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한 건 대학 입학 후 첫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누군가 인생의 최악의 시기가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그때를 말할 정도로, 그 무렵 나는 매일이 버거웠다. 가족에 대한 불만과 불신, 좋아하는 애와 자꾸 어긋나는 일, 학자금 대출.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탈출구를 찾을 수도 없었다. 나는 정서적으로 무척이나 불안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곧잘 했다. 대개 우울함은 늦은 밤 혼자 있을 때 불쑥 나타났기에 나는 그것을 핑계로 안주도 없이 소주 두 세병을 먹다 잠들곤 했다. 언젠가 친구가 매일 소주를 먹으니 살이 빠졌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정반대였다. 가지고 있던 옷이 거의 모두 맞지 않을 때 즈음 나는 휴학을 했다.

몸이 두 배가 된 모습의 딸을 보자 엄마는 바로 헬스장을 등록했고, 그때부터 나는 매일 운동을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집에 와 공부를 하다 점심을 먹은 뒤 다시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운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지만 체중 감량에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 유산소 운동만 해서 그런 지 한 달 만에 10Kg을 감량했다. 그때 막 연애를 시작했던 터라 그 둘을 병행하기에 나는 그리 부지런하지 못했으므로 데이트에만 열중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몸무게도 점점 늘어갔다.

복학한 뒤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주 술을 마셨다. 매일 같이 마시는 술은 정직하게 신체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게 남은 학기를 모두 마치니 완벽하게 요요가 왔다. 힘들게 운동해 뺐던 살이 도루묵이 된 것을 믿기 싫었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현실이었다. 내 몸은 불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는데 사이즈가 그대로인 옷이 괜히 야속했다. 그렇다고 새로 옷을 사러 가기도 싫었다. 뚱뚱해진 내가 옷 가게를 들어가기만 해도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수치심이 먼저 들었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옷이 나한테 절대 맞을 리가 없으니 애써 옷 가게를 가더라도 기분만 상한 채 돌아오기 일쑤였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가족들의 멸시였다. 아빠는 늘 나를 돼지라고 부르며 길에서 뚱뚱한 사람을 보면 “니 언니 지나간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과 나에게 모욕을 줬다. 엄마와 언니는 언제나 그에 동조하며 함께 낄낄댔고, 아빠가 없을 때면 아빠의 화법으로 나를 놀리기도 했다. 뚱뚱해진 내 몸을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움츠리고 다니다 굽어버린 어깨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활동가로 일하던 노동조합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가 계획돼 있었다. 내가 술을 못하거나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로 매일같이 진탕 마셨다. 또 사람과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평소 단 걸 싫어하던 내가 초콜릿을 찾게끔 만들었는데, 초콜릿을 10개씩 먹어야만 일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런 삶을 2년 이상 지속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인생 최고의 무게를 찍었고 여기저기 살이 트면서 피부에 자꾸만 트러블이 생겼다. 그리고 전처럼 엄마로부터 등 떠밀려 헬스장에 등록했다. 이번에는 1:1 PT를 했는데 그만큼 비용은 훨씬 많이 들었다. 무턱대고 혼자 했던 운동과는 달리 체계적으로 식단을 지키며 운동을 했다. 트레이너는 여태까지 자신이 가르친 사람 중 내가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살을 뺐다며 흥분해서 말하곤 했다. 물을 마시는 내 등 뒤에서 “히니 씨 엉덩이요. 힙업 많이 됐어요.”라는 말을 하거나 ‘여자한테 좋은 운동’을 알려주고 나의 모든 신체 부위를 파편화시켜 평가하는 트레이너의 언행은 그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해 이해하려 해도 영 유쾌하지 않았다. 트레이너에게 묘한 불편함과 불쾌함, 수치감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살을 빼겠다는 일념으로 운동에 매진했다. 어떤 목표나 의식 없이 단지 뚱뚱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동력 삼아 몸을 움직였다.

 

어느덧 내 몸은 처음 헬스장에 갔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고, 나날이 몸무게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헬스장에서 만나는 중년 여성들은 나에게 몇 Kg을 뺐는지 지금은 몇 Kg 인지를 물었고, 나는 무례한 질문들에 늘 짜증 섞인 표정으로 냉랭하게 굴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아줌마들이 궁금해서 묻는 것에 왜 버릇없이 말하냐고 타박하면서, 그들에게 대신 대답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살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뺐는지를 자랑하듯 말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날씬해야 엄마의 자랑이 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관심도 없던 사람으로부터 ‘살만 빼면 사귀어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줄곧 들어온 ‘긁지 않은 복권’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인 듯 느껴졌다. 스스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잠시, 결국 “다이어트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이 쪘을 때는 뚱뚱하다고, 살이 빠졌을 때는 살을 뺐다고 나를 가십거리로 소비했다. 내가 다이어트를 해 온 이유는 그저 예쁜 옷을 입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무 옷이나 골라 입어도 잘 맞는 몸이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여성의 옷이 유난히 작지만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옷에 몸을 구겨 넣고 살 빼기를 반복하다 결국 옷에 몸을 맞췄을 때야 비로소 나는 ‘정상인’ 범주에 들 수 있었다. 하지만 1Kg 오차에도 과체중이나 비만으로 불리며 ‘비정상인’으로 치부될 때의 기분은 그만큼 처참했다.

‘여자의 평생 숙제는 다이어트’라거나 ‘체형으로 평소 생활을 알 수 있다’는 명제가 많은 여성들에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나 또한 그것을 맹신하고 몸을 못살게 굴었다. 정상성만을 갈망하며 나를 억압한 방식 중 하나였던 다이어트는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했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오가며 살아온 나는 어떤 모습이더라도 여자의 외모는 평생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문제는 여자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다시 살이 쪘다. 물론 건강의 이유로 다이어트가 필요하겠지만 남에게 보여 지는 몸을 위한 다이어트를 다시 할 생각은 없다. 다시 살을 빼면 입을 요량으로 옷장 깊숙이 넣어 두었던 손바닥만 한 옷들을 처분해야겠다. 앞으로는 허상에 불과한 미의 기준에 구태여 내 몸을 맞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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