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헌호

일상으로 보면 무의미하다고 할 것이 생명의 입장에서는 일상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부처님 일생을 다룬 <본생담>에는 ‘생명의 무게는 부처의 무게나 미물인 비둘기의 무게나, 한 치 어긋남 없이 같다’고 한다만 우리 집 닭들에게 예외가 적용되어야 할지 여간 고민이 아니다.

기룡산의 기운으로 가득 찬 족제비가 갓 태어난 병아리 ‘노랑이’와 우리 집의 닭 중 가장 이쁜 ‘빼빼’를 물어 죽인 사건 이후로 나는 네 마리의 족제비와 여섯 마리의 고양이를 생포하였다. 처음 한두 마리를 생포하였을 때는 그놈들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 없더니만, 틀에 갇힌 놈들의 눈망울을 보고는 집에서 십 리 이상의 거리인 영천댐 상류에, 이십 리 떨어진 내 고향 양각소(羊角沼) 물가에, 삼십 리 이상 떨어진 고현천변 등지에 놓아 주었다. 강제 이주다.

조선 땅에 살 수 없어 흘러 흘러 연해주에 터를 잡았지만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할 수 없는 소양을 가진 권력자에 의해 삭막한 풍경의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를 당한 조선의 동포들, 제국의 횡포에 고향을 버리고 일본 열도 곳곳에서 서러움을 받고 살아온 일본 땅의 민단계, 조총련계, 이도 저도 속함이 없는 ‘자이니치’*의 설움을 안다. 그러한 내가 족제비에게 야생 고양이들에게 자기들 사는 곳의 터전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보아도 답은 없고, 독수리로 변한 제석천에게 부처님처럼 허벅지 살을 떼어 줄 그러한 용기나, 지혜 제일 문수보살의 조언도 더더욱 없어 이들의 처리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족제비와 야생 고양이에게 시달리는 닭들을 보호한답시고 가해자(?)를 징치하는 시골 농부인 나의 처신은 요즈음 책과 인터넷 드라마로 회자되는 재미 작가 이민진의 <파친코>의 내용 중 주요 등장인물 ‘이삭’을 괴롭힌 일본 경찰서 형사 같기도 하다.

 

사진 정헌호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우리 집 닭이 시달림을 당하는 중에 을(乙)들끼리의 갈등이랄까? 계사 내부의 닭들끼리 문제가 곪아 터졌다. 애써 내내 눈을 감고 지냈더니만 생식 본능에 충실한 장닭 ‘삐뚤이’의 완력에 세 마리 암탉의  몰골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완력에 당한 암탉의 등은 맨살이 훤히 드러나 있고 닭 볏 주변머리에는 피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주인 손바닥에 놓인 먹이를 쪼아 먹을 정도의 순둥이 암탉 ‘연갈이’는 ‘삐뚤이’의 엄지발톱에 자상을 입어 갈비뼈가 드러날 지경이 되었다. 측은지심, 자비심을 발휘하여 반 평도 채 되지 않는 독방을 만들어 약을 먹이고 치료를 하여 겨우 상처가 아물게 하여 풀어주었더니 ‘삐뚤이’는 삐뚤한 성정의 이름값을 하느라 주인의 눈을 피해 ‘연갈이’를 다시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 이놈 ‘삐뚤이’를 어찌해야 하나?  그리 잘나지도 않은 인간인 나의 깜냥으로 어찌해볼 소견이 없다.

어떤 이는 내가 키우는 닭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면 사람의 먹이로만 볼 수 있어 ‘키우던 닭을 잡아먹어 버리면 되는 방법’이 있고,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라며 눈 감고 “야옹”하는 대안이라도 내어놓는데…… 나는 방법을 찾지 못해 오늘도 흰 머리카락 한 올 더 느는 고민을 하고 있다.

족제비나 야생 고양이들의 침탈에 따른 외부의 문제는 먼 곳에 풀어주는 것으로, 내부의 문제는 ‘삐뚤이’의 생식 본능을 중성화 수술 등으로 제어할 수 없어 종국에는 그놈을 이웃집 어른**에게 귀양 보냈는데 이후 ‘삐뚤이’가 그 집에서는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지 알기를 포기했다. 나 역시 어디에 좋은 지도 모르는, 자연주의자, 생태주의자, 소위 ‘있는 자’들의 입에 회자되는 ‘유정란’ 몇 알을 얻어먹는 것을 포기하고 ‘무정란’ 몇 알을 얻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인간과 지구상의 다른 생물과의 깊고 친밀한 관련성에 대해서는 20세기 후반에 만개한 분자생물학에 의해 여지없이 증명되었다”며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이야기를 하였지만, 지난번 포획 틀에 갇힌 날카로운 발톱의 소유자, 연한 살구색을 가진 잘 생긴 고양이와 친밀감을 가지지 못하고 영천댐 상류에 풀어주며 내가 뱉은 말

“그리 알고 잘 살아라.”

각자도생의 해법을 내놓는 것으로 애써 쓰린 마음을 달래는 와중에 사이버 공간에는 오늘 ‘윤 정부’의 출범을 알리는 기사가 곳곳에 도배가 되고 있다.

 

 


*자이니치: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을 지칭하는 말로 자이니치의 국적은 일본의 외국인 등록법에 따라 ‘한국인’ 또는 ‘조선인’으로 표기한다.
*이웃집 어른은 그 후 나를 먼발치서 보고 의미 있게 ‘씨익’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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