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드는 복도에 앉아 도나타와 나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에는 왜 왔어?”

가을학기가 시작한 지 2주 차가 되자, 교수님들은 차차 과제를 내시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인 분쟁 보도 수업에서도 첫 번째 과제가 나왔다. 언론 수업을 듣는 학우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었다.

“인터뷰 시작할게. 이스라엘에는 왜 왔어?”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라고 쓸 때 나는 특정 도시명으로 읽는다. 우리가 익히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지역들이 사실은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은 그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곤 한다. 예루살렘은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으로 나누어져 있고 동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병합했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영토이다. 기독교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베들레헴, 여리고, 헤브론 역시 전 지역이 팔레스타인 행정자치구역이고 헤브론의 경우 일부 지역(H2)에 한하여 이스라엘이 군사 지배를 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아랍 구역, 유대 구역이 분리되어 있고 동예루살렘은 국제법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영토에 해당한다. 사진 출처=ecoticca
예수탄생성당을 배경으로 크리스마스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예수탄생성당이 위치한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이다. 사진 출처=Majdi Mohammed, AP

도나타는 ‘이스라엘에 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예루살렘에 왜 왔느냐’라고 읽었다.

도나타의 질문은 하나였지만 그 대답은 나의 다양한 정체성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궁금하지 않았을, 기대하지 않은, 너무 사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스라엘이 전쟁범죄국가라고 주장하는 것도, 내가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것도 모두 도나타가 예상할 수 있었던 대답은 아닐 것 같았다.

예루살렘에 간 나의 표면적인 목적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행위에 대한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팔레스타인 이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학부에서 국제인도법1) 학회 활동을 하기 전까지 전투원의 행위를 제한하는 국제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전쟁/무력충돌은 자기방어를 위해 그야말로 모든 법이 멈춘 긴급상황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 전후로 ISIS의 민간인 학살과 이에 대한 반테러행위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집중적으로 이어지면서 전쟁법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ISIS에 대한 반테러리즘이라는 명목하에 미국과 러시아는 군사목표물(ISIS 요원)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원을 폭파하였고 예배를 드리고 있던 민간인들은 무고하게 생명을 잃었다. 미국은 군사적 필요만을 중시한 나머지 치밀한 계획 없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다. ISIS의 세력 확장은 민간인들의 피해를 낳았지만, 강대국의 무력행위 역시 수많은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반테러리즘이라는 기치 하에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강대국의 전쟁범죄 행위들에 관심을 갖고 조사했고 이스라엘도 그중 하나였다. 이스라엘의 가자 폭격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분리 정책은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만큼 끔찍하고 악질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자폭격과 분리정책을 수십년째 지속하고 있지만 하마스를 테러리스트화하고 정당방위를 내세우며 비난을 면해왔다.국제형사재판소2) 소추부는 2015년 팔레스타인 사태3)와 관련한 군사 행위가 로마 규정상 4대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는 예비조사를 시작했지만 (2017년 당시) 3년을 넘게 예비조사 결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국제인도법 공부 2년 짬밥으로 생각해 봤을 때 기소 요건을 만족한다는 막연한 결론은 있었지만, 근거 없이 주장만 할 수는 없는 법. 스스로 논문을 쓰든 소논문을 쓰든 ICC가 판단을 안 해준다면 나라도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예루살렘으로 떠났다.

 

2014년 가자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사진. 사진 출처=앰네스티

그러나 시리아나 이라크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당시 시리아와 이라크는 입국금지 국가로 분류되어 개인 경호원이 있어야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외국인이 방문하기에 안전하고, 퀴어 친화적이어서 놀 게 많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를 배경으로 한 퀴어페스티벌은 이스라엘에 대한 엄청난 환상을 가져다준다. 사진 출처=Timeout 이스라엘 LGBTQ 가이드

입국을 하고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한 달 동안은 이런저런 퀴어 모임에 다니느라 바빴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안 되어 비행기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함께 예루살렘 LGBTQI+ 페스티벌에 참여하였다. 당시에는 핑크워싱4)이라는 개념을 몰랐고 이스라엘의 점령 실태와 이스라엘의 퀴어 친화적인 문화와의 관계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나고 들어본 워싱은 ‘돈세탁’, ‘학벌세탁’이 전부였다. 퀴어페스티벌에 이스라엘 국기나 다윗의별(유대교의 상징)이 혼합된 무지개 깃발이 있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긴 했지만 ‘이스라엘이 퀴어 친화적이고 다양성을 잘 보장해서 저런 깃발도 있나 보다.’하고 오히려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서울에서 학부를 다녔다면 해방촌이나 이태원 종로를 이미 다녔겠지만, 지방에서 학부를 다니다 보니 퀴어들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소했고 예루살렘에서 뒤늦게 찾은 자유에 나는 너무나 만족해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윗의별 및 국기. 사진 출처= Haaretz

이후에도 유대여성 퀴어모임, 예루살렘 오픈하우스에 속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점차 유대인 중심 모임에서는 팔레스타인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또한 성별에 관계없이 군복무를 하는 이스라엘의 특징상, 연애 이야기를 하든, 친구 이야기를 하든 군복무 시절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데, 이스라엘 군대의 반인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무지를 넘어 무감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게이, 레즈비언, 트렌스젠더의 행복추구권은 이야기하지만 정작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없는 존재와 같았다. 이스라엘의 분리 정책은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퀴어단체에 거리감을 느끼던 중 우연히 Imbala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한눈에 반해 바로 정착했다. Imbala는 점령 반대 운동을 중심으로 퀴어, 비건, 페미니즘, 동물권, 환경 등의 교차적 정체성에 동의하는 활동가들이 모이는 예루살렘에 기반한 시민단체 연대체였다. 나는 Imbala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한 달에 4번씩 (하루 3시간) 카페 운영을 도우며 새로운 활동가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소개로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 열리는 시위나 모임에 참여했다.

