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효과를 다룬 창의적인 작품

지금보다 더 젊은 시절 교육학 책들을 살피면서 가장 흥미있게 읽었던 대목 중의 하나가 ‘자기충족예언’입니다. 자기충족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은 사회학자 머톤(Merton, R.)이 개발한 이론으로, 정상적이라면 이루어지기 힘든 어떤 일이 행위자의 강력한 믿음에 힘입어 그 믿음과 행동 사이에 긍정적인 피드백이 일어나 마침내 그것이 실현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이 이것과 관계있습니다. 머톤 이후 사회심리학에서 자기충족예언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제기되었습니다. 권위 있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환자의 고민을 해소하여 병을 낫게 한다는 플레시보 효과(placebo effect)가 대표적인 것이죠.

교육학에서 자기충족예언은 ‘피그말리온 효과’로 알려진 것으로 로젠탈과 제이콥슨이라는 공동 탐구자에 의해 [교실의 피그말리온]이란 제목으로 보고되었습니다. 1964년, 두 사람은 미국의 오크(Oak)학교를 실험실로 삼아 흥미로운 탐사를 했습니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9월(우리나라는 3월이지만), 학생의 학습력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인 IQ, 가정환경, 전학년도 학업성적 등이 비슷한 아동을 40명 선발하여 2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어 A반과 B반에 배정한 뒤, 두 학급의 담임교사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주었습니다.

"A반의 학생들은 위에서 말한 조건들이 모두 양호한 아동들이므로, 선생님께서 잘 가르치시면 아이들 성적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그런데, B반 아이들은 꼴통들이어서 그리 큰 발전이 기대되지 않지만 선생님께서 노력하시면 조금은 안 낫겠나..."

1년 뒤, 두 반 학생들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출발점의 상태는 같았지만, 실험 결과에서는 너무나 차이를 나타냈던 것입니다. 조건통제에 있어 두 그룹의 차이를 말하자면, "아동을 바라보는 교사의 눈(아동관)" 밖에 없었습니다. 이 실험에서 도출된 결론은, "의미있는 타자(significant others)로서의 교사 또는 부모님들이 아동을 어떻게 보느냐가 아동의 성장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이 실험의 결과로 발견한 '자기충족예언'을 그들의 기념비적인 교육 저서 [교실의 피그말리온 Pygmalion in the Classroom]에 담아 출간하였습니다.

여기서 교실의 피그말리온이란 다름 아닌 담임교사를 말합니다. 그러면 '피그말리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겠죠. 피그말리온은 그리스신화 속의 인물입니다. 피그말리온은 그리스 작은 나라의 왕이었는데, 왕답지 않게(?) 여자를 멀리하는 독신주의자이자 예술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지닌 조각가였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표방하는 바와는 달리 자신이 즐겨 만드는 작품은 늘 여인상이었습니다. 이 같은 모순된 심리는,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말하는 ‘반동형성’이란 개념으로 설명이 됩니다. “나는 죽어도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총각 또는 처녀가 누구보다 먼저 시집장가 가죠.

그러던 어느날 피그말리온은 자기가 봐도 완벽하다 싶은 여인의 석고상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여성혐오주의자 피그말리온은 어처구니없게도 이 석고상의 여인 때문에 상사병이 났습니다. 앉으나 서나, 꿈결에도 온통 이 여인 생각뿐이었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 피그말리온이 맨 처음 하는 일과가 이 석고상의 여인에게 입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명품 코너(?)에서 근사한 옷가지를 사와 이 돌여인에게 입혀주는가 하면, 다이아반지며 금팔찌도 사서 끼워 주기도 하였습니다. 피그말리온은 마침내 40 평생 동안 지켜온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수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석고상과 같은 여인이 있다면, 나는 결혼하겠다. 이 석고상이 진짜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피그말리온은 위의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뇌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된다고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화니까 불가능한 것이 없겠죠.) 옛 전설에서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친 여인이 망부석으로 변한 것과 반대로, 돌여인이 진짜 여인으로 변한 것이었습니다.

 

 


자, 이 대목에서 이 글의 메인인 영화 소개가 들어갑니다. 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주제로 한 버나드 쇼(1856~1950) 원작의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라는 영화를 소개 드겠습니다. 참고로, 영화제목과 달리 쇼의 원작 희곡 제목은 [피그말리온]입니다.
 

 


막이 오르면 여주인공 일라이자가 런던의 한 극장 앞에서 꽃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서 연극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일라이자는 거리에서 꽃을 팔아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가난한 아가씨입니다. 잠시 후 연극이 끝나자 그녀는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옷깃을 붙잡고 꽃을 사가라며 조릅니다. 그 날은 비가 와서 사람들은 그녀의 호객행위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기 길을 바삐 갑니다. 영업이 신통치 않자 일라이자의 말과 행동은 점점 거칠어져 갑니다.

