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자유는 내 적대자의 자유다

핵심부터 말하자. “나는 A를 싫어한다“A는 없애버려야 한다는 서로 다른 차원에 있다. 이걸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 글을 읽어봐야 소용없다.

필자는 현재의 통합진보당을 이루고 있는 NL(민족해방파/자주파)에 매우 큰 유감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감히 피해자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의 패권주의와 반() 진보적 행태를 넌더리날 만큼 겪어봤다. 그래서, 필자 같은 사람이 이번에 정부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변호하는 것도 다소 의미가 있겠다.

1. 이석기 사건은 아직 최종판결이 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통합진보당 해산을 청구한 결정적인 배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이석기 사건이다. 이석기 씨가 전쟁에 대비한 위험한 발언을 한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행하고자 했는지는 불투명하다. 사람은 자신이 해내지 못할 것들을 호언하는 경우가 있다. 숱하게 들었던 다리몽둥이 분질러삔다따위의 엄포가 얼마나 현실화되던가.

통합진보당에도 자본주의 속물이 있다. 혹은, 많다. 그들이 민주노동당 당권을 잡던 시절 당에서 발주하는 여론조사에 응찰하려던 업체들이 결국 입찰을 거부한 적이 있다. 특정업체를 잡아놓고 수의계약하는 데 들러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은 운동권이지만 자본주의의 속물성에 길들여진 자들이 많다. 나는, 굳이 걸라면, 이석기 씨가 막상 전쟁이 나면 자신이 공언한 것들을 실천에 옮기지 않을 거라는 데 건다.

이석기 사건 2심 재판에서 내란음모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RO(혁명조직)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일단 간주되고 있다. ‘내란선동만 유죄이다.

최종판결은 나지 않았다. 정당해산 심판이 먼저 내려진 것은 순서가 틀린 것이다.

2. 선고 시점의 수상함은 지적당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40% 미만으로 떨어졌다. 영남 지역 중년 남성층까지 빠져나간단다. 이것은 정권에게 초유의 사건이다. 지난 2년동안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나선형으로 하락했고 드디어 콘크리트 40%’가 무너졌다.

왠만한 사람들은 이 원인을 알고 있다. 정윤회-박지만 암투설과 실세 논란, ‘국정농단설때문이다. 하필이면 이때 헌재는 갑작스레 선고일을 예고하고 강제 해산 판결을 내렸다.

한때는 올해 지방선거 전에 해산 판결이 날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지방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 빠지는 것이 새누리당과 정부에 유리할 리 없다. 통합진보당은 새누리당보다는 새정치연합의 표를 많이 갉아먹기 때문이다. 난다던 판결이 나지 않자 통합진보당을 놔두는 쪽이 여당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나 보다는 짐작이 당연히 나돌았다.

까마귀가 날 때마다 배가 떨어지면 까마귀를 의심할 밖에. 이 대목은 남 탓하지 말고 박근혜 정권 스스로가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3. 김종필의 자민련은 왜 해산되지 않았나?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점에 한나라당으로 흡수된 자유민주연합이라는 정당이 있었다. 5.16 쿠데타 주역인 김종필 씨가 총재였다. 자유민주연합은 유신본당을 자임한 신민주공화당의 후신격이었다. 그들은 전두환 일당을 처벌키 위한 5.18특별법에도 반대한 바 있다. 참회하지도 처벌받지도 않은 쿠데타세력이 당을 만들어도 정부와 헌재는 해산시키지 않았다.

자민련을 해산하는 게 마땅했다는 뜻이 아니다. 자민련은 그대로 두고 그보다 훨씬 미약한 통합진보당을 급히 뿌리 뽑는 게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4. 통합진보당은 어떤 당인가?

이석기=통합진보당이라는 증거는 없다. 실제로 이정희 전 대표는 북한의 태도를 비판했다가 이석기 전 의원에게 역으로 비판받은 바 있고, 이상규 전 의원은 이석기 강연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러졌다며 은연 중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설령 RO가 실재했고 이석기가 내란음모 유죄라고 해도 그걸로 통합진보당 전체를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통합진보당은 민족주의 정당이다. 당원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친북적 색채가 있는 민족주의 정당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민족주의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렇다. 그들의 친북 민족주의는 어떤 수준인가. 최소한, 북한의 핵실험, 3대세습, 인권 문제에 대해 무비판적이거나 너그럽다. 민주주의자에게 비판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들이 구체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적 없기 때문에, 이들은 민주적이지 않더라도 민주주의에 의해 존재와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는 있다. 혁명? 통합진보당은 국회의원 당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보진영의 이견을 무시하고 민주당 계열과 후보단일화를 진행해왔다. 어떤 혁명가가 이런 수준의 정치를 추구하고 실행하던가. 또한 통합진보당은 다른 야당에 비해 두드러지는 정책적 특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북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강령에 혁명이 있더라도 실재적인 파괴행위를 저지르거나 준비하지 않는다면 당의 존립을 뒤흔들지 않는다.

