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어코 침공했다. 구소련 시절 체코 헝가리 침공을 지나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2014년에 합병하더니 다시 이제는 우크라이나 자체를 공격한 것이다. 크림반도 합병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는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 아니라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었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크림반도 합병 이후의 전략을 개시한 것뿐이라는 말이다. 푸틴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언론에 흘렸지만, 푸틴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폴란드 등 동유럽이 미국의 수중에 들어가 있고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에 미군의 미사일 기지가 들어와 있으며 카자흐스탄이 이미 원조 대가로 핵을 포기한 상태에서, 러시아는 좌우로 미국과 나토의 경계에 끼어 있는 형국이 되었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과거에 구소련에 대항하고자 만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강고한 동맹 체제를 구축한 상태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폭발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살얼음판이었다. 또한 그동안 에스토니아 등 북쪽의 발트 3국 연안에서는 미국과 러시아의 공군이 긴장 상태에 있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동서남북으로 미국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인 위치에서 러시아는 고립되어 있다. 자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미국의 패권에 맞서고자 중앙아시아 키르키스스탄 공화국에 고속도로를 깔아준 중국이나, 백러시아(벨라루스) 정도가 친러시아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중국도 실리적인 이유로 인해 대놓고 러시아를 지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뿐만이 아니라 군비 지출 규모에서도 러시아는 열세다. 현재 러시아의 군비 지출 규모는 467억 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 비해, 미국과 나토의 군비 지출 규모는 무려 1조 1740억 달러에 이른다.

 

구글 지도 갈무리
구글 지도 갈무리

전쟁은 안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평화는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자본주의 체제 경쟁이 지속되는 한, 전쟁은 세계 어디에서도 발발한다. 게다가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을 대리 삼아 자신들의 제국주의 전쟁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평화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무조건 평화’만큼이나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없다. 전쟁은 안 되지만, 무조건 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요즘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도하는 국내 언론을 보면 우려스럽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가 러시아어라고 해서 우크라이나어인 키이우로 보도하면서, 일방적으로 러시아를 매도하는 분위기다. 푸틴이 정치적으로 독재자인 것은 맞지만,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나 러시아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이것은 양비론 문제가 아니다. 한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양비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크게 보면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는 같은 동슬라브족이고,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과거 키예프공국이 있던 곳이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과 나토는 외세다. 국내의 보도 분위기는 미국과 나토의 입장에만 서 있다. 차라리, 중립적인 위치에서 미국과 나토, 그리고 러시아를 동시에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편으로만 치우친 보도만 내보내고 있다. ‘푸틴의 악마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도처에’ 있다.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조직인 나토 또한 ‘악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 1990년대 발칸전쟁, 유고슬라비아 해체,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 헤르체고비나 폭격, 보스니아 인종청소 등 미국과 나토는 구소련 해체 이후 세계자본주의 하에서 군사적 패권을 쥐기 위한 악마 짓들을 많이 해 왔다. 한국전쟁 또한 그러지 않았는가? 문제는 거기에 각 주권국가들이 자신의 주권조차 하나 지키지 못한 채 대리국가로 전락해 있다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이 주장하듯 신나치국가든지 아니든지 간에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크라이나의 지배세력이 그렇다는 말이다. 중국과 대만 및 홍콩 그리고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중앙아시아, 미국과 나토 및 세계의 모든 분쟁지역에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벌어지는 전쟁은 거의 대리전이다. 한 주권국가의 운명을 자본주의적인 체제 경쟁을 벌이는 제국주의 국가들 혹은 강대국들의 손아귀에 맡기는 지배세력들이 더 문제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러시아만 ‘악마화’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는 ‘평화’란 단어만 반복한다. 문제는, 대리전쟁이다. 왜 한 주권국가가 외세와 결탁한 지배계급의 일방적인 외교에 떠밀리고 그것으로 인해 아이 어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반 국민이 죽어나가야 하는가? 진짜 악마는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인가? 미국과 나토인가? 진짜 악마는 ‘우리’ 안에, 여기 대한민국에 숨어 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하고, 또한, 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한, 그래서 우크라이나에서 중립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푸틴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지배세력들이 제거되어 우크라이나가 친러 국가로 탈바꿈하든가 러시아 경제가 파산 위기에 빠지든 둘 중 하나다. 물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고 나토에 가입함으로써 푸틴은 더더욱 고립무원 상태에 빠질 것이다(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독일 등의 나라는 표리부동한 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얻은 것은 없고, 경제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슬라브족이 겪었던 고인플레, 루블화 대폭락, 전면적인 화폐개혁 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지만, 루블화 가치가 거의 두 세배 떨어진 상태에서 푸틴도 장기전은 몰라도 자국의 체제 붕괴까지 가지는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창 대선 중이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강대국들의 자본주의 체제 경쟁은 계속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사태, 홍콩 사태 등이 한반도에 도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국전쟁 같은 미소 강대국,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제국주의 국가들의 대리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 미 일 동맹에 너무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 전쟁이 빈발할수록 일본은 헌법 9조를 바꾸어 자위대를 군대로 전환하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이 허용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일본 못지않은 대한민국도 할 말은 없다. 전시작전권 하나 갖지 못한 나라, 도처에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나라가 이곳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강대국의 발길에 이리저리 채이고, 채이다 못해 굽신거리고 야합해 살아가는 지배세력들이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에 풍덩 빠트릴 수 있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간에 미더운 대선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G7에 들어가든 말든 일 인당 소득이 몇만 불이 되든 안 되든, 21세기에도 백 년이 지나도록 주권국가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붕괴한다. 다시, 미얀마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 미래가 도래할지, 언제 도래할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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