 

도나타는 인터뷰 당시에는 나의 주장을 여러 의견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듯 했으나 점차 더 많은 생각을 공유하게되었고 시위에도 같이 가곤 하였다. 동예루살렘 Sheik Jarrah 가옥철거반대시위 현장

Imbala에서 운동을 하면서 BDS와 핑크워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전에 ‘이상하다?’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퀴어 페스티벌에 국기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가?’ 이에 대해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스라엘 퀴퍼에서는 국기가 사용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그 정치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한때 짝사랑하던 사람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군 내 첫번째 오픈리 트랜스젠더 장교로 군과 외교부의 지원 하에 IDF(이스라엘 군대) 홍보활동을 했다. UN에서 이스라엘 군대 내 성소수자의 인권 보호 실태를 홍보하는 그는 왜 사적인 자리에서 단 한 번도 팔레스타인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땅과 자원과 피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팔레스타인을 뺀 이스라엘의 인권실태 홍보가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 보았을까? … 등등.

 

이스라엘 군을 홍보하는 트렌스젠더 장교가 미국 시애틀의 LGBTQ 위원회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사진 출처=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퀴어들의 모임 시애틀지부

물론 누군가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은 이스라엘이 아니었으면 돌 맞아 죽었다. 이스라엘이 통치하는 것이 PA5)가 통치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의도는 이해가 되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팔레스타인 퀴어 역시 내가 그러했듯 이스라엘의 개방성이 숨통 트이는 듯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이스라엘 시민들을 위한 장치의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오히려 아랍인들과 유대인이 하나 된 퀴어퍼레이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 폭력, 및 차별을 우리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하지 않고 그들의 주거권, 생존권, 이동권, 그리고 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위협한다. 그들은 인구가 아무리 늘어도 집을 증축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해서는 도시계획이 없고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혹여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층을 높이거나 신축공사를 했다가는 철거 명령이 떨어진다. 그마저도 굴착기를 고용할 돈이 없으면 망치로 스스로 집을 부숴야 한다.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가옥이 건축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강제 철거당하는 사진. 그러나 아랍인이 건축 허가를 받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진 출처=Mahmoud Illean/AP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으로 들어오는 물의 양은 이스라엘 영토보다 현저히 적다. 이스라엘이 산맥의 줄기를 따라 물이 많이 생기는 길목을 점령하거나 물길의 방향을 인위적으로 틀었기 때문이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도 팔레스타인 동네는 입구와 출구가 정해져 있다. 길이 있어도 이스라엘 지방정부 혹은 군대의 통제로 길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디서든 이유를 모른 채 수색을 당하며, 길거리에서 경찰이 영장 없이 붙잡아가고, 폭행을 하고, 고문을 해도 저항할 방법이 없다. 저항을 하더라도 이스라엘 군사재판소에서 사건을 심리한다.

이 거짓말 같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퀴어 친화적인 제도와 문화를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들을 이루는 다층적인 정체성들 중 팔레스타인 민족이라는 정체성에 기꺼이 눈을 감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 모든 힙한 세계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이루는 다층적인 정체성을 직시하고 공동체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반응을 한다면 이스라엘을 단순히 ‘개방적이고 게이 프렌들리한 나라’, ‘나의 인권을 보장해 주는 나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70년째 투쟁 중인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며 우리는 이스라엘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No to Pinkwashing.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퀴어 해방 없다.

 

 

글 / 희동

대학에서 학내 청소노조 연대 활동을 하였습니다. 현재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자원활동가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1) 국제인도법은 전쟁 시 민간인과 부상병, 문화재 및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전쟁행위를 규율하는 법이다.

2)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는 상설 재판소로 국가 간, 국가 내 무력충돌 시 국제인도법을 위반하여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책임자 개인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을 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가지는 중대한 범죄는 집단살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침략범죄 네 가지이며 로마 규정을 통해 이를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로마 규정을 비준한 당사국은 123개국이며, 미국, 이스라엘, 중국 등은 당사국이 아니다. 현재까지 30건의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다. ICC 소추부는 2015.1.16.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한 예비조사를 시작하여 2021.2.5. 이스라엘에 대한 정식 수사 결정이 내려진 상황이다.

3) 정식 수사 결정이 나지 전까지는 사건(case)이 아닌 사태(situation)의 지위를 갖는다.

4) 핑크워싱(Pinkwashing)이란 퀴어를 상징하는 ‘핑크’와 긍정적인 이미지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한다는 의미의 ‘와싱’을 합친 단어이다. 기업, 국가 혹은 정부가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한편 그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이면에 있는 그들의 부정한 행위를 세탁하는 전략을 지칭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맥락에서는 이스라엘이 성소수자 친화적인 제도와 문화를 전면에 드러내어 홍보함으로써 팔레스타인에 대한 점령과 인권유린 행위를 가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떠올릴 때 흔히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긍정적인 이미지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5) PA(Palestine Authority)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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