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한 선배가 자신의 애인이 흡연자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함께 있던 남자들은 연신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하며 그 선배를 위로했다. 그들의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었다. 담배를 피우면서 흡연하는 여자를 비난하는 그들을 보며, 당시 나는 그들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는 당연히 흡연하면 안 되고, 만약 흡연을 한다면 숨겨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능에서는 여성을 흡연자로 몰아가는 행위를 장난이라 얼버무리며 방송하고, 인터넷에는 흡연하는 여성 연예인 리스트가 게시되거나 극 중 여성 배우가 흡연하는 장면이 짤로 공유되어 그 진위를 가린다. 흡연자로 판별된 여성은 연관검색어에 담배가 함께 뜨는 ‘담피녀’(담배 피우는 여자)로 낙인찍힌다. 나는 시원한 목 넘김과 청량감을 좋아하는 ‘담피녀’다.

흡연하는 여자는 ‘까졌다’거나 ‘못 배웠다’는 어른들의 말, 여자는 미래의 엄마가 될 몸이니 담배는 안 된다는 무언의 사회적 합의, 흡연 구역에 갈 때마다 나를 위아래로 훑는 남성들의 시선. 세상은 내게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을 줄곧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늘 비흡연자인 척하면서 담배를 숨기고 다녔다. 몰래 담배 피우는 것은 일상이었고, 들킬까 두려워하는 것은 습관이 됐다. 내가 흡연자라는 것을 엄마에게 들켰을 때, 엄마는 통곡하듯 목 놓아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나는 엄마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고작 담배를 피우는 게 그렇게 울 일이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포효하듯 울부짖으며 말했다. “여자애가! 담배를!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 엄마는 내가 흡연한다는 이유로 나를 낳아 기른 세월을 부정했다. 여자의 몸으로 흡연하는 것은 불효였다.

나는 흡연하는 여성을 만나면 내적 친밀도가 급상승한다. 담배를 함께 피울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흡연자들에게 큰 기쁨이다. 게다가 흡연을 숨기는 여성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여성 흡연자를 만나는 것이 귀하다. 어쩌다 여성 흡연자를 만나면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간 들킬까 염려하며 늘 숨어서 담배를 피웠을 시간을 서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부쩍 빨리 가까워지는데, ‘학연, 지연, 흡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왜 있는지 알 정도다. 그러나 ‘식후땡’이나 ‘담타’(담배 타임)는 공공연하게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데, 그들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연대감과 소속감을 확인한다. 나는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때 한 번도 내게 ‘담타’를 제안한 남성을 보지 못했다. 여성은 당연히 비흡연자일 것이라는 생각에 배제하는 것이다. TV에서 흡연자로 놀림당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고 낄낄대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분류하기까지 하면서 제 주변의 여성들은 모두 비흡연자일 것이라는 납작한 생각은 여성 흡연자들을 더욱 숨게 만든다.

어느 날 나보다 10살 많은 언니와 들키지 않으면서 흡연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데 불현듯 ‘나 10년 뒤에도 숨어서 담배 피워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흡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흡연하는 장소(지역)가 어디인지 등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지금까지 대부분 숨어서 흡연하며 눈치 보기 일쑤였다. 그래서 여성 흡연자 중 다수가 집이나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 나도 자취할 때 방이나 건물 옥상에서 흡연했다. 경멸적인 시선으로부터 안전한 장소인 집에서 맘 편하게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았다. 그러다 외출을 하면 이리저리 침을 뱉으며 연기를 뿜어내거나 심지어 걸으면서 흡연하는 남성들을 언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디서나 담배를 무는 모습은 남성이기에 가능한 특권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여성이 흡연 사실을 숨기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흡연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 또 불특정 다수에 피해를 주는 것은 남성 흡연자가 많은데, 쉽게 손가락질 받는 것은 여성 흡연자인 아이러니를 여성 혐오 외에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김영사)은 예능 프로 작가 강이슬의 에세이다. 그는 자신의 흡연 사실을 알게 된 아빠와 ‘맞담배’를 한다. 아빠와 딸이 ‘맞담배’를 하다니. 내가 감탄하며 주목한 건 ‘딸’이 아니라 ‘아빠’였다. 강이슬의 아빠는 담배를 피우는 딸을 혼내기는커녕 담배 한 개비를 쥐여주며 함께 담배를 피운다.

‘여자가 흡연하면 기형아를 낳는다.’는 말은 여자가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것은 출산을 여성의 의무로 보기 때문에 문제이기도 하지만, 모든 여성을 남성들의 소유로 보는 것을 넘어 국가 소유로 보는 시각이 내포되어 있기에 문제다. 많은 부모는 딸에게 ‘아이를 가져야 하는 여자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의도가 무엇이든 분명 딸을 출산의 도구이자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숨겨둔 내 담배를 발견했을 때 흘린 눈물에도 그 의미가 포함돼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가부장적 유교 문화로 인해 한국 부모와 자식 간의 뚜렷한 수직관계 속에서 나를 비롯한 내 주위의 여성 흡연자들은 부모에게 흡연 사실을 공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강이슬의 아빠가 딸과 나란히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딸을 독립된 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과 그를 존중하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최근 연초에서 전자담배로 바꾼 후 냄새도 흔적도 남지 않기에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내 방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이제 내게 담배 냄새가 나지 않으니 비흡연자로 패싱하기 더 쉬워졌다. 그럼에도 내가 흡연자라 밝히며 글을 쓰는 이유는 ‘흡연하게 생긴 여자’와 ‘흡연할 것 같은 여자의 직업’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또 많은 여성이 후미진 골목이나 자신의 자취방에서 흡연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남은 코르셋 중 하나인 흡연을 고백함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여자다움’에 정면으로 저항하려 한다. 여성흡연자는 죄인이 아니다. 담배는 기호식품이자 취향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향마저 포기해야 하는 삶을 거부한다. 더는 뺏기고 싶지 않다. 그래, 나 담피녀다.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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