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구미사람'... 준비는 철저히, 현장에선 굳건히

지난 1월 8일, 뉴스풀e는 '2014년의 구미 사람'으로 선정된 구미청년연합봉사단(구청연)의 김민성 단장과 이엄희 부단장을 만났다. 김민성 단장은 "잘 알려진 후보들이 많아서 우리가 받을 것이라고 기대는 못 했다"며 "후보로 오른 자체만으로도 PR도 할 수 있으니 기분 좋았었다"고 밝혔다.

김 단장은 "일반 시민인 뉴스풀 조합원들이 선정한 상이기에 어떤 기관에서 주는 상보다 더 뜻 깊었다"고 밝혔다. 또 "단체 명성이 올라가면 자연히 소속 구성원이 주변으로부터 받는 시선이 더 좋아지고 단체에 유익하다"며 기쁘고 반가운 심경을 드러냈다.

다음은 김 단장, 이 부단장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뉴스풀(이하 '뉴'): 수상소감은?

김민성 단장(이하 '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기쁘다.

이엄희 부단장: 감사하다. 단원들이 노력한 결과물이다. 선정된 이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

2005년 구미넷 소모임의 연합회로 출발
'보여주기식 활동'의 극복을 고민하다 주거환경개선으로


뉴: 2005년에 봉사단이 결성되었다. 당시 상황은?

김: 구미넷이라는 사이트에 여러 소모임이 있었다. 소모임 장들이 모여 좋은 일을 해보자 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 구미청년연합봉사단 김민성 단장

2005년 10월에 결성되었고 2006년부터 활동했다. 각 동호회를 결집하는 의미에서 모였는데 봉사를 해보자는 쪽으로 이어졌다. 선거참여 캠페인도 한 적이 있고, 이후에 봉사단체로 전환했다.

발로 뛰어다니며 읍면동사무소를 찾고 봉사대상을 발굴하며 찾아가는 봉사를 했다. 시간이 지나서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까 각 기관단체에서 역으로 우리를 찾았다. 올해로 10년째 봉사를 하다 보니까 조금 더 쉽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뉴: 동호회 연합이면 처음부터 규모가 어느 정도 되었겠다.

김: 처음에는 30명 정도 모였다. 가입은 많이 했지만 모임 참여도는 높지 않았다. 선관위랑 같이한 동락공원 투표 독려 캠페인 때도 30여명쯤 나왔다. (그때는) 그 정도 인원이 항상 움직였다.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선산 비봉산에도 가면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중증장애인 아동들과 수영장에도 같이 갔다. 중증장애인자립지원센터와 연결해서 봉사나 소풍도 나갔다.


뉴: 집수리나 주거환경개선 쪽으로 두각을 나타내던데 방향을 그렇게 잡은 동기나 계기가 있었나?

김: '너무 보여주는 활동 같다'는 고민이 들더라.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고 읍면동사무소로 문의해서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2008년도에 큰 계기가 있었다. 산동면에서 간단한 집수리를 하러 들어갔는데 흙집이라 (수리가 곤란해) 뭉개버리고 컨테이너를 새로 들인 적이 있다. (이런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전문가가 좀 더 필요했다.

이즈음부터 기술을 가진 단원들이 본격적으로 가입하고 기술력을 갖춘 채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문 기술자들은 봉사활동에서만큼은 수당을 받지 않고 일했고 재료도 내주었다. 구청연으로서는 큰 자산이다.


뉴: 전문 기술을 가진 분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김: 주변에 "동참해볼래요'" 권유를 했다. "괜찮다, 한번 가보자" 했던 분들이 여태까지 쭉 함께하고 있다.

그 전에 수영교실 보조 역할도 해주고 김천 '즐거운집'에서 일반 봉사자들이 하는 청소 등 활동을 주말에 했었다. 거기서 '변화를 주자'고 한 것이 집수리 사업이다. 외곽지에는 어르신들이 많고, 어르신들이 손댈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도배를 하는 재료를 구매하면서 단가가 싼 것을 찾다가, 또 전기 관련 설비를 찾다가, 전문 기술을 갖고 계신 분들이 한 분씩 한 분씩 들어오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2010년에는 봉사활동을 많이 했었다. 인원이 있어야지만 회비를 걷어 운영을 잘할 수 있다. 홍보를 안 하다가 봉사단 이름을 널리 퍼뜨리게 되었다. 봉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께 길을 열어드리고 봉사단을 정착시키려 활동을 오픈시켰다.

