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에서 전쟁은 설 자리를 잃는다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에서 전쟁은 설 자리를 잃는다
  • 이용석
  • 승인 2022.06.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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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평화운동인 까닭

 



벌레와 인간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3 에피소드 〈보이지 않는 사람들〉(원제: Men Against Fire)은 혐오와 차별이 전쟁의 재료로 어떻게 쓰이는지 잘 보여준다.

주인공 스트라이프는 군인이다. 어느 날 인근 마을 식료품점에 강도가 들었는데 마을 주민들이 ‘벌레들’의 짓이라며 신고하고 스트라이프의 부대가 출동한다. 마을 사람들은 벌레들에 오염되어서 남은 식료품까지 모두 버려야 한다고 울상이다. 벌레들이 어느 쪽으로 이동했냐고 묻자 마을 외딴곳에 사는 판 하이데커라는 사람의 집 쪽으로 벌레들이 갔다고 대답한다. 판 하이데커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괴짜인데, 벌레들에게 먹을 것도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판 하이데커의 집에 간 스트라이프 일행은 집을 샅샅이 수색한다.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가려 할 때, 주인공 스트라이프가 2층 책장 뒤 비밀 통로를 발견한다. 통로를 따라 이동한 어느 공간에서 스트라이프는 숨어있는 벌레들을 발견한다. 벌레는 사람의 몸인데 얼굴에 머리카락 눈썹 코가 없고 모든 이가 송곳니처럼 날카롭고 괴명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스트라이프는 훈련받은 대로 바로 총을 겨눠 한 마리를 사살했다. 그 순간 남은 벌레들 중 한 마리가 스트라이프에게 달려들어 육박전을 하다가 스트라이프는 칼로 벌레의 심장을 찔러 벌레를 죽인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스트라이프에게 원인 모를 두통이 찾아왔다. 스트라이프는 MASS 시스템 고장을 의심했다. MASS 시스템은 군인들이 팔에 이식받는 최첨단 기기다. 수색하는 드론의 시선을 공유한다거나, 데이터를 다운로드하기만 해도 눈앞에 작전 지역의 지형도나 건물 투시도가 펼쳐지고, 신체 능력을 향상하고 사격할 때 명중률 또한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하지만 시스템엔 이상이 없었고, 스트라이프는 정신 상담까지 받았지만 두통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러다가 또 벌레들 소탕 작전에 나가게 되는데, 숨어있는 벌레들을 소탕하러 들어간 건물 안 허름한 방에서 더 남루한 행색의 늙은 여성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한 스트라이프. 해치지 않는다고, 여긴 위험하니 얼른 나가라고 여성에게 말한다. 여성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천천히 뒷걸음질로 방을 나가는데, 복도로 나간 순간 스트라이프의 동료가 그 여성을 망설임 없이 쏴 버리고 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도 모조리 쏴 죽인다. 이때 스트라이프와 동료의 시선이 교차되어 장면을 보여주는데, 스트라이프의 눈에는 남루하지만 엄연히 인간인 존재들이 동료의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고, 동료의 눈에는 벌레들이 보일 뿐이다. 스트라이프는 동료를 가격해 기절시키고 도망간다.

결국 붙잡혀 창 하나 없이 사방이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독방에 갇혀 있는 스트라이프를 찾아온 남자는 예전에 심리 상담을 해준 인물이다. 스트라이프는 그 남자에게 그들이 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울부짖으며 따진다. 남자는 낮은 목소리와 차분한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물론 악명이 높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감할 줄 아는 종족이야.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지. 그건 좋은 거야. 하지만 상대를 몰살해야만 살 수 있을 때는 문제가 돼. (중략) 오래전, 그러니까 20세기 초에 대부분의 군인들은 총을 안 쐈어. 쏴야 할 때는 적의 머리 위로 쐈지. 일부러 그런 거야. 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 이야기야. 준장들은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총을 쏘지 않으면 때렸어 2차 세계대전 때도 총을 쏜 군인들은 15~20%밖에 안 돼. 베트남 전쟁에서는 85%가 총을 쐈어. 총알을 많이 쐈는데도 여전히 적의 사망률은 낮았지. 게다가 적을 쏜 군인들은 대부분 정신이 나간 채로 귀국했지. MASS 시스템이 생기기 전의 상황은 그랬어. 이건 궁극적인 무기야. 정보 수집이나 조준, 통신, 신체를 통제하지. 상대가 괴물이면 방아쇠를 당기기가 쉽잖아? 비명도 안 들리고 피 냄새도 못 맡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스크린샷, MASS 시스템이 작동하면 이처럼 사람을 ‘벌레’로 보게 된다.

