포터 시리즈가 나의 즐거움을 채웠다. 2020년 코로나19가 우리를 고립시키고 발을 묶었을 때, 미뤄두었던 ‘유리가면’과 영혼의 자서전, 끝없는 이야기들이 즐거움을 채웠다. ‘나에게 책은 지식과 지혜이기 전에 즐거움이었네……’ 알아차린다. 그래도 더 버려야겠지.

 

- 2022년 1월 2일.

 

글 / 이은주 (65년 성주 생, 동화작가,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경산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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