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쓴 편지] 봄바람 순례 마지막날, 친구들에게
[바람이 쓴 편지] 봄바람 순례 마지막날, 친구들에게
  • 평화바람 딸기
  • 승인 2022.05.06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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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이 가득한 서울에도 나무들은 어김없이 새순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봄을 깨우는 꽃들이 지고 이제 새로운 잎들이 기지개를 켜며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합니다. 꽃을 보며 시작한 봄바람 순례길에 이제는 꽃이 지고 새순이 납니다. 오늘 40일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처음 봄바람 순례를 기획할 때만 해도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일정이 다 만들어지기도 전에 답답함과 간절함에 짐을 챙겼습니다. 노골화된 이윤 추구로 사람과 자연의 위기가 오고 차별은 일상을 전쟁으로 만드는데. 자본과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은 서슴없이 나오는 대로 말하며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뭐라도 해보자. 되든 안 되든 사람들을 만나보자, 하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매일의 여행은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소중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곳곳에 설치된 농성장에서 꽃피운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다음 일정으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파헤쳐 지고 무언가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풍경들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은 지구의 껍질을 벗긴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와 자원, 국가 안보와 국책사업의 결과가 서울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화려함, 편리함, 안전함을 유지하기 위해 정말 많은 지역의 크고 작은 마을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강남 테헤란로에서 한낮에도 번쩍이는 전광판을 보며 원자력 발전소가 늘어날까 봐 형광등도 잘 켜지 않는다는 주민분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화려한 도심 속에 초라하게 차려진 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철거민의 농성장이, 쫓겨나고 배제된 사람들의 농성장이 있었습니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농성장만은 시간이 멈춰 있었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는 무감각의 사회에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버텨야 할까요.

40일의 순례길을 통해 싸우는 우리 모두가 친구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보듬으며 나아가는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친구는 뻘짓을 해도 좀 이해해 줄 수 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표현하지 못해도 알아줄 수 있잖아요. 서로 외치는 구호도 다르고 알고 있는 것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성별, 성 정체성도 다르고 몸도 다르고 인종도 국가도 다르지만, 이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 이윤보다 인간이,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이 아닌가요. 그런 우리가 서로 만나고 친구가 되어서 인내 있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기꺼이 내 의견을, 내 삶의 방식을 바꾸고자 하는 용기도 생기고요.

투쟁하는 전국의 많은 사람들. 이제는 선명한 얼굴로 기억될 많은 친구들이 지역에 고립된 채, 사업장에 고립된 채, 혐오와 배제 차별 속에 고립된 채. 외롭게 투쟁하지 않도록 부지런히 얼굴을 맞대고 함께 싸워 가면 좋겠습니다.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용기 내서 한 발 더 다가갈 때 이미 다른 세상은 내 앞에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진 소중한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날 많은 존재를 서로 귀하게 여기며 그 누구도 폭력 앞에 쓰러지지 않도록 붙들고 위로하면서 함께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불쑥 전화하고 다짜고짜 만나자는 연락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시고 환대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봄바람 순례단의 길동무가 되어 현장에서, 또 연대의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현장을 지키는 한 사람이 있기에 연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현장을 지키는 모든 분께 연대의 인사를 보냅니다.



순례 마지막 날인 4월 30일, 서울 종로에서 행진하는 봄바람 길동무들. 사진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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