그들은 사람이에요, 스트라이프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반면 남자는 묵직하고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놈들의 DNA에 있는 문제가 뭔지 알아? 암 발생률이 훨씬 높지, 다발성 근육 경화증, 기타 등등 질병, 변태 성욕, 범죄 성향, 다 들어있어.

 

혐오와 폭력

 

남자의 말은 폭력이 혐오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은 혐오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죽음까지 이를 수도 있는 폭력을 행사하기 어려워한다. 폭력이 수월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인간이 아니거나(MASS 시스템을 통해 괴물로 인식하거나), 인간이더라도 혐오 받아 마땅한 다른 존재(징병, 변태 성욕, 범죄 성향이 들어있는 DNA)여야 한다.

가장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이 전개되는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전투 시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폭력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지만, 전투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혐오와 차별은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중요한 재료다.

현대의 전쟁은 국가의 모든 역량과 자원이 총동원되는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흔히들 전쟁을 수행하는 이로 군인을 생각하는데, 군인은 전쟁의 일부분인 전투를 전담할 뿐이고 실제로 전쟁에는 국가의 모든 구성원이 동원된다. 노동자들은 군인들이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전쟁무기와 생활용품을 만들고 운송한다. 그 물품들을 만들 재원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다. 이처럼 전 국민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반대가 심하면 제아무리 독재자라고 하더라도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호전적인 정치인들은 전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혹은 최소한 국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독재자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노동조합을 극도로 혐오한 파시스트 정치인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이 길어지며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가자 법인세율을 1941년에 45에서 50%로 42년에 55%로 인상한다. 한편으로는 혐오와 차별을 선동한다. 히틀러와 나치는 끊임없이 인종주의에 기반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했고 광기에 가까운 혐오로 인해 유대인, 집시, 여호와의증인, 성소수자들이 희생당했다. 이 혐오는 전쟁이 지속되면서 점점 커져가는 국내의 정치적 불만과 사회 불안정을 가리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치가 전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누족, 오키나와인, 만주인,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사회에 혐오 부추겼다. 예컨대 관동대지진 때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퍼뜨린 가짜 소문을 바탕으로 조선인 학살이 일어나는 것을 일본 정부는 방치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내부 사회 갈등과 여러 문제를 덮어버리기에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 기저에는 열등한 민족이니까 차별하고 혐오해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고, 그런 혐오와 차별은 그 이후에도 제국주의 일본이 전쟁을 지속해나가는 데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열등한 민족을 자신들이 근대화시켜준다는 생각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좋은 구실이었고,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기저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똬리 틀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과 혐오가 힘을 잃으면 전쟁도 힘을 잃는다.

물론 혐오와 차별을 직접적인 전쟁의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 현대의 전쟁은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군수산업체와 안보팔이 정치인들이 전쟁을 부추기고 기획하는 가운데 복잡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문화적, 종교적 요인이 상호 작용하여 일어난다. 이 상호작용이 전쟁까지 치닫는 데는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쟁은 한 명의 미치광이 정치 지도자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 폭력과 착취가 만연한 사회에서 외부의 계기와 만나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일상의 혐오와 차별, 착취와 폭력을 사회에서 줄여나가는 일은 전쟁이 일어날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고, 이미 일어난 전쟁을 중단시키거나 축소시키는 일이다.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의 시민들은 전쟁을 용납하지 않는다. 혐오와 차별이 없는 사회에서 전쟁은 설 자리가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 동조 단식에 참여하고 단식 중인 차제연 공동대표 미류와 사진을 찍은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들. 사진 전쟁없는세상

 

글 _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 이 글은 병역거부, 반전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 세상> 블로그에 최초 게재하였습니다.

전쟁없는세상 블로그 http://www.withoutwar.org/?page_id=1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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