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9] 선녀가 나무꾼이 되었네
[생태적 삶과 영혼의 집 이야기9] 선녀가 나무꾼이 되었네
  • 이은주
  • 승인 2022.03.21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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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누구보다 먼저 새들이 소란스러웠다. 벌이 날아와 밭 둔덕으로 보랏빛 다홍빛 작은 꽃들이 피어났다. 듬성듬성 가지치기를 한 매화나무에도 연분홍 꽃이 피고, 자리를 옮겨 심어 말라죽은 듯 가벼워진 산수유에도 노란 별들이 매달렸다.

 

사진 이은주

겨우내 한 것은 장작 패기였다. 앞밭에 널브러진 통나무를 도끼로 쪼개서 비에 맞지 않도록 쌓아야 했다. 도끼질을 한 40분을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나고 한 시간을 넘어가면 몸에 에너지가 돌아 계속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신난다고 무리를 하면 육체노동에 단련이 안 된 나로서는 근육 여기저기가 아프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처음 며칠을 하고 나니 팔과 등짝이 아파 또 일주일 쉬었다. 결국, 하루에 한 시간만 하기로 했다.

장작을 패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고 쌓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다. 장작을 쌓을 때는 끝을 우물 정자(丼) 모양으로 쌓아야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몇 번을 무너트리고 나서야 나름 요령을 터득했다. 차고 옆벽에, 뒤 안에 제법 잘 쌓인 장작을 보며 ‘에고, 선녀가 못 되고 나무꾼이 되어버렸네.’ 하며 웃음 짓는다. 이따금은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장작 하나 패는데 500원이라며 시범을 보였다. 장작 팬 수고로 500원을 주면 노동이 되지만 500원을 받으면 체험비가 된다며, 바타카를 치는 대신에 하면 되겠다며, 빈 밭이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사진 이은주

마당 공사는 남아있으나 집안은 얼추 정리되어 1월부터 손님을 초대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슈퍼바이저 선생님들과 오랜 활동가 선생님들이 코로나를 뚫고 왔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저녁엔 벽난로 앞에서 타로 놀이를 하며 올 한 해 각자의 소망과 걱정을 나누었다. 이야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고, 세상에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며 나와 만나진 손주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전하고 사랑하는 일이 기쁘다고 했다. 그래서 힘이 난다고.

다음 날 아침 지난겨울 동안 단 한 번 나렸던 눈발이 마침 그날 아침에 잠시 나렸다. 서울에서 온 70의 여자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각자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송했다. ‘찰나의 풍경’, 온막겨울여행과 함께 ‘영원’ 이 되었다. 해가 금방 나서 마을 산책을 했고 운문사 앞의 독일식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점심을 먹었다. 세상의 변혁과 사랑을 위해 오래 헌신해 온 분들의 2박 3일은, 산사의 깊은 종소리처럼 공간을 메웠고 아이같이 투덜거렸고 깔깔거렸다.

 

사진 이은주

우리 집은 세상과 조금 떨어진 덕분에 안전하게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었다. 대경여연 대표자 몇 사람이 정관 개정을 위해 다녀갔고, 개인 상담을 위해 내담자 한 분이 어머니와 2박 3일 다녀갔다. 교사를 위한 힐링드라마아트스쿨 –평화학교가 2박 3일 열렸는데 마침 참여 인원이 적어 깊이 만나고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이코드라마 수련을 하는 전문가들이 디렉팅 훈련을 위해 2차례 다녀가고 드디어 ‘소풍’을 열었다. 이 공간이 마련된 이유인 ‘소풍’은 내가 세상을 향한 기도이기도 하다. 깊은 자기 이해와 상호 만남을 통해 영혼이 성장해가는 사이코드라마 장. 이를 위해 영혼의 집을 꿈꾼 지 10년이 되어 이 공간이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처음 여는 ‘소풍’은 더 설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은 7할이 음식 준비와 아궁이 불 때기와 청소다. 2할은 뒷정리와 이불 햇볕에 널어 말리기고, 1할이 프로그램 교육자로서 에너지를 쓰는 것 같다. 프로그램은, 주제와 방식을 제안하면 참여자들이 스스로 해 나가며 저절로 이루어져 간다. 나는 수용하는 자로서 가끔 반영하며 나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정도다. 스스로 서로 배우는 구조는 정말 유용하다. 나는 이 방법을 교사와 상담자들에게 가르치고 싶다.

 

사진 이은주

2월이 분주하게 가고 3월을 맞이하며 우리는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다.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생각보다 심한 몸살기로 근육통과 목은 따갑고 부어 소리가 갈라졌다. 가슴과 머리의 통증이 돌아다녔고 기침 가래가 생겼다. 병원에서는 약을 집까지 배달해 줬다. 확진자가 많아지자 배달이 밀려 밤늦게까지 배달하러 다니는 분들에게 감사했다. 개학 날 확진을 받아 하 샘은 아이들을 1주일 뒤에 만났고 나는 3일 확진을 받아 열흘을 자가 격리했다. 이틀은 잠이 쏟아져 잠을 자고 이틀은 기침 가래가 심해졌고 5일이 지나니 좀 나아졌다.

집이 충분히 격리되어 있어 밖으로 나가는 건 아무 문제가 없건만, 우리는 후유증이 있을 것 같아 푸릇푸릇 냉이 봄꽃들이 올라오는 걸 창 너머로만 바라보았다. 밭도 갈아야 하고 거름도 넣어야 하고 유채 씨도 뿌리고, 대추나무 감나무 가지치기도 해야 하는데. 십 수가지 봄에 할 일들을 두고 빈둥거린다는 자책 없이 충분히 쉬었다. 대신 냉장고를 파고 입맛이 없어진 관계로 새로운 요리에 도전했다. 귤죽을 끓이고 홍차와 우유로 짜이를 끓이고 사과를 썰어 말렸다. 사과를 말리며 우리도 함께 햇볕에 말렸다. 잘 먹어야 한다며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기도 하고, 친구가 버섯크림 스프와 야채수프, 샐러드와 훈제오리들이 들어있는 구호 식품 박스를 택배로 보내왔다. “이게 바로 슬기로운 확진자 생활이야.” 하 샘과 나는 마주 웃었다. 외롭지 않은 격리 생활을 마감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사이, 3월도 어느새 하순에 이르렀다. 갈다 만 밭에는 푸른 풀과 꽃들이 가득하다.

 

사진 이은주

 

글 / 이은주(65년 성주 생, 동화작가, 여성주의 사이코드라마티스트, 이은주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 경산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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