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Marvel Cinematic Universe)가 아닌 현실의 슈퍼 히어로 이야기

 

"세상을 구한 남자" 포스터 이미지
<세상을 구한 남자> 포스터 이미지

1_ 혼돈의 대선, 재소환된 사드(THAAD)

 

입장은 달라도 미래를 설계하는 비전의 제시는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그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얕은 정략과 계산만이 난무하는 20대 대통령 선거를 지켜봐야 하는 많은 이의 가슴이 먹먹한 요즘 시국이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대안은 없이 그저 대중의 말초적 요구를 충족시키거나, 갈등을 부추기는 형태의 그릇된 선동이 팽배한 선거판을 보면 한숨만 나올 지경인데, 가장 고민하고 숙고해서 나와야 할 안보정책마저 긴장도 고민도 없어 보여 한숨만 나온다.

그중에서도 과거 정부들에서 눈 가리고 아웅 격으로 은근슬쩍 처리해온 사드 문제가 재 소환되는 과정은 그저 뒷목 잡아도 시원찮을 지경이다. 유력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고, 다른 한 명은 주한미군 장비를 배치해서 문제가 되었으니 우리가 구매해서 배치하면 된다는 괴이쩍은 주장을 펼친다. 이런 대선 판이니 사실상 사이비 교주에 불과한 후보가 사이다 발언이라며 의외의 지지율을 보일 지경이다. 현실 정치의 희화화는 정치 자체의 질적 저하로 치닫고 있다.

하나씩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대선 후보들의 사드 관련 입장은 별 고민 없이 내는 임시방편에 불과해 보인다. 안보를 외치지만, 실제로 한반도의 정치외교 방향이나 군사안보적 상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 없이 주변의 미덥지 않은 조언에 끌려다니거나 표 계산 외에 별 고려 없이 내뱉는 소리에 가깝다. 지금도 사드 때문에 고초를 겪는 이들로선 울화통이 치밀 노릇이다. ‘치킨 호크’의 폐해는 안보를 외치는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고 한다.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강대 강’ 입장이다. 북한의 위협을 막기 위해 사드의 추가 배치가 절실하다는 주장도 드높다. 실제로 사드가 무엇을 겨냥하고 무엇을 막기 위한 체계인지 설명은 없이 뭐라도 있으면 낫지 않겠냐는 ‘공포 마케팅’의 일환이다. 현란한 수사학과 대중의 심리적 불안에 효과적으로 먹혀들지만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과연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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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 공포의 균형, “MAD”의 시간

 

어떤 정치인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주한미군이 과거에 배치했다가 철수한 전술 핵을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정작 미국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다음 순서로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갖춰서 응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외친다. 유력 대선후보의 발언에서 확인되는 내용이다. 이는 곧 “MAD”, 상호확증파괴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려운 군사정치용어이지만 쉽게 말해 “너 죽고 나 죽자!”를 통해 ‘공포의 균형’을 유지해야 핵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과거 동서 냉전 시절, 즉 2차 대전 종전 후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반세기 동안 이 상호확증파괴 전략이 성공한 덕분에 인류를 종말에 몰아넣을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신 핵무장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핵전쟁은 오히려 예방되었다는 논리다.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내세우는 전가의 보도 같은 논리다. 하지만 그 ‘공포의 균형’을 만들기 위해 소련과 미국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엄청난 군비를 투자해야 했다. 물론 이 논리를 신봉하는 이들은 그 경쟁 결과 먼저 경제가 파탄 난 소련이 몰락해버리고 세계는 평화로워졌다고 주장한다. 과연 세계는 더 평화로워진 걸까?