이러한 일라이자의 언행을 극장 기둥 뒤에서 유심히 관찰하는 남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탁월한 음성학 교수 히긴스입니다.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형편없는 영어 악센트를 몰래 메모하다가 들켜 일라이자와 실랑이를 벌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히긴스가 일라이자를 향해 거친 독설을 퍼붓자 노신사가 일라이자를 방어하며 나섭니다. 피커링 대령이라 불리는 이 사람은 히긴스와 마찬가지로 언어학자입니다. 히긴스와 피커링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다가 예전에 어느 학회에서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천한 무리’ 속에서 특별한 지적 역량을 가진 학자끼리의 우연한 재회를 기뻐하며 친분을 이어갑니다.

 

 


피커링 대령은 히긴스 교수의 집에 머물면서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는데, 이때 일라이자가 언어교정 레슨을 받으러 히긴스를 찾아옵니다. 일라이자의 목적은 자신의 형편없는 악센트를 고쳐서 동네의 꽃집에 취직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거리의 아가씨에서 품위 있는 점원으로 신분상승을 꾀하고자 하는 것인데, 일라이자는 영어 발음이 너무 안 좋아서 예전에 꽃집에서 퇴짜를 맞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딴에는 가장 세련된 옷을 입고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려고 지갑에 돈도 든든히 준비해서 이 도도한 교수의 집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한’ 일라이자가 생각한 수업료는 히긴스 교수의 네임 밸류에 근접한 수준일 수가 없어서 그녀가 실망감을 안고 돌아가려는 순간 피커링 대령이 자신이 그 수업료를 대겠다며 히긴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일라이자를 매개로 처음 만났을 때 히긴스가 한 말, 즉 “저 형편없는 아가씨를 자신이 맡아 가르친다면 상류사회의 사교무대에 멋진 숙녀로 데뷔시켜 줄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실행할 수 있는가 하는 내기를 제안합니다.

 

 


일라이자는 히긴스 교수의 집에 머물며 그가 고안한 과학적인 음성학 훈련과 상류사회의 매너를 배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숙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일라이자 역을 맡은 배우는 아름다운 용모 못잖게 아름다운 삶으로도 유명한 오륙십년 대 최고의 여배우 오드리 헵번입니다.) 드디어 오드리 헵번 아니 우리의 주인공 일라이자는 왕후와 같은 모습으로 국제 외교관 사교무대에 등장하여 뭇 귀족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며 상류사회에서 화려한 데뷔를 합니다. 무도회에서 영국 황태자의 요청으로 함께 우아한 왈츠를 추는 장면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는 극에 달합니다.
 

 


다음 장면은 히긴스 교수의 집. 히긴스는 피커링 대령을 비롯하여 시중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자신의 실험이 대성공을 거둔 기쁨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일라이자는 자신의 방에서 슬픔의 상념에 젖어 있습니다. 무도회에서 귀족들의 시기와 부러움을 받으며 일약 사교계의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룻밤 역할놀이에 불과한 것이죠. 높이 올라간 만큼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추락의 고통은 힘겨운 것이어서, 히긴스의 프로젝트가 끝난 시점에서 내일부터 거리의 여자로 돌아가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오로지 실험대상으로만 취급했던 히긴스를 향한 사무친 원망을 터뜨린 후 일라이자는 짐을 싸서 히긴스의 집을 나섭니다. 문 밖에선 무도회에서 만난 프레디라는 청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레디는 일라이자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오매불망 그녀를 따라 다니며 구애를 합니다.
 

 

 

 

 

 

 

 

 


히긴스의 집을 나선 일라이자가 프레디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간 장소는 꽃 파는 아가씨로서 자신이 생활하던 하층민의 마을입니다. 어두컴컴한 새벽녘 도매로 꽃을 파는 상인에게 다가갔을 때 그들은 일라이자의 얼굴을 보고 아는 체를 하려다가 귀족스러운 풍모에 이내 판단을 고쳐 ‘사람을 잘 못 봤다’며 사과의 말을 건넵니다.
 

 


한편 일라이자의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히긴스의 도움으로 한 부자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아 신분상승을 해 있었습니다. 그는 일라이자와의 마주침이 달갑지 않은 듯 “앞으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일라이자가 히긴스의 집에서 쫓겨나 다시 거리에서 꽃 파는 아가씨로 돌아온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지요. 한때 일라이자를 등쳐서 술값으로 돈을 뺐던 사람이 양지에서 음지로 돌아온 자기 자식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일라이자는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상승된 신분에 걸맞은 사회적 페르소나를 수행하기 위해 교회에도 나간다는 말을 듣고 놀랍니다. 아버지가 상류사회의 행동양식이 불편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자 일라이자가 “그럼 돈을 돌려주면 안 되냐”고 하자,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집니다. “우리 모두는 길들여져 있다. We're all intimidated.”

 

 


이어지는 장면은 히긴스 교수의 집에서 피커링 대령이 경찰에 전화를 걸어 행방불명된 일라이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는 모습입니다. 무도회에서 대성공을 거둔 히긴스는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라이자의 부재로 인한 스트레스 혹은 근심을 안게 된 것입니다. 여성혐오주의자(misogynist)인 그는 연신 “여성들은 왜 남성처럼 협조적이지 않냐”며 불평 섞인 노래를 불러댑니다.
 

