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정치1번지 (4) 고 이재영과 송태경 上

연재 시작 후 처음으로 진보정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지난 12월 12일은 고 이재영 씨의 2주기였다. 이재영은 대학을 그만두고 공장으로 들어가 노동자 조직 활동을 했고 진보정치연합 정책국장, 국민승리21 정책국장,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을 거쳐진보신당(통합진보당과 다른 정당이다. 현재는 노동당)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암 투병 끝에 그가 누운 관은 진보신당 깃발이 덮었다.

그는 투병 중 “의사들은 내게 25%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 살아오면서 그처럼 커다란 확률을 잡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로또 맞은 것처럼 기쁘다”고 썼다. 예전에도 이처럼 낙천적인 그였다. 누구도 암으로 향년 45세에 떠난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필자도 그와 야트막한 인연이 있고 천여명 장례위원 중 하나였다. 보수세력은 물론 노무현 정부, 시민운동, 진보세력 내 이런저런 경향 등 그의 손에 ‘안 걸려 본’ 진영이 없을 만큼 그는 진중권 씨 이상으로 신랄한 글을 썼으나, 사석에서 만난 이재영은 다정하고 유머러스했다. 크고 작은 이견들과 여러 정파들을 엮어 진보정당을 조직화한 사람다웠다.

이재영과 함께 진보정책통으로 꼽을 만한 이는 송태경이다. 외국계 투자은행이 2004년 국회에 막 진출한 민주노동당을 탐색할 겸 면담을 왔을 때 이들을 만난 이가 이재영(이하 왼쪽 사진)과 송태경(이하 오른쪽 사진)이다. 

이재영은 송태경과의 첫 만남을 “노회찬에 견줄 만한 숫자의 머리터럭은 그나마 봐줄 만 하였으나”라고 술회했다. 송태경에게는 뭔가를 물어보면 엄청난 시간에 걸친 답변이 돌아왔다는데, 그 말을 끊을 수 있는 비법을 갖진 이가 이재영이었단다.

이재영이 화장실 간 사이 송태경은...

그러나 송태경의 말을 끊는 것보다는 '화장실에서 빨리 끊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1997년 권영길 대선 후보의 기자회견문을 두고 송태경은 ‘재벌 해체’가 아닌 ‘재벌 체제 해체’를 주장했다. 이재영 정책국장 등 조직원 다수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송태경은 이재영이 화장실에 간 사이 내용을 고쳐버렸다. 이를 몰랐던 권 후보는 그대로 읽었다. 물론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뭐가 뭔지 몰랐겠지만.

이재영이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에서 정책적 기틀을 쌓았다면, 송태경은 경제민주화운동본부를 통해 상가임대차보호법, 이자제한법, 신용회복 지원 같은 사업들을 빚어냈다. 그러나 “유럽 부자 나라 대사관의 임대차 상담까지 한 송태경은 정작 자신의 셋집이 쫓겨나는 것은 막지 못했다.”(이재영)

(다음 편에 계속)


-참고문헌
이재영, 「노회찬과 주대환을 떠나보내며」, 『정치신문 R』, 2012.3.7.
박준우 기자, 벤러드 아시아 전략분석가, 모건스탠리 관계자 민노당 방문」,  MBC 『뉴스데스크』, 2004.4.28
이재영, 「'제주 맑스' 송태경의 당 침투 10년」, 『레디앙』, 2007.4.26.
이재영 (이재영추모사업회 엮음),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 레디앙·해피스토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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