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외로 높은 투표율에 개표 결과 이변 발생

이번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최초로 위원장을 직선제로 뽑는 초유의 실험을 벌였다. 역대 민주노총 위원장은 모두 대의원들이 선출(간선제)했다. 민주노총 직선제에서 투표권이 있는 조합원은 67만명으로, '대선과 총선 다음으로 가장 거대한 규모'로 치러지는 선거인 셈이다.

뉴스풀e가 1차투표 마감 특집 기사를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6, 70만명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선거는 노동조합이 아닌 자본가단체나 이익단체의 선거라도 충분히 주목대상이 된다.

어떤 조직이든 6,70만명이 참여하는 선거라면...

민주노총은 직선제 도입에 관해 조직 내부에서 진통을 겪어왔다. 1998년 이갑용 씨가 민주노총 위원장에 오르면서 '직선제'를 공약으로 제시했으나 내부 정파별로 이견이 갈리고 유보에 유보를 거듭한 끝에 2014년에 들어서야 처음 시행하게 된 것이다.

직선제 찬성론자들은 조합원 한명 한명이 주인으로 서는 민주주의 심화에 역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반대측은 민주노총 전체 조직보다 산별이나 각 연맹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직선제가 조직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반론했고, 한편으로는 실제로 직선제를 시행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역기능과 부작용을 우려했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 직선제가 실시되었지만 세간의 관심은 미미했다. 대다수 언론은 직선제를 시행한다는 단순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계속해서 이어져온 민주노총을 향한 이념 공세나 민주노총의 주류를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눈총도 민주노총으로부터 시민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 간선제와 달리 자격이 있는 조합원 모두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면서 민주노총내 비정규직 또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한 표씩을 행사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조합원이 많은 사업장이나 산별조직, 주요 정파가 결국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냉소와 자조도 있었다.

선거 시작 전부터 돌았던 부정선거 시비에 대한 걱정도 컸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 이후 인터넷투표는 민주노총 선거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또한 일각에서는 투표율 50% 미만으로 선거가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투표 무산 걱정 깨고 62.7%(약 42만명)가 투표
 

그랬던 민주노총 선거가 1차투표가 끝나고 나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단 투표율이 예상을 웃돌았다. 최종 집계 결과 선거권자 66만 9978만명 중 42만 95명이 투표해 62.7%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득표 결과에도 이변이 발생했다. 당초엔 기호 4번 전재환(위원장)-나순자(사무총장)-윤택근(수석부위원장) 후보조가 득표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점쳐졌다.  심지어 1차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당선되리라는 예측도 조심스레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기호2번 한상균(위원장)-이영주(사무총장)-최종진(수석부위원장) 후보조가 1위에 올라 2위인 기호4번과 함께 결선진출을 확정지었다. 한상균 후보조는 '노동전선' 등 민주노총 비주류 좌파쪽 선본으로 조직력에서 전재환 후보조보다 열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10일 잠정집계 결과에서는 근소하게 전재환 후보조가 1위를 차지했으나, 11일 최종집계 결과 한상균 후보조가 33.5%의 득표율로 1위로 올라섰고, 전재환 후보조는 33.3%를 기록하며 약간의 차이로 2위로 밀려났다. 큰 차이는 없지만 순위가 뒤집히면서 민주노총 안팍의 반응이 뜨거워지고 있다.

전재환 후보조가 40% 미만으로 득표한 것만 해도 다소 의외인데,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 못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간선제를 시행했다면 전재환 후보가 위원장이 되었을 가능성이 100%. 직선제가 아니라면 이런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간선제로 했으면 "전제환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
쌍차 노동자 한상균, 1차투표 1위에 오르는 이변


기적적으로 1위를 차지한 한상균 후보는 최근 노동쟁의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의 주역으로 2009년 정리해고 저지투쟁 당시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었다. 한상균 후보와 러닝메이트를 형성한 최종직 수석부위원장 후보는 전국지하철노조 전 사무총장이며, 이영주 사무총장 후보는 전교조 전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근래 쌍용자동차 노동자투쟁은 대법원의 '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로 다시금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2심에서 내려진 '부당 해고' 판결이 깨어진 데 대해 분개하는 대중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상균 후보조는 섬세한 공약보다는 '투쟁'과 '현장'을 강조했고 총파업을 조직하겠다는 선거유세를 이어갔다.