1991년 냉전체제 종결 후 오히려 정치적·이념적 냉전 구도와 초강대국 간 세력균형으로 인해 위태롭게 유지되던 민족·종교·지리적 갈등은 분출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온갖 내전과 테러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핵무장을 통해 초강대국의 그늘을 벗어나고픈 지역 강국들이 핵개발을 추진하다 제재를 받고 국제적인 마찰을 일으키는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거나 자체 핵개발 능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평가받는 북한이나 이란은 수십 년째 미국과 분쟁을 겪는 중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의 논리는 이렇다. 핵은 강대국의 손에 의해 안전하고 확실하게 통제되고 있으니 강대국의 핵은 괜찮다. 오히려 평화를 유지하고 핵전쟁을 예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한 제3세계 국가들이 핵을 가지면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현재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정확히 UN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이다. 이들이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최종 결정권자들인 셈이다. 그 외에 사실상 핵무장을 하고 있지만 묵인되는 국가들이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다. 이들은 동서냉전 구도에서 양 진영의 계산 아래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럼 북한은? 북한은 ‘허락받지 못한’ 상태다.(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의 핵 보유는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은 투정 부리는 말썽꾸러기처럼, 혹은 고도의 치밀한 정치-외교적 책략으로 군사 대결이 불가능한 경제 상황을 만회하고자 벼랑 끝 외교의 수단으로 핵카드를 움켜쥐고 있다. 이 때문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욕먹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몰락은 핵이 없어서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없더라도 핵을 포기할 계획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생각을 마치 거울로 반사하듯 펼치는 이들이 국내에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것은 핵무기를 자진 철거했기 때문이고, 핵을 가졌다면 전쟁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우리도 핵개발을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검증 안 된 위험천만한 주장이 온라인에선 구국의 결단인 양 팽배하다. 국제정세 상 불가능한 일임에도 논리적 고찰은 사라지고 감정적 선동이 휘몰아친다. 하지만 주유소에서 담뱃불을 켜지 않는 것처럼 위험한 물건은 일단 없애는 게 가장 안전과 평화에 부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세상을 구한 남자"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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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_ 1983년 9월 26일, 아무 일도 없었던 날

 

1983년 9월 26일, 겉으로는 평화로웠고 이후 역사에서도 별일 없던 것으로 기록된 날이다. 이날 소련의 핵미사일 기지 당직을 서고 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라는 방공군 중령이 있었다.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는 군 편제에 더해 소련을 위시한 구 동구권의 경우에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결을 전제해 압도적인 공군력을 가진 서구에 대항하는 방공을 중시, “방공군”이 별도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았음) 상관들은 모두 퇴근하고 페트로프 중령은 당직사령으로 근무를 서던 깊은 밤, 상황실로 미국의 핵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긴급한 속보가 날아들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며 추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눌러야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당시 현장에서 최선임자로 보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의 보고를 상관들은 우선적으로 믿게 될 상황이었다. 실은 그 며칠은 미국과 소련 사이 냉전과 핵전쟁 위협이 극점을 향해 치닫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소련의 최고 권력자인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은 지병으로 오늘내일하던 상태라 중요한 정치적 판단과 결정에 차질이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때었다. 일단 그는 상황을 지켜본다. 그러나 곧이어 4발의 핵미사일이 추가로 발사되었다는 정보가 인공위성을 통해 날아들었다.

정보에 의하면 5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소련으로 날아오는 중이었다.(지금 북한이 실험하는 것보다 당시의 소련 핵미사일이 훨씬 더 뛰어난 성능과 파괴력을 갖고 있었다) 순간 페트로프 중령은 아마 그의 어깨에 전 지구적 핵전쟁이 걸려 있다는 사실에 몸도 가누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온갖 추론 끝에 상급자에게 마침내 컴퓨터의 오류인 것 같다는 보고를 마치고 대기 상태를 유지하기로 한다. 핵미사일은 끝내 날아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인공위성이 태양빛의 반사를 잘못 판단했다는 결론이 확인되었고,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받았다. 엄연히 실재했던 사건이다.

“그건 내 일이었다.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 장소에 마침 내가 있었을 뿐이며 그게 전부”라고 진정한 ‘소비에트연방 영웅’은 겸손한 후일담을 남겼다. 하지만 촉망받던 그의 군 경력은 그걸로 끝장났다. 있어서는 안 될 컴퓨터와 위성 오작동을 은폐하고 싶었던 당시 소련 군부는 그를 한직으로 내몰았고, 변경으로 좌천된 그는 결국 군 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후 여러 가정사의 불행을 겪으며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아야 했다. 페트로프 중령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정말로 멸망의 위기에 처했던 세계를 구했지만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묻혔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구소련 시절의 사료를 연구하던 이들에 의해 그의 영웅적 일화는 한참 뒤에야 발견되었다. 뒤늦게 그에게 세계시민상, 유엔 표창장, 드레스덴 상 등이 수여되었다.

그가 당직을 맡던 1983년 9월 26일 밤은 바로 3주 전, 우리에게 비극적 기억으로 남은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이 발생해 동서 간 긴장이 극에 달해 있던 시기다. 미국의 당시 대통령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탄했다. 곧 대규모 핵전쟁 예행 훈련이 미국 주도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 결정적인 위기 국면에서 한 평범한 중령이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구한 것이다.

 

"세상을 구한 남자"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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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 믿거나 말거나, <세상을 구한 남자>의 이야기

 

이 기구하고도 놀라운 이야기는 국내에선 ‘믿거나 말거나’ 취급받는 TV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나 다뤄져 왔을 뿐이다. 하지만 2015년에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그의 생애를 다룬 <세상을 구한 남자>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면서 작은 화제가 되었다.

