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시중에 유통되는 10여 종의 생리대에서 독성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보도된 이후, 생리컵이 생리대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많은 여성이 생리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생리대를 둘러싼 논란 이후 생리컵을 사용해왔다. 내가 생리컵을 사용한다고 말하면, 주위에서 사용 후기를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눈알을 한 바퀴 굴리며 “쩐다!”고 말한다. 또 생리컵을 사용하는 친구들과 함께 ‘이제 절대 생리컵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생리컵을 찬양하기도 한다.

생리컵은 1937년 미국에서 발명되어 외국 여성들에게는 익숙한 물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질 안에 넣어야 하는 사용법이 처녀막 손상을 가져온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는 차치하더라도, 정서적 거부감과 막연한 두려움 등의 이유로 많은 여성이 생리컵 선택을 망설인다. 이 글은 아직 생리컵을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에게 바치는 나의 고백이자 제안이다. 그대, 나와 함께 갈 텐가?

 

앙증맞은 생리컵의 자태
앙증맞은 생리컵의 자태

장점이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온다. 생리컵, 나 너 좋아하냐.

생리혈을 비운 뒤 흐르는 물에 씻고 다시 착용, 생리 기간이 끝나면 열탕 소독을 하고 완전히 물기를 말린 뒤 보관하면 끝! 아니, 이게 끝이라고? 너무 간편하잖아! 불규칙 속에 규칙이 있다는 신조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으며, 집안 이곳저곳에서 널브러져 있기 일쑤인 내게 생리컵의 간편함은 거부하기 힘든 가장 큰 매력이었다. 나는 팬티나 이불에 묻은 생리혈 흔적을 지워내는 나태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리컵을 주문했다. 구입하고 나면 생리컵은 어떻게든 질에 넣게 된다는 전형적인 MBTI P 유형의 마음으로.

어릴 때부터 아토피에 시달렸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맞지 않는 음식을 먹거나 추운 곳에 오래 있으면 내 피부는 금세 파업하곤 했다. 민감성 피부의 나는 축축한 생리대 때문에 생리 기간이 되면 피부 짓무름으로 신음했다. 그뿐만 아니라 생리혈이 샐 수 있다는 이유로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우고 자는 내 취향마저 박탈당했다. 그렇게 십여 년간 쓰라린 아픔과 생리혈 새는 걱정으로 생리 기간 내내 고통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생리가 아니라 생리대였다. 생리대에서 생리컵으로 바꿨을 뿐인데 나는 피부 짓무름과 비릿한 냄새, 생리혈이 새는 걱정으로부터 해방됐다. 게다가 생리 기간 중 느낄 수 있는 이른바 ‘굴 낳는 느낌’도 사라졌다. 보통 생리컵을 아침에 착용하고 자기 전에 갈아주기 때문에 장시간 착용이 가능해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일도 사라졌다. 심지어 착용 후 이물감이나 불편함이 없어 생리 기간인 것조차 잊을 지경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생리대 가격이 가장 비싼 나라다. 또한, 국내 생리대 가격의 인상 폭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두 배에 이른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보통 1인이 하루에 소비하는 생리대는 5~6개다. 생리 기간을 평균 5일로 잡아도 한국 여성은 생리대 구입에 만만치 않은 금액을 지출하고 있다. 여성은 평균 40년 동안 생리를 하는데 그럼 평생 생리대 구매에 드는 비용은 대체 얼마란 말인가. 일회용품인 생리대를 한 번 교체할 때마다 드는 죄책감은 또 다른 문제이다. 약 2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해 경제적, 환경적 부담이 없는 생리컵을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생리컵 고르는 방법

질 입구에서 자궁까지의 길이는 사람마다 다르고, 생리 기간에는 여성의 자궁이 평소보다 낮아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을 찾기 위해서는 질 속에 손가락을 넣어 자궁 길이를 측정해야 한다. 손가락을 질 안에 넣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만져지는 게 있을 수 있는데, 마치 코끝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이 바로 자궁 경부다. 이 글을 보고 실측하다 이게 경부인가 아닌가 헷갈리는 사람이 있다면? 삐빅- 맞습니다. 그게 자궁 경부입니다.

손가락 두 마디 이전에 자궁 경부가 만져진다면 낮은 자궁, 아무리 손가락을 넣어도 만져지는 것이 없다면 높은 자궁이다. 자신의 신체 구조에 맞는 생리컵을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생리컵 사용방법과 주의사항

유튜브나 구글에 생리컵 사용방법을 검색하면 생리컵 선배들이 아주 친절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생리컵 접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되는데, 문제는 생리컵을 질 속에 어떻게 넣느냐는 거다. 나도 처음엔 진땀 뺐다. 이 작은 생리컵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나 짜증도 났다. 근데 그 고비만 넘기면 환희의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으니 포기하면 안 된다.

먼저 다리를 약간 벌리고 기마자세를 한 뒤 숨을 고른다. 숨을 크게 ‘후’ 하고 뱉을 때 접은 모양 그대로 질 안에 넣는다. 그렇다. 생리컵을 잡은 손가락까지 같이 넣어야 목표지점까지 잘 도달할 수 있다. 그 과정 중에 생리컵을 놓치거나 손을 빼버리면 접혔던 생리컵이 질 안에서 ‘뽕’ 하고 펴질 수 있는데 그러면 압력 때문에 아프니 조심해야 한다.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당황하지 말고 생리컵 꼬리 부분을 잡고 살살 당겼다가 생리컵 엉덩이를 꼬집어 공기를 빼서 다시 질 밖으로 꺼내면 된다. 생리컵을 빼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질 안에 깊이 들어가 있는 생리컵을 빼기 위해서는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응가 할 때처럼 힘을 주고 앞서 말한 것처럼 꼬리부터 살살 당겨 꺼낸다. 이후 과정은 위와 같다.

 

생리컵은 이렇게 보관해요
생리컵은 이렇게 보관해요

생리컵, 페미니즘과 여성의 삶을 연결하다.

생리컵 사용은 편의성, 경제성, 반영구성 등의 장점이 있지만,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긍정할 수 있게 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삽입형 생리용품을 터부시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의 사회 분위기에서 여성은 그동안 다양한 생리용품을 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여성이 자신의 질 내부를 탐색하고, 생리컵에 받아진 혈을 보며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생리컵은 여성의 삶을 바꾸고 있다.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기는커녕 몸을 만지는 것도 쉽지 않았던 여성들이 생리컵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몸에 대해 전보다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생리컵을 선택하는 것은 치밀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사회가 요구해온 순결과 무결의 여성상에 저항하며, 여성 스스로 해방의 길을 모색한 결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생리컵 단점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느냐고? 사실 아직 단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굳이 꼽으라면 남성들이 싫어할 수 있다는 것. 나의 경우는 전 애인으로부터 질 안에 왜 다른 걸 넣냐는 해괴망측한 쌉소리와 더불어 온갖 질타를 견뎌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니 몸이 아니라 내 몸’이라 응수하긴 했지만.

어느샌가 내게 생리컵은 생리 기간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많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두고 생리컵을 쓰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 생리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들에게 생리컵을 선물하며 이쪽으로 넘어오라고 손짓한다. 어라 당신, 아직 생리컵 안 써 봤나요? 자, 인터넷을 켜고 생리컵! 검색, 실시!

 

 

글쓴이 소개

히니 _ 책 읽기와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평생 할 수 있는 활동이 무엇인가 찾다가 덜컥 고향 포항에서 수제디저트 카페 겸 책방 <B급 취향>을 차렸습니다. 매일 디저트를 만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것이 너무 즐거운 반면, 몸이 한 개여서 억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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