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살아남으려 함이 어느 순간 죄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 밀리고 밀려 공장 굴뚝까지 떠밀려 버린 공장의 노동자들도 있고, 묵묵히 자리에서 일했지만 부당한 대우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말하는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불법파업의 주동자가 되어버린다.

우리의 현실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대화의 창구는 차단되었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 해주겠다던 정부는 중규직이라는 이상한 물건으로 국민들을 약올리고 있다. 과연 이런 우리의 사정을 들으려고나 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며 사람 말을 귓등으로 듣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또 하나의 미생, 해고 위기의 산드라


작년에 지겹도록 들었던 ‘미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바둑판에서는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든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같은 인물이 미생이 아닌가 싶다.

우울증으로 한동안 병가를 내고 이제는 복직을 준비하던 산드라는 동료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녀가 해고되는 대신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한다는 회사의 방침을 알게 되며, 호전되던 그녀의 우울증도 악화된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내건 조건은 이러했다. "산드라의 복직과 당신들의 보너스를 놓고 투표를 하라. 그 선택에 따라 진행하겠다." 그리고 그 투표결과 보너스를 택한 직원들의 수가 다수였으므로 그녀의 해고가 결정되어 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팀장이 직원들을 보너스를 택하게끔 종용하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너무나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이 도저히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의 융자금,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두 아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고 살아내야 했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사장을 찾아가고 문제의 투표를 다시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월요일에 다시 투표를 하기로 하면서 그렇게 그녀의 1박 2일동안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 시작된다.

"너의 보너스를 빼았으려는 게 아냐, 다만 일자리가 필요할 뿐이야."
"알아, 하지만 나도 보너스가 필요할 뿐이야 너의 일자릴 없애고 싶어 그러는 것이 아냐."

누구도 서로에게 늑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 서있고 싶을 뿐.

나의 일자리와 당신들의 보너스, 우리의 선택은?

이 영화의 구성은 복잡하지 않다. 산드라가 직원들을 찾아가서 보너스 대신 나의 복직을 선택 해줄 수 없냐고 부탁하는 장면들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대답과 사정을 듣게 된다.

"내가 미안했다. 꼭 너에게 투표하겠다" "나에게는 재앙이지만 너를 위해 투표할게" 같은 긍적적인 대답부터 "보너스가 없으면 자녀의 학비를 충당할 수 없다. " , "이돈이면 우리집의 1년치 세금을 낼 수 있다. " "미안하다, 너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라는 둥 부정적인 반응 그리고 심지어 폭력까지, 이들을 경험하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그녀에게는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게 한다. 이런 약한 모습들이 아마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을"들의 모습을 불안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관객의 시선에서 전하고 있다.

다만 그녀의 모든 힘든 순간에도 남편은 항상 옆에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가 가져야 할 몫을 빼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남편은 그런 그녀의 짐을 나눠지려는 친구이자, 또다른 나였다.


이야기의 구성은 단순하다. 하지만 데르덴 형제의 질문은 우리가 외면하던 문제에 대해 묵직한 무언가로 다가온다. 인간의 값어치는 과연 얼마인가? 윤리적 선택은 과연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것인가? 현대를 사는 당신에게 묻는다.

결국 산드라의 1박2일의 짧은 만남들은 자신 안에 물음을 찾아가는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자신을 보호하던 남편과 진심으로 힘이 되어주는 동료들, 각자의 사정으로 보너스를 선택했던 다른 사람들까지 만나면서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든 무엇이 본인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을지 산드라가 알게 되는 순간, 영화는 막을 내린다.

멋지고 아름다운 마리옹 꼬띠아르!

참 건조하다 싶을 만큼 기교가 없는 영화였다. 음악의 사용도 제한적이고, 특별한 미장센도 없는 영화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산드라가 만나는 동료들의 감정의 벼열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주고 카메라의 시선은 산드라의 감정을 그대로 담아 다큐적인 사실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산드라를 연기한 마리옹 꼬띠아르의 열연이었다. 이틀동안의 여정을 통해 그녀가 보여준 상실감과 절망, 우울증으로 피폐해진 자신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모습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너져 내리고 싶어하는 연약한 여자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표현해낸 무척이나 인상적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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