재정 마련? 회비를 모으고 씀씀이를 줄인다
철저한 사전 점검이 우리의 노하우


회원들한테도 복지가 필요하다. 강남병원 오픈 당시 병원과 제휴하기도 했고, 극단 '공터_다'와 자매결연 비슷하게 맺어서 회원들에게 문화생활 혜택을 주기도 했다.

봉사단 사람들이 알게모르게 봉사를 많이 한다는 것이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뉴: 활동 비용은 어떻게 마련하나.

김: 단원들이 자발적으로 월 1만원씩 내고 있다. 거기서 자재 비용과 식비를 다 충당하고 있다. 

뉴: 큰 단체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김: 연결된 곳은 없다. 재정을 모으기 위한 방법들이 있다. 저희 회의는 식당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한다. 식사 대신 간단한 다과로 대체하면서 계속 회비를 모은다. 회비를 모으고 모으고 거기서 일부씩 아껴서 쓰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재능이나 자재를 기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뉴: 모자라서 어려웠던 기억은 없나?

김: 어려웠던 기억은 없다. 예산을 나가는 것을 최대한 줄였다. 봉사활동을 나가기 전에 견적을 뽑고 거기서 줄일 수 있는 부분, 자재비를 구매하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을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을 점검했다.

우리 봉사단은 세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사팀, 총무팀, 관리팀이다. 봉사팀은 모든 봉사에 관련된 것을 관리한다.


이엄희 부단장(이하 '이'): 기존에는 찾아가면서 봉사 대상지를 선정했는데, 알려지면서는 각 읍면동에서 추천서류가 들어온다. 이것을 저희가 검토를 하고, 봉사팀장이 먼저 방문해서 봉사내용을 확인한다. 정기모임 때 안건을 토의하고 봉사대상지를 선정한다. 운영진들이 모여 세세한 부분을 토의한다.

미리 가서 답사를 하고, 도배 규모, 필요 인원 등을 점검한다. 봉사 당일에는 거기에 맞게 조를 나눈다. 서너 군데 집으로 나눠서 나가기도 한다.

뉴: 그 정도 인력이 되는가?

이: 충분히 가능하다.

김: 외곽지 시골에는 2, 30명이 가도 할 일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 요청건수가 늘면서 시내의 터가 작은 집에도 나가게 된다. 그래서 여러 집을 한꺼번에 묶어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새터민새마을회, 자율방범대 같은 단체도 함께한다.

지난해 석적의 화재 가정을 도우며 선례 만들기도 
"집수리 1회로 끝내지 않고 재방문해서 다시 손 본다"


2014년 10월에 석적 중리에서 화재가 일어나 한부모가정이 사는 원룸에서 불이 났다. 오갈 데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 총무팀장이 소식을 듣고 우리가 나서기도 했다. 사전 답사를 해서 도배나 배관, 장판을 살펴보고 각 팀별로 들어가서 활동했다. 지역복지센터에 아는 분이 계시는데 우리가 하는 것을 보고 "석적에서도 봉사단체연계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모금도 200만원 정도되었다. 

세탁기가 화재 원인이라는 게 밝혀질 때가지 한 달이 걸렸다. 그렇다면 지원받는 데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는데 우리가 먼저 들어갔고 이제 원인이 확인되었으니 지원이 나올 것 같다. 여기저기서 (도우러) 들어오니까 (관에서도) 두고볼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빨리 진행되었다.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지만 주변에서도 우리 조직력을 배우려고 한다. 


뉴: 조직력의 비결은? (김: 스스로 나서는 거다.) 스스로 나서려고 해도 손길과 작업이 필요할 텐데.

