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의 문은 법 앞에 없다
[칼럼] 법의 문은 법 앞에 없다
  • 이득재
  • 승인 2022.05.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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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과 카페 ‘그’의 임차 상인들의 ‘법 앞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연극이 있었다.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를 모델로 한 연극이었다. 대한민국은 760명의 검사, 2,918명의 판사(2019년 기준), 변호사 29,724명(2021년 기준)이 있는 나라다. 최근에는 법 위에 있는 검찰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무소불위의 국가권력까지 거머쥐었다. 검수완박으로 시끄러운 시절, 이래저래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가 생각난다.

카프카의 소설 『법 앞에서』를 보자(이 소설은 카프카가 1919년에 발표한 『시골의사』라는 단편집에 실려 있다). 짧아서 전문 인용한다.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사람이 와서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그에게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시골 사람은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가능하다오” 문지기가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서 있기 때문에 그 시골 사람은 몸을 굽히고 문을 통해서 그 안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그것을 본 문지기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도 끌린다면 내 금지를 어기고서라도 들어가시오. 하지만 내가 힘이 장사라는 걸 알아두시오. 게다가 난 말단 문지기에 지나지 않소. 홀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힘이 센 문지기가 서 있소. 나조차도 세 번째 문지기 모습을 쳐다보기조차 힘겨울 정도라오.” 시골 사람은 그런 어려움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법이란 정말로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피 외투를 입은 그 문지기의 모습, 그의 큰 매부리코와 검은색의 길고 가는 타타르족 콧수염을 뜯어보고는 차라리 입장을 허락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낫겠다고 결심한다. 문지기가 그에게 의자를 주며 앉으라고 한다. 그것에서 그는 여러 날 여러 해를 앉아 있다. 그는 들어가는 허락을 받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자주 부탁을 하여 문지기를 지치게 한다. 문지기는 가끔 그에게 간단한 심문을 한다. 그의 고향에 대해서 자세히 묻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것에 대해서 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체 높은 양반들이 건네는 질문처럼 별 관심 없는 질문들이고, 문지기는 마지막엔 언제나 그에게 아직 들여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시골 사람은 여행을 위해서 많은 것을 장만해 왔는데, 문지기를 매수할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용한다. 문지기는 주는 대로 받으면서도 “나는 당신이 무엇인가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받을 뿐이라오” 라고 말한다. 수년간 그는 문지기를 거의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다. 그는 다른 문지기들은 잊어버리고, 이 첫 문지기만이 법으로 들어가는데 유일한 방해꾼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이 불행한 우연에 대해서 무작정 큰소리로 저주하다가 후에 늙자 그저 혼잣말로 투덜거린다. 그는 어린애처럼 되었고 문지기에 대해서 수년간이나 열성적으로 관찰한 탓에 모피 깃에 붙어있는 벼룩까지 알아보았으므로, 그 벼룩에게까지 자기를 도와서 문지기의 마음을 돌리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마침내 그는 눈이 침침해진다. 그는 자기의 주변이 더 어두워진 것인지, 아니면 그의 눈이 착각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 어둠 속에서 법의 문에서 꺼질 줄 모르는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가 죽기 전에 그의 머릿속에는 그 시간 전부에 대한 모든 경험들이 그가 여태까지 문지기에게 물어보지 않았던 하나의 물음으로 집약된다. 그는 문지기에게 눈짓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굳어져 가는 몸을 더 이상 똑바로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문지기는 그에게 몸을 깊숙하게 숙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키 차이가 그 시골 남자에겐 매우 불리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무엇을 더 알고 싶은 거요”라고 문지기는 묻는다. “당신은 끝없이 바라는군요.” 시골 남자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법을 절실히 바랍니다. 그런데 왜 지난 수년간 저 이외에 아무도 입장을 요구하질 않았습니까?” 문지기는 그 시골 사람이 이미 임종 가까이 왔음을 알고 희미해진 그의 귀에 들리도록 소리친다. “이곳에서는 당신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다오. 왜냐하면 이 입구는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것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이오. 이제 가서 문을 닫아야겠소.”

 

소설 속 시골남자는 법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법의 문 입구는 늘 열려 있고 시골 남자만을 위해 정해져 있건만 정작 시골남자는 법의 문을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라는 건지 들어가지 말라는 건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문지기가 있는 이상 법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법의 문은 닫히고 만다.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법을 절실하게 바랬고 요구했지만 시골남자는 법의 판단을 받지 못하고 죽는다.

그런데 문지기가 있는 없든 법의 문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골남자는 법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해 죽을 때까지 문지기의 허락을 기다리면서 벼룩에게까지 부탁을 할 처지였지만, 뇌물을 준 재벌들이나 부자는 법의 문을 쉽게 들어간다. 법의 문을 들어갈 때 뇌물을 싸 들고 들어가 법의 문을 나올 때 휠체어를 타고 유유히 나온다. 시골남자처럼 몸이 굳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위장 휠체어를 타고 몸을 편 채 나온다. 위법, 편법, 불법, 초법으로 손쉽게 법의 문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른 한편에는 법의 문 앞에서 법을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법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지기에게 제지당한 채 소설 속 시골남자처럼 죽은 사람도 있고 법적 판단이 장기화하면서 가정 파탄 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법의 문 입구가 시골남자만을 위한 것이었고 시골남자 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었다지만 정작 시골남자는 닫힌 문 앞에서 쓸쓸하게 임종을 맞이해야 했다. 문지기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닌지 몰라도 시골남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법의 문은 닫혀 버린다. 결국엔 법의 문이 닫힐 것인데도 우리는 법의 문 앞에서 일 년이고, 삼 년이고, 시골남자처럼 기다린다. 법적 판단은 연기되고 또 연기되며 사람들의 애간장만 태운다. 문지기-검사는 온갖 범법행위를 해도 법의 문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건만,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열려 있는 법의 문을 영원히 열지 못한다. 법의 문 안쪽에는 힘이 더 센 문지기, 말단 검사가 아니라 검사장, 검찰총장이 있다. 법을 내로남불 격으로 다스리는 권력, 이어령 비어령 식의 법 판단이 판치는 곳이 법의 문 안쪽이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판사가 한다지만, 사실 랜덤으로 이루어진다. 소설에서 시골남자는 “왜 지난 수년간 저 이외에 아무도 입장을 요구하질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은 법의 문 입장을 요구했고, 청원운동도 많이 했다. 시골남자 한 사람에게만 입장이 허락된 그 법의 문을, 그러나 결국엔 닫히고 말 그 법의 문 앞에서 집회도 단식농성도 많이 했다, 끝끝내 들어가지 못할 그 법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법의 문은 뇌물로도, 집회나 청원운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탄핵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초들이 그 법의 문을 열어젖히고 탄핵한 것이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고 검사장이 법무부장관이 된 나라에서, 법의 문은 열릴까. 법의 문 앞에서 제지당하다가 시골남자처럼 임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법의 문은 법 앞에 없다. 그 문을 여는 힘은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시골남자처럼 끝없이 연기되는 법의 문 앞에서 근력을 죄다 잃어가다가 죽을 일이 아니다.



글 _ 이득재 대구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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