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여의 기억

 

공사는 몇 해째 이어지고 있었다. 땅을 깎고 파헤치는 일에 무지하지만, 바다를 끼고 진행되는 공사는 한눈에도 험난해 보였다. 돌을 깎고, 돌을 옮기고, 돌을 쌓고, 다시 돌을 다듬는 과정들이 반복되었다. 덕분인지, 절벽 아래엔 전에 없던 산책로가 생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길은 이참에 바다 위로까지 뻗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머잖아 여름철 관광객들이 환여 바다를 찾아 새로 생긴 스카이워크를 다녀간 뒤 남길 후기의 내용이 괜스레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남은 돌을 파내고, 깎고, 다듬을 것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바다는 설계자들이 의도한 수위와 모양으로 변모할 터였다. 공사의 흔적과 기억은 물 아래에 묻힐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환여 바다가 그곳에 등장해야 하는 것처럼.

공사가 진행 중인 지금의 바다 역시 그 물 아래에 오랜 기억들을 묻어두고 있다. 한때 환여동엔 폭 20m 이상의 모래사장이 1.5km가량 펼쳐져 있었다. 바다 맞은편에 거대한 제철소가 세워지면서부터 포항을 둘러싼 바다의 조류가 변했고, 그로 인해 환여동에 있던 모래사장은 유실되었다. 파도의 수위가 높아지고, 바다가 절벽과 만나는 경계의 모양이 바뀌었다. 지금은 그렇게 부를 일도, 부르는 이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한때 송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환여의 해변은, 사람들의 시선과 기억으로부터 차츰 잊히게 되었다.

송골해변과 함께 잊힌 것은 전쟁을 피해 이곳에 모였던 1,000여 명의 사람들이기도 하다. 1950년 8월 말, 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던 환여동 주민들과 인근 지역에서 온 피난민들이 지금은 사라진 송골해변으로 피난하였다. 대부분 여자와 노인,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바로 눈앞 바다엔 미군함정이 보였고, 자신들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니 오히려 해변이 안전할 것이라고, 이들은 믿었다. 그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던 9월 1일 오후, 미군함정은 느닷없이 이들에게 함포를 발사했다.

“육군으로부터 피난민 속에 인민군이 섞여 있다는 정보를 받았고, 육군이 그 사람들에게 폭격을 요청했다” 그것이 공격의 이유였다. 그러나 미군은 피난민 대다수가 어린아이와 여성, 즉 민간인임을 알고 있었다. 또한, 한국전쟁 동안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은폐해온 한국군은 송골해변의 민간인들에 대한 폭격 지시 또한 거리낌 없이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15발의 함포가 송골해변 위에서 비를 맞던 백 명 이상의 무고한 목숨(신원확인만 51명)을 일순간 앗아갔다. 한국전쟁 시기 발생한 미군의 (한국군의 지시에 의한) 민간인 포격 사건 중 유일한 함포사격 사건이었다.

 

살아남은 유족과 이웃들이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며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慰靈)을 지켜왔다. 하지만 ‘호국’, ‘영웅’, ‘나라를 지켜낸 고귀한 희생’처럼 전쟁을 기억하는 지배적 상징에 담기지 않는 이들의 고통과 기억은 국가와 도시에게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었다. 공식 조사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포항의 13개 마을에서 최소 55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 학살 및 희생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발표됐지만, 국가는 공식적인 사과와 명예 회복, 책임 있는 배·보상을 가능한 한 미루고 있다. 송골해변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피해생존자이자 유족인 방 씨는 기다리다 못해 2013년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그로 인해 책임을 부정하고 갖은 법리를 동원해서라도 배상을 회피하려는 국가의 민낯을 지켜봐야 했다. 그건, 시간이 흘러도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전쟁의 얼굴이기도 했다. 다행히 2019년 재심 끝에 사법부가 국가배상 판결을 통해 방 씨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69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사이 도시는 바다의 모양과 물살을 개조했고, 송골해변은 환여 바다의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소중한 가족뿐 아니라 기억과 애도의 공간을 잃은 유족들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전쟁의 공간(포항시 북구 흥해읍 도음산) 한가운데에 어렵사리 애도의 공간을 마련하였다. 송골해변을, 마땅한 애도의 공간을 수면 아래 감춰버린 환여 바다는, 이제 그 수면 위를 거닐 관광객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이다.

바다 맞은편 거대한 제철소와 해수욕장의 빛이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하는 동안, 환여 바다는 묵묵히 그 바깥으로 밀려난 어둠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몇 해째 이어져 온 공사가 끝나면 이전과 다른 환여 바다가 그 자리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시의 기억은 그 바다의 경계와 수면 위를 거니는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변모해 나갈 것이다. 다만 이런 질문을 던져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바다 위로 길을 내고 어둠을 눈 부신 빛으로 대체할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에겐 바다 아래 감추어진 기억에 다가가고 애도에 함께 할 힘 또한 이미 주어져 있는 게 아닐까. 전쟁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살육과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반복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기억하는 힘은, 그렇게 우리와 우리의 도시에게 주어져 있는 게 아닐까. 72년 전 그 누구보다 간절히 평화를 구하던 이들이 쓰러져간 송골해변은, 세계 곳곳 전쟁과 민간인 학살이 끝나지 않은 오늘, 전쟁과 학살을 결코 되풀이하지 말라는 평화의 목소리로, 환여 바다에 남아 있다. 그 바다 위를 산책할 이들에게, 그러한 평화의 기억이 허락되기를 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에 수록된 2008년 환여동 해변 사진

 

사진, 글 _ 김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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