이런 선거전략은 1998년 이변을 일으키며 민주노총에 당선된 이갑용 후보조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갑용 전 위원장은 한상균 위원장이 아닌 기호 3번 허영구 후보조의 선본의 좌장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상균-허영구 후보단일화 불발의 책임을 두고 한상균 선본측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한상균 후보조의 직선적이고 우직하고 강경한 태도와 선거전략은 16년 전 이갑용 후보조와 꽤 닮아 보인다.

1, 2위를 차지한 한상균 후보조와 전재환 후보조는 11일부터 결선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결선투표는 17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지며 이르면 24일 오전쯤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이 드러날 예정이다.

두 후보조의 관건은 1차투표에서 지지해준 조합원들을 다시 결선투표장으로 불러내는 동시에 1차 투표 탈락자인 기호1번 정용건 후보조와 기호 3번 허영구 후보조를 지지한 조합원들의 표심을 얻어내는 일에 달려 있다.

기호 1번 정용건 후보조는 20.3%의 득표율을 올려 3위를 차지했다. 정용건 후보조가 2위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무너지면서 선본도 다소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정용건 후보조는 전재환 후보와 성향이 비슷하다고 알려졌으나 정파연합으로 전재환 후보조가 만들어진 것에 반발하며 독자 출마했다.

현장파-중앙파-국민파 등 '정파'의 영향력은?
낙선자들 지지층 결선투표에서 어디로?


보통 민주노총에는 크게 세 가지의 정파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첫째는 국민파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내건 세력이다. 권영길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이 국민파가 배출한 대표적 인사다. 국민파에는 NL(민족해방파)와 비NL이 섞여 있는데,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NL파는 다소 쇠락하는 추세다. 국민파는 민주노총내 '우파'로 꼽힌다. 

둘째로는 '중앙파'가 있다.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중앙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파와 현장파의 가운데에 있다'는 뜻이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번째인 '현장파'는 민주노총의 좌파로 전투적인 성향을 보이는 조직이다. 현장파와 중앙파는 원래 '좌파'로 일컬어지다가 점차 분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전재환 후보조는 중앙파와 국민파의 연합 선본이라고 볼 수 있고,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정용건 후보조는 중앙파 출신이면서 중앙파-국민파 연합을 거부하고 독자 출마한 경우다. 전재환 후보조가 정용건 후보조 지지자들을 얼마나 모아내느냐에 승패가 걸려 있는 셈이다. 두 후보조의 1차 득표를 합하면 54% 가량으로 과반이다.

한편 4위로 탈락한 기호 3번 허영구 후보조는 민주노총 현장파 조직인 '좌파노동자회'를 조직 기반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결선에서는 함께 현장파로 분류되는 '노동전선'의 한상균 후보조로 기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허영구 후보조도 낙선의 여진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허 후보는 장기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지내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허영구 외 약간명으로 한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서 활약하는 등 정책역량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허 후보는 1차 투표에서 9.7%의 부진한 득표를 기록했다.

한상균 후보조가 허영구 후보조의 지지자들을 거의 모두 흡수하더라도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상균 후보조는 여기에 추가로 기호 1번 정용건 후보조의 지지층까지 일부라도 흡수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허영구 후보조 지지자들을 흡수하는 것도 만만하지 않을 수 있다. 양측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앙금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데다가 허 후보조가 민주노총 혁신조건들을 한 후보조가 제대로 떠안지 못했다고 판단했을 경우 결선투표 방침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위원장 되든 리더십에 한계" 우려도
 

한편,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대한 비관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총연맹보다는 산별이나 각 연맹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누가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든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정한 분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미 지역의 한 조합원은 "비정규직 문제에 더 적극적인 위원장은 있겠지만 그 위원장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각기 다른 색채를 가진 듯한 위원장 후보들에 대해서 "사실은 차별점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지역의 한 조합원은 "공무원연금에 대한 집단이기주의식 접근 등 서로 별 차이가 없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모 진보정당 관계자는 "한상균 후보조는 구체적으로 진보정치전략을 어떻게 펴나갈지 구상이 구체적이지 않고 '반정치주의' 성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전재환 후보조는 무작정 진보정당 통합이 노동자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벌어지는 결선투표는 실질적으로 '누군가를 떨어트리는 선거'의 특징을 가진다. 민주노총 위원장 결선투표 역시 '한상균 후보조를 거부하는 조합원'과 '전재환 후보조를 거부하는 조합원'의 대결의 끝에서 결판날 공산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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