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마을 찾은 ‘봄바람’ 길동무들
핵발전마을 찾은 ‘봄바람’ 길동무들
  • 장영식
  • 승인 2022.03.2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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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비정규직의 시대,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시대, 기후위기로 생태계 균형이 흔들리는 시대, 평화보다는 전쟁을 연습하는 시대, 국민의 안전보다는 추악한 자본을 앞세워 원전 강국을 부르짖는 시대에 평화의 섬 제주도 강정에서부터 들고일어나 월성핵발전소 앞까지 봄바람 순례단이 찾아왔습니다. 월성핵발전소 인접 주민 이주대책위가 2014년 8월 25일에 농성을 시작하고, 집회 일수 2766일을 맞은 아침이었습니다. 농성장 앞은 상여와 핵폐기물 모형 드럼통이 놓여 있었고, 상여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한 봄바람 순례단은 이주대책위 주민들과 농성장에서부터 월성 한수원 정문 앞까지 상여를 메고 드럼통을 굴리며 뚜벅뚜벅 걸어걸어 갔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생태계와 미래세대를 위해서 삶을 살며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생태계와 인간을 연결하려는 사람들이 함께 걸었습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위험을 마주한 주민들은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삶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민들은 안 해 본 것도 없고, 안 만난 사람도 없습니다. 사는 게 죽은 것과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상여를 메고 월성 한수원 정문까지 갔다가 오는 일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상여를 끌고 문정현 신부가 뒤를 따르며, 월성 한수원 정문 앞을 지나고 있다.
주민들이 상여를 끌고 문정현 신부가 뒤를 따르며, 월성 한수원 정문 앞을 지나고 있다. ⓒ장영식

상여 집회를 마치고, 농성장 안에서 봄바람 길동무들과 주민들이 인사를 나누고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손자와 손녀까지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배출되는 것을 확인하며 탈핵 전사가 된 황분희 씨는 “빛이 없는 캄캄한 터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 몸에 방사능이 있는데, 우리 손자가 다섯 살에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나왔어요. 그 손자가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 됐는데,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됐습니다. 우리도 사람인데 사람 취급을 안 합니다. 하루 종일이라도 말할 수 있어요. 너무 갑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울분을 토하며 “핵발전은 기후위기를 대응할 수 없다”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황분희 씨는 “핵발전에서 배출되는 방사능은 위험하고 수십만 년이 지나야 없어지는 물질인데, 왜 이 위험을 멈추지 않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전기를 만들수록 핵폐기물이 계속 쌓이는데 하루라도 빨리 문을 닫아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문정현 신부가 월성 핵발전소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의 절규를 듣고 있는 모습.
문정현 신부가 월성 핵발전소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의 절규를 듣고 있는 모습. ⓒ장영식

월성핵발전소에서부터 직선거리로 3킬로미터 내에 살고 있는 오순자 씨는 “우리 식구 세 명이 갑상선암 걸렸습니다. 우리 집 위로는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갑니다. 나는 당뇨와 심장병, 고혈압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그런데도 많이 배운 한수원 사람들은 우리를 사람대접 안 해 줍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제물로 삼고 있습니다. 전기를 만든다고 사람을 제물로 쓰면 되겠습니까.”라고 호소합니다. 주민들은 “70을 넘어 산 자신들은 이제 죽어도 되지만, 이 위험한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는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괴롭다”라고 말합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던 오순자 씨는 "전기를 만든다고 사람을 제물로 쓰면 되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던 오순자 씨는 "전기를 만든다고 사람을 제물로 쓰면 되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장영식

참담한 심정으로 주민들의 호소를 경청하던 문정현 신부는 부안핵폐기장 건설 반대 싸움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소개하며 “강정에서부터 여기까지 봄바람을 타고 왔습니다. 80이 넘었지만, 이 땅에서 하소연할 곳 없는 분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왔습니다.”라며 주민들의 눈물겨운 절규에 화답하였습니다.

간담회를 마친 후, 주민들과 순례단은 월성핵발전소 입구까지 걸었습니다. 그리고 나아리 해변에서 월성핵발전소를 둘러보았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부안핵폐기장 건설 반대로 월성핵발전소 뒤편에 핵폐기장이 들어섰다는 말에 긴 한숨을 토했습니다. 문 신부는 오랫동안 월성핵발전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문정현 신부가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문정현 신부가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국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장영식

순례단은 마을 주민의 안내로 핵발전소 바로 앞에 있는 한마음 동산을 둘러보았습니다. 소나무 밭으로 이루어진 한마음 동산에는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그 현수막에는 “한마음 동산 내 불법 야영, 무단 주차, 취사 전면 금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아협동조합이라는 ‘친원전’ 이장들이 만든 협동조합에서 게시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동산 안의 솔밭에는 파라솔과 함께 바비큐 시설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나아협동조합이 핵발전소 앞의 솔밭에서 바비큐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제한구역(EAB)으로 설정된 구역 내에서 말입니다.

순례단 일행으로 강정에서부터 동행하고 있는 딸기 씨는 “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세워진 원전 때문에 형광등도 함부로 켜지 않는 시골 어르신들은 위험과 괴로움에 떨고 있습니다.”라며 “터가 안 좋다고 청와대는 털썩 옮긴다면서 7년이나 싸우는 이 주민들의 외침에는 왜 답이 없는 것인가요.”라고 말합니다. 딸기 씨는 “왜 원전 인근에 사는 사람만 두려움과 괴로움에 떨어야 하나요. 전기를 쓰는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아닌가요.”라고 질문합니다.

 

봄바람 순례단과 마을 주민들 그리고 연대 시민들과 함께 했다.
봄바람 순례단과 마을 주민들 그리고 연대 시민들과 함께 했다.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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