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선언은 ‘보편적 돌봄’이라는 퀴어-페미니즘-반 인종차별주의-생태사회주의의 정치적 비전을 제안한다. 보편적 돌봄은 직접적인 돌봄 노동뿐 아니라 타인들과 지구의 번영에 대해 관여하고 염려하며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p177

 

코로나는 나를 패싱 하지 않았다. 무료진료, 비대면 처방, 지원 물품, 성가실 정도의 지속적인 문자(추후 상담까지)와 지인에게 위로의 비타민을 선물받았다. 내 기관지와 면역체계가 오미크론과 싸우고 있을 때, 플랫폼 노동자, 국가와 의료기관이, 가족을 포함한 지구 전체, 공동체가 나를 돌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확진 전에 이 책을 만났고 초국가적 돌봄 연대의 상상을 자극했다.

 

돌봄선언(상호의존의 정치학), 더 케어 컬렉티브 지음, 니케북스, 2021.05.21.
돌봄선언(상호의존의 정치학), 더 케어 컬렉티브 지음, 니케북스, 2021.05.21.

세계적으로 ‘돌봄’이 마주한 다면적이고 심각한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가 책을 썼다.

책은 돌보지 않는 국가와 기업을 비판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김승섭 교수는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라고 한다. 부유한 나라에서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다수의 사람은 시민권을 거부당한다. 학교폭력, 부모 부양, 장애인 이동권, 산업현장의 재해, 이주민과 난민 등 상실과 돌봄의 지점에 섰을 때 누군가의 일상은 누군가에겐 고통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더 아팠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만든 괴물 기업에게 시장을 맡긴 글로벌 사우스* 국가는 더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역할이 아니며, 성별 분리 노동도 아니다. 여성이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돌보는 것, 의료체계 안에서만 국한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돌봄은 무생물과, 비인간을 돌보는 역량이며,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공동체 안에서 물건을 공유한다. 집과, 문화 예술, 공교육, 직업훈련, 대학교육, 평생교육, 공공의료까지 가치를 두는 것이다.

 

돌보는 친족의 개념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은 전장에서 군의관이 돌봄의 의무를 부상당한 적군에게까지 확장하는 것과 같다. p77

 

책은 돌보는 국가의 당위성을 다시 사유하고 돌봄의 가치와 평가를 뒤집는다.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잠재 가능성의 상실은 ‘빈곤’으로, 경제를 넘어 사람들이 어디서 살든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 가능성의 확장을 ‘발전’으로 재정의한다.

책은 시장화되는 돌봄 노동이 평등한 접근이었는지 따져 묻는다. 평등한 소유, 생산, 소비를 바탕으로 한 돌봄 교환을 위해 자본주의 해체가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돌봄과 자본주의 논리는 타협할 수 없다. p142

 

나는 젊고, 덜 가난했으며, 덜 아팠다.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인종차별을 받지 않았으며, 운 좋게 의료시스템 안에서 진료를 받았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미래에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돌보는 국가의 확대는 논쟁의 지점이 아니며, 통찰의 지점도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돌보는 공동체는 ‘선언’이다.

이익을 옹호하는 차기 정부의 ‘돌봄’ 로드맵이 낙관적이지 않다. 그러나 책은 공동체의 ‘돌봄 혁명’을 선명하게 상상하게 해준다.




*대체로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남반구 지역을 가리키는데, 글로벌 노스라고 칭하는 유럽과 북미 지역 선진국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경제적 수준이 낮고 정치·문화적으로 주변화된 국가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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