김: (봉사를) 접하지 않은 분들을 운영진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최소 1년 이상 봉사활동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니까 운영진에 들어올 때 자신의 기능을 이미 갖추어놓은 상태다. 이엄희 부단장님 경우도 봉사활동을 그 전에도 해오셨기 때문에 잘 알고 계신다. 지시를 내리는 식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못하겠다고 하면 못하는 거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준비를 해놓는다.

뉴: 역대 단장님은 몇 분 계셨나?

김: 세 분이다. 초대 단장님은 제가 잘 모른다. 2대 단장님은 자기 업을 하시면서도 6년 가까이 역임했다. 봉사라는 것이 한번 빠지면 중독이다.

뉴: 단장님은 초창기 멤버는 아니셨나?

김: 결성 직후 2006년에 가입했다. 

뉴: 지금까지 몇 가구를 방문했는지 세어보셨나?

김: 2013, 2014년에 50가구쯤 방문했다. 간단하게 간 곳을 세지 않은 경우도 있고. 정기봉사 외에 긴급을 요하는 봉사에 대여섯명이 출동하기도 했다. 120가구쯤 될 것 같다.

뉴: 한 번 집수리한 곳을 재방문하시던데.

김: 다시 손봐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재방문으로 그것을 찾는다. 한 번 개선해서 좋아진 집보다 개선을 했지만 추가로 손을 봐줘야 할 집을 우선으로 해서 재방문한다. 다시 필요한 게 뭔지 확인하고 수리한다.


뉴: 많은 가구를 다니셨는데 유달리 기억에 남는 집이 있다면?

이: 산동의 어느 할아버지 댁이다. 집안 자체가 쓰레기더미가 꽉 차 있다. 몇십 년된 담배나 소주도 나오고(일동 가볍게 웃음) 기념품들도 많이 나왔다.

 

 

▲ 구미청년연합봉사단 이엄희 부단장

냄새가 심각해서 마스크를 쓰고 봉사활동을 해야 하는 집들도 있다는 후문이다.

뉴: 생각 외로 그런 분들 자녀들이 멀쩡히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방치되어 있기도 하는데.

김: 어떤 집의 어르신은 원래 지역 유지였고, 자제 분이 학교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서울에 있으면서 어르신을 방치하고 있더라. 집에 와서 자기 필요한 부분만 챙겨 가져가고 땅도 팔아버렸다.

동네 주민들은 '저 집은 도와줄 필요 없다'고 하더라. 또 재산이 있고 만석꾼이 있을 때는 동네에 베풀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분은 (형편이 안 좋아진 후에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그분 나름의 고충이 심했다. 억수로 안타깝다. 저희가 크게 뭘 해드릴 여건도 안 되고.

'저런 집까지 지원해야 하느냐'는 소리에 동요하기도 하지만
일단 현장에 나간 이상 눈앞에 있는 일을 충실히 한다.


이: 저희가 봉사활동을 들어가면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다. 어떤 동네에 갔더니 판넬로만 집을 지어서 안에 난방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이틀에 걸쳐 석고 작업도 하고 단열 삼아 도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자녀도 있고 잘 생활한다는 소문이 들려오더라.

저희도 세세한 부분까지 미리 캐치하지는 못한다.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면 단원들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그렇고 '그런 집까지 해줘야 하느냐'하며 동요하기도 한다. 완벽하게 그런 부분까지 파악할 수 없으니 일단 넘기기로 했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뉴: 그런 부분은 국가에서도 일일이 파악이 잘 안 된다.

이: 그저 '우리가 고생하고 열심히 한 거 생각하자'고 단원들끼리 이야기한다. 너무 신경쓰지 말고 흔들리지 말자. 우리가 눈앞에 있는 일을 충실히 하자는 것이다.

구청연의 활동 기조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나가기 전에는 상황을 점검하는 등 충분히 준비하여 경비도 절감하면서 효율적인 봉사활동을 벌인다.  

둘째, 일단 현장에 나간 이상 그 집의 사정을 너무 신경쓰지 않고 눈앞에 있는 해결 과제에 최선을 다한다.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2편에 계속)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