영화는 2가지 이야기를 교차해 소개한다. 첫 번째는 바로 1983년 그날의 상황을 재연하는 상황극, 두 번째는 이후 외롭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던 페트로프 중령이 늘그막에 자신의 업적이 알려져 뉴욕 UN 본부로 수상 차 방문하는 실제 기록 영상이다. 퇴역 후 불우한 일의 연속으로 주변에선 그저 괴팍한 노인으로 통하던 그의 당시 행적이 알려져 유엔 방문을 준비하는 데서 다큐멘터리는 출발한다.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미국 땅에 생전 처음으로 발을 디디고 여기저기를 여행한다. 그의 영웅적 행적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배우 케빈 코스트너는 페트로프를 자신의 영화제작 현장으로 초청해 인사하고, 훗날 이 다큐멘터리의 해설을 맡기에 이른다. 뉴욕에서는 로버트 드 니로나 맷 데이먼 등 여러 유명 인사를 만나고 유엔에서 수상소감으로 연설도 갖는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날 밤의 선택과 결단으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초라한 말년을 맞았다. 그의 영웅적 행보에 비하면 뒤늦은 치하는 너무나 부족할 뿐임을 그가 겪은 불행을 통해 공감할 수 있다.

이런 묘사를 통해, 영화는 소외된 영웅의 말년 성공담이 아니라 (그를 좌천하고 탄압한 당시 소련의 권력자들이 아닌) 평범한 당직군인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나 홀로 분투해야 했던 아이러니를 적절히 풍자한다.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위대한 일을 해냈지만, 정작 그의 조국에선 터부시당하고 그의 업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미국 여행 중 냉전 당시 미국이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었던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신분을 밝히자 경비하던 군인들은 경의를 담아 기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는 그곳에서 30년 전 체험했던 그날 밤을 상기한다. 과연 그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를. 거대한 수직 동굴 안에 있었을 미국의 ICBM의 규모는 지금 봐도 소름이 돋을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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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 년이 지나 그는 홀로 은거하던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페트로프의 죽음은 그의 영웅적 결단이 15년 후에야 밝혀진 것처럼 사망한 지 4달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영화를 제작한 독일 감독이 그의 생일을 맞아 안부전화를 했다가 2017년 5월에 그가 작고했음을 확인하고 외신에서 기사화되었다. 이후 1983년 9월 26일 그날 밤 외에도 지난 냉전 시기 동안에 미국과 소련 양쪽에서 유사한 사건이 수십 차례 일어날 뻔했음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인간과 기계 모두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5_ 냉전 시대의 해프닝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라는 위대한 영웅이 1983년 9월 26일 밤에 당직 근무를 서지 않았다면? 이 사연이 비교적 알려진 서구에선 숱한 가설이 대두되었다. 대부분 끔찍한 핵전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미 냉전 시절에 이런 상상력은 여러 편의 영화로 선보인 바 있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와 같은 해에 개봉한 <핵전략사령부> 모두 미국이 소련에 우발적 핵전쟁을 감행하게 되는데, 둘 모두 통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단정하는 황당무계한 해프닝에서 시작된다. 우연한 사고가 일어나는데 경직된 수뇌부와 중간 전달 과정의 오류 때문에 사태가 악화한다. 기름 위에 불장난 격이던 온갖 반격 장치를 통제하지 못해 멸망의 위기로 치닫거나 막대한 희생 끝에 겨우 공멸을 면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다.

이 작품들의 경고는 단순하다. 흉악한 물건은 그저 영구히 없애버려야 안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건 필부의 지혜가 아니라 동서고금의 진리다. 무기를 쟁여두면 그것을 쓰고 싶은 욕망이 음험하게 고개를 내밀게 마련이다. 사드가 방어를 위한 장비라고 옹호하는 이들은 주장할 테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반세기 전 영화들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는 요인은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없으면 아예 걱정할 일도 없다. 서로 공포의 균형으로 겨우 정치군사적 모험을 억제하고 있던 게 우발적 사고나 상대방의 허실을 확인한 순간 바로 봉인이 풀리는 식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위협을 제거하는 방안이 느려터진 것 같아도 유일한 대안임을 복잡한 국제정치 논문이 아니라도 대중영화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저 받아들이기 싫어서 외면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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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세상을 구한 남자 The Man Who Saved the World

2014, 덴마크, 다큐멘터리, 110분

감독 페테르 안토뉘

출연 케빈 코스트너, 월터 크론카이트, 로버트 드 니로, 맷 데이먼, 애쉬튼 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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