5. ‘진보적 민주주의=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경박한 주장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을 문제삼았다. 북한의 주장과 동일한 이것이 사회주의의 전단계라는 말이다. 광복 이후 진보적 민주주의의 원조는 아마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노동당을 거친 박헌영일 것이다. 박헌영은 광복 직후 '8월테제'를 발표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제창했다. 사회주의하기 전에 진보적 민주주의를 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주류인 NL파는 예전부터 박헌영을 미제의 스파이라고 불렀다. 남로당 대표주자 박헌영은 북한으로 갔다가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 ‘박헌영=김일성=통합진보당이라는 해괴한 공식을 쓰지 말라.

 

 

진짜 진보적 민주주의를 경과하면 북한식 사회주의가 나올 리가 없다. 북한의 어디에 민주주의적인 구석이 있는가. 북한은 진보적 민주주의는커녕 보수적 민주주의에도 미치지 못한 사회다. 북한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거짓말이었다는 얘기다.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진실한지는 간단히 판단할 수는 없다. 적어도 단어가 똑같다고 북한과 동일시하는 정권과 헌법재판소의 수준으로는 말이다.

통합진보당 강령의 골자는 NL파 혼자 쓴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정의당으로 분리해 나간 국민참여계(유시민계), 구 진보신당계(노회찬, 심상정)와 함께 작성한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도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 매우 느슨하게 정리한 개념일 뿐이다. 고로 강령 내용을 이유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6.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자유민주주의보다 폭 넓은 개념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하는 기본질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일부 보수 진영은 이를 자유민주주의로 해석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일종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다. 자유주의는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옹호할 때는 급진적 성격을 가지기도 하고, 경제적 자유, 그중에서도 가진자의 경제적 자유를 신봉할 때는 보수적인 이념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자유민주적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 자유와 민주를 의미한다. 이건 내 해석이 아니다. 법제처는 헌법의 자유민주적을 영문으로 옮길 때 ‘Liberal democratic(자유민주주의적)’이 아닌 ‘Free and democratic(자유롭고 민주주적인)'으로 옮기고 있다억울한 자는 법제처에 가서 따지시라

 

 

한국의 정당 중에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사실상 두 개밖에 없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물론,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는지는 이와 별개다.

진정한 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다듬고 지키려 한다. 진보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민주주의를 구상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민주주의도 여러 갈래로 구상되기 마련이라, ‘진보적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등의 다양한 어휘가 나타난다. 그리고, 당장에 체제를 혁명할 게 아니라면, 이들 민주주의도 눈앞의 자유민주주의를 현실로 승인한다.

억보 양보해서 자유민주주의가 헌법 정신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상이나 세력의 자유를 인정한다. 그게 아니면 이름에서 자유를 떼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한계도 많지만 위대하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신을 극복하려는 이들도 품에 끌어안고,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닌 이들도 상당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중도 또는 보수정당 중에는 자유민주당(자민당)’이라는 이름이 많다. 진보 정당 중에는 사회민주주의당(사민당)’이나 사회(주의)이 숱하다. 이중에 정권을 잡아본 정당도 많다. 심지어 프랑스와 일본에는 공산당이 있다. 지금은 당명이 바뀌어 언뜻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이탈리아 공산당도 강했었다.

 

 

 

일본 공산당 포스터. "정부와 대기업은 책임을 다하라"

결코 일본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공산당을 해산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일본과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산당이 폭력적으로 사회를 전복하려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통합진보당이 실제로 사회 파괴를 기도하거나 자행했는지를 따져야지 강령이나 이념 용어를 갖고 시비 걸 일이 아니다. 자유는 내 적의 자유다.

7. 정당 강제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직 박탈이 직결되는 문제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을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는 필자가 받아들일 수 없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을 헌재가 해산시키냐는 것이다. 일단 헌재의 정당 해산 절차는 법으로 보장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통합진보당 해산이 옳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으므로 오히려 다수결을 빙자해서 해산을 정당화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정당의 이름으로 당선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소속정당의 강제 해산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강제 해산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해산은 되었는데 비례대표 의원직은 유지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는 않는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정당대표성 이상으로 주민대표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론은 얼마든 가능하다. “주민들이 잘못 알고 뽑았으니까 다시 선거를 할 권리가 있다와 같은. 그러나 가정은 불필요하다. 현재 주민의 의사가 정식으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이상규, 김미희, 오병윤 전 의원이 재보궐선거에 당장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그들에게 아예 기회가 봉쇄된 것은 아니다.주민이 뽑은 국회의원을 왜 헌재가 끌어내리느냐는 둥 이제는 주민들도 그들 정체를 아니까 끌어내도 된다는 둥 아웅다웅할 필요 없다. 아마 이들 전직 의원은 재출마할 터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직 상실자들의 진퇴는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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