 


일라이자는 히긴스 교수의 어머니(Mrs. Higgins) 집에 와 있습니다. 미세스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차를 대접합니다.(귀족 마님이 천한 아가씨를 자기 집에 들여 차를 대접하는 것은 파격적인 시추에이션입니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사회주의자였던 버나드 쇼였기에 가능한 설정이라 생각해봅니다. 쇼의 작품에선 남성들은 대부분 한심한 인물인 반면 여성들은 품위 있게 그려집니다.)

잠시 뒤 히긴스가 등장하는데, 일라이자가 있는 것을 보며 내심 기뻤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발동하며 그녀를 몰아붙입니다. 이에 미세스 히긴스는 히긴스의 고약한 말버릇을 나무랍니다. 계속해서 일라이자를 향해 “아가씨는 어떻게 이 무례한 인간으로부터 그렇게 반듯한 예의범절을 배웠냐?”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일라이자의 대답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쉽지 않았어요. 피커링 대령님이 없었더라면 제가 신사와 숙녀가 지녀야 할 예의범절을 몰랐을 거예요. (이때, 히긴스가 놀란 표정으로 일라이자를 쳐다봅니다.) 저는 대령님께서 저를 꽃 파는 아이 이상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숙녀와 꽃 파는 아이의 차이는 그녀가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아닌 그녀가 어떻게 대접받는가에 달려 있는 거예요. 히긴스 교수님에게 저는 언제나 꽃 파는 여자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 분은 늘 저를 꽃 파는 아이로 대해 왔고 또 앞으로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피커링 대령님께 저는 항상 숙녀가 될 겁니다. 대령님께선 늘 저를 숙녀로 대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It was very difficult. I should never have been known how ladies and gentlemen behave, if it hadn’t been for Colonel Pickering. He showed me that he felt and thought about me as if I were something better than a common flower girl... The difference between a lady and a flower girl isn’t how she behaves but how she is treated. I shall always be a flower girl to Professor Higgins because he always treats me as a flower girl and always will. But I know I’ll always be a lady to Colonel Pickering because he always treats me as a lady and always will.

 

 


웬만한 지성인의 말보다 논리정연하고 설득력 있는 일라이자의 발언에 그 잘난 히긴스 교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갈 듯한 퇴행적인 몸짓으로 의자에 자기 몸을 웅크려 넣습니다. 그리고 일라이자를 데려가는 것을 포기하고서 씁쓸한 기분으로 어머니의 집을 나와 자기 집으로 향하면서 “제길, 나는 그녀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노래를 읊조립니다. 자기 인생에 여자를 들이는 것을 치과에 가기보다 더 끔찍하게 여기는 이 지독한 여성혐오주의자의 삶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셈이죠.
 

 

 

 

 

 

 

 

 

 

 

 

 

 

 

 


집에 들어와서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형편없는 영어 발음이 녹음된 축음기를 틀고서 일라이자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얼음같이 냉철하기만 한 사내의 얼굴 위로 곧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은 순간에 일라이자가 입장합니다. 축음기에서 “내가 얼굴에 때가 꼬질꼬질한 이 여자를 귀부인으로 만들어 주지!”라는 히긴스의 오만한 멘트가 나올 때, 일라이자가 축음기를 끄고서 이어지는 말을 생목소리로 화답합니다. “여기 올 때 세수를 깨끗이 하고 왔구만유......” 일그러져 가던 히긴스의 얼굴이 활짝 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 영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영국사회 특유의 문화적 배경을 참조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귀족과 평민, 상류층과 하류층의 문화양식이 크게 다르죠. 몸가짐(매너)도 그러하지만 언어 구사양식이나 액센트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하층민이 쓰는 영어와 상류사회의 엘리트들이 쓰는 영어 자체가 다른데, 이것은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버나드 쇼가 <피그말리온>을 만든 시대(1912)에 하류층의 미천한 여성이 상류층의 요조숙녀로 변신한 것은 그리스신화에서 피그말리온 왕이 만든 조각상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한 것만큼이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로 봐야 합니다.

극중의 히긴스 교수는 고귀한 신분을 지닌 여성혐오주의적인 독신남성이라는 점과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점에서 피그말리온 왕을 그대로 빼다 박은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피그말리온 효과를 서술함에 있어, 그리스 신화와 달리 버나드 쇼의 극본에서는 히긴스 교수가 아닌 피커링 대령에 의해 미천한 여성이 격조 높은 인물로 거듭나는 점입니다. 버나드 쇼가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히긴스 교수 외에 여성친화적인 피커링 대령을 배치하여 둘을 대조시킴으로써 원작의 뜻을 살짝 비껴간 겁니다. 이러한 창의적인 패러디가 이 희곡의 작품성을 빛나게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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