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
[서평]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
  • 박지영
  • 승인 2022.05.17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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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태어난 아이와 오늘 죽은 사람, 가장 힘 있는 사람과 가장 힘없는 사람, 가장 부자인 사람과 가장 가난한 사람, 가장 기쁜 사람과 가장 슬픈 사람, 그 사이에 저널리즘이 있다. P146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진다. 꽃은 비가 되어 내린다. 사람 이야기에 공을 들이고, 성경과 한서,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 루쉰의 <아Q정전>을 인용하며 봄날을 서사한다. 시의적절한 인문학적 감성과 배경음악의 선택은 탁월하기까지 하다.

저녁밥을 먹으며 앵커 브리핑을 시청하다 울컥한다. 노회찬의 ‘작별’이 그랬고, 세월호 1주기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가 그랬다. 갱년기를 핑계 삼아보려 했지만, 내 심장이 너무 뜨거웠다.

​‘맞닥뜨려야 했던’, ‘겪어내야 할 문제’, ‘어떻게 벼려내야 할 것인가’. 앵커는 엄격한 반 박자 쉼표 뒤 화면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진다. 일상을 제시하지만 직진하지 않는다. 은유하며 마음을 흔든다. 사유는 시청자의 몫이다.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 2014년부터 2019년까지 950여 편 중 284편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손석희, 김현정 지음, 역사비평사, 2022년 3월 22일

 

크리스마스이브 ‘Santa 訪問’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 과학적으로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P153

 

​앵커브리핑은 누구나 있었지만, 없는,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팩트체크 대신 반증한다. 그래서 그날 우리는 각자의 산타 비하인드 스토리를 반찬 삼아 즐거운 저녁시간이 되었다는. 귀와 눈이 열리고 심미적 정서가 물드는 뉴스라니.

 

라면이 익어가는 시간, 3분.

가방 속에 컵라면과 숟가락을 넣고 다녔다는 그 청년··· 누군가는 그의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위선이라 일갈했다지만, 세상이 그렇게 바뀐 것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P222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 진은영(시인) P251

 

‘독자가 직접 찾아낸 ‘이유’와 내가 찾아낸 ‘이유’가 같은 것이 되기를 고대하는 쪽을 택한’ (손석희 지음, 풀종다리의 노래 중) 앵커의 고뇌가 선명하다.

어느 날은 뉴스가 먼 나라 소식이길 빌어본다. 2016년 구의역,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멈추지 않는 죽음의 외주화, 눈먼 자들의 굿판 덕에 사라진 젊음에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은 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세상. 기억하자고 하지만, 우리는 이 죽음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밥하는, 동네, 아줌마··· 늘 하는 일이고, 그것도 누구든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뭉쳐진 이 세 단어의 조합으로 인해, 상대를 업신여긴다는 뜻이 필연적으로 강해지는 그 발언.

그렇게 달랑 세 단어로 비하되기에는 그들이 대신해 준 밥 짓기의 사회학적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P226

 

​우리는, 여성은, 밥하는 일의 비하에 굉장히 분노한다. 심지어 나는 급식노동자들의 은혜를 받기 전까지 밥 잘하고 일 잘하는 슈퍼우먼이 되려고 했으니까.

그러니까 슈퍼우먼이라는 질 낮은 삶의 목표를 버릴 수 있게 한 그녀들의 노동은 세탁기와 건조기의 혁명보다 더 추앙받아야 마땅하다.

이언주 의원의 막말 기사를 보고 눈물부터 났다는 누군가에게 혹은 우리 모두에게 앵커브리핑은 갈망과 해방의 저녁이었고, 카타르시스 간절한 저녁이었다.

 

​그러니까 L의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면서···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

- 김숨, 「L의 운동화」 P21

 

​그러니까 스스로를 가장 사랑해야 할까, 남을 위해 살아야 할까.

마음이 헛헛하고 행복이 고픈 이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적 사유를 안주 삼아 일 잔과 함께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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