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직은 더 예쁘고 싶었는데······”

전쟁은 누구의 언어로 표현되는가. 어떻게 최첨단 무기마다 그토록 위협적인 이름이 붙을 수 있으며, 어떻게 무기의 이름은 남성의 대명사가 되어 있을까. 어떻게 여성 군인은 역사 속에서 지워지게 되었을까.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포격 당한 전차에서 병사를 꺼내도록 훈련받은 군인, 수십 명을 사살하고 머리가 백발이 된 저격수, 가슴을 보여달라는 군인을 돌보는 간호병, 생리혈을 흘리며 진군하는 군인, 수시로 벗겨지는 군화, 몸에 맞지 않는 군복을 입은 군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바다로 뛰어내리는 장교······ 남자들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그녀들의 목소리로 우리는 ‘진짜 전쟁’을 알게 된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다. 이 책은 2년 동안 출간될 수 없었다. 소비에트 여성들을 영웅으로 찬양하지 않고 그들의 침묵과 아픔을 사실적으로 공유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1985년 출간되어 200만 부 이상 팔렸으며,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직접 녹취하고 모은 이야기는 소설처럼 읽히지만,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목 졸라 죽이고, 뼈를 으스러뜨리고, 울부짖는 소리, 비명소리, 그리고 그 오도독 소리······. 오도독! 죽어도 잊히지가 않아. 오도독 뼈가 으스러지고······. 사람 두개골이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거야. P261

 

독소전쟁으로 벨라루스에서 일할 수 있는 모든 남자는 징집되었고 여성들도 위생, 통신, 건설 대대, 비행기 조종사, 저격수, 운전병, 전차병, 해병대 지휘관으로 조국을 위해 싸웠다. 일반적으로 성별분리 노동으로 여성을 배치했던 전쟁과 달리 모든 전장에서, 모든 위치에서 싸웠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문학동네, 2015.10.08.

작가는 고개 들어 하늘을 보는 것, 갈아엎은 들판을 보는 것, 숲을 지나가는 것도 힘들었던, 빨간 패랭이꽃도 견디지 못하는 핏빛 전쟁의 각인들을 죄다 끄집어낸다. 일상에서는 사소해서 쓸모없음으로 취급받는 여성의 일, 전쟁 중에는 성 정체성 없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던 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본성을 훼손하지 않고 존중하며, 전쟁이라는 일상의 모든 것, 색깔, 소리, 촉감까지 나열하며 들려준다. ​

적군과 아군의 시체가 함께 떠내려오는 붉은 강물, 잘려나간 팔, 다리를 본다. 전쟁 중 키가 자라고, 생리를 시작한다. 대치 중 독일 병사의 눈을 마주치는 두려움은 끔찍하다. 공포로 머리는 하루 사이 백발이 된다. 친구는 오늘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몰래 솔방울로 머리를 말고 귀걸이를 한다. 원피스 입고 구두 신는 꿈을 꾼다.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줬을 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 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어!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 우리 남편들한테 말이지. P429

영국 언론이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존재가 러시아 해군에서 싸우고 있다’고 떠들어댔어. (모스크바 해병 중대 지휘관, 퇴역 중령) P362

우리는 동정이 필요한 게 아냐 우리는 우리가 자랑스러우니까.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역사를 고쳐 쓰라고 해. 스탈린을 넣든지 빼든지 알아서 쓰라고. 그리고 우리의 고통도, 우리가 겪은 그 아픔들도 그건 잡동사니 쓰레기도 아니고 타다 남은 재도 아니야. 그건 바로 우리네 삶이지. P225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전쟁의 진짜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네들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다른 얼굴을 한 전쟁의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