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9)

교육실천 과정에서 교사는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수많은 악동을 만납니다. 교사의 삶은 아이들을 떠나 생각할 수 없는데, 교직이 힘들다 하는 것은 아이들과 부대끼는 것이 힘들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교육의 본질은 사랑이지만, 교사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나 사랑의 그릇은 무한하지 않아서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모든 아이들을 다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사랑하기보다는 덜 미워하는” 우회적인 형식을 취하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교사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아이는 크게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교사를 힘들게 하는 아이이고 다른 하나는 교사를 힘 빠지게 하는 아이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흔히 ‘말썽쟁이’라 일컫는 부류인데 이런 아이들은 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급우들에게도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이런 아이들과는 달리 친구들에겐 폐 끼치지 않으면서 교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아이가 있습니다. 전자의 아이들이 너무 나부대서 문제라면 이런 아이는 아무 것도 안 해서 탈입니다. 교사라는 존재의 이유는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는데 무엇을 도무지 배우려 하지 않는 아이는 스승됨에 심각한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말썽을 피우지는 않지만 어떤 활동에도 흥미나 열의를 보이지 않는 아이, 공부는 물론 놀기도 잘 못해서 교우관계도 원만하지 않는 아이, 그래서 학급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아무 존재감이 없는 아이, 교사로 하여금 ‘학교에 뭐 하러 오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아이, 이런 아이 앞에서 교사는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런 아이도 부모 입장에서는 가장 소중한 아이라는 것입니다. 이 엄중한 진리는 우리 관념 속에서는 정립되기 힘듭니다. 아이의 부모를 직접 만나 봐야 뼈저린 각성이 찾아듭니다.

학부모와의 면담은 교실에서 만나는 것보다 교사가 아이의 집을 찾아 가서 만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둘의 차이는 ‘호출’과 ‘방문’의 차이라 하겠습니다. 학급사회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라면 그 부모 또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응달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분에게 교사는 자신을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아이의 집을 찾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정방문을 통해 교사는 부모를 만나고 아이를 만나고 또 아이의 삶을 만나는 실익을 얻습니다. 교사가 자기 집을 찾아주었다는 그 자체로 아이는 학교에서와 다른 자세로 교사를 만날 것입니다. 학교에선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을 선생님에게 조금씩 열어 보일 것입니다. 교사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집 문을 나설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찾아들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아이는 없다!

공부는커녕 숙제도 잘 해오지 않아서 실망스럽기만 한 아이, 얼굴도 못 생기고 차림새도 늘 꾀죄죄해서 도무지 안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아이, 이런 생각이 들 때 그 아이 뒷편에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기 바랍니다. 그 부모에게 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소중한 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시골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가정방문 나갔을 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고춧가루 묻은 사발에 연신 권하는 탁주를 마시고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집을 나서는데, 고깃고깃 접은 5천원권 지폐 한 장을 제 손에 쥐켜 주시며 “우리 손자 잘 부탁한다.”는 ‘청탁’을 하시던 할머니! 등이 굽을 대로 굽은 그 노파는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였습니다. 나는 그 날에서야 왜 아이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지 왜 아이가 숙제를 잘 해오지 않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덜 미워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지금까지 제가 언급한 범주에 들지 않아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악한 세파 탓에 고약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아이야말로 교사의 사랑이 필요한 아이일 지도 모릅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 이 세상을 향해 증오심만을 키워가는 아이. 성자가 아닌 이상 이 모든 아이들을 가슴에 품기가 힘든 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우리가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먼 훗날 아이는 기억할 겁니다. 그래도 한때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셨던 그 한 사람을 떠올리며 삶과 인간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전기를 삼을지도 모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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