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있는 반말’에는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평어’라는 언어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 커뮤니티 디학(디자인학교) 열다섯 명의 글이 담겨있다.

언어가 가진 권력을 직시하고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직면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을, 당연함의 렌즈를 벗는 새로운 소통 방식인 언어에서 시도한다. ‘평어’라는 언어를 실행하며 변화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디자인과 미학 전공자들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예의 있는 반말>, 이상민 외 14인 공저, 텍스트프레스, 2021.09.07.

평어는 위계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 상하관계를 의식할 때 사용하는 호칭을 걷어내고 이름으로만 부른다. 언니, 오빠, 선배, 후배라는 호칭을 없애고, ‘~님, ~씨, ~야,~아’를 붙이지 않는다. 존대법에서 벗어나서, 사람을 고유명사로 존중하며 상대를 개성을 가진 한 개인으로 인식한다.

한국인의 언어는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존비어체계가 있다. 부모와 자녀, 선생님과 학생, 직장 내 상사와 부하는 같은 공간에 위치하지만 수직적 위계가 작동한다. 즉, 누군가는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 구조에 익숙해진다.

평어는 기존 언어체계에서 쓰던 존댓말, 반말과 다른 개념의 언어다. 나이 상관없이 성을 빼고 이름을 부르고 이름 뒤에 붙이는 ‘~야’를 붙이지 않는다. “지영, 잘 지냈어?” “천만에, 연주” “동창, 고마워”처럼.

 

평어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위계를 없애고, 오롯이 그 사람과의 대화와 교감에 집중하게 하는 마법의 언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p85

높임의 의미들이 문장에 끼어들어 말이 불어나기 쉽고, 불어난 언어 사이에 내 의견을 감추기도 쉽다. 반면 평어는 반말의 형태를 하고 있어 높임말보다 간결하다. 그래서 나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72

 

몇 년 전 평어의 개념을 잘 알고 있던 A가 ‘~ 선생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는 구조의 전환을 요구했다. 활동가 평균연령이 40세를 넘은, 매너리즘에 충만한 조직이 일렁이던 순간이었다.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던 조직은 ‘회원님과 연장자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예의(?) 없는 논란을 수평적 조직에는 없다던 위계를 수면으로 띄우고 끝났다.

 

평어를 통해 대화의 광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등 뒤가 아닌 어깨를 나란히 해보려고 하는 시도, 이러한 작은 움직임은 대화 자체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던 태도를 조금씩 적극적으로 바꿔줬고 느리지만 천천히 광장 안을 누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P127

 

‘너’를 사용하는 평어로 번역된 외국 영화는 등장인물의 언어가 일직선에 있어 스크린의 몰입도가 높다. 할아버지를 ‘토마스’라고 부르는 손자처럼 직접적 관계에는 더 친밀하고 원만하게 그려진다. 함대의 지휘권을 맡기는 함장에게 손사래를 치며 ‘아이고, 아직 함장님이 맡으셔야지요.’라고 마음에도 없는 예의를 치는 대신 “그럼 You(너)는 이제 뭐 하려고?” 하는 부함장의 직접적이고 진지한 방식의 평어 질문은 영화에서만 가능할까?

 

평어는 심리적 높낮이를 없애려는 시도가 아니라 심리적 높낮이를 자주 뒤집음으로써 어느 한쪽으로 고정되지 않게 하는 발명품일지도 모른다. p140

 

언어의 예의와 싸가지의 기준은 어디이며, 누가 정하는 것일까.

우리가 창조해야 할 신념과 이념이 공고한 위계 안에 헛걸음치고 있을 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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