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정치1번지 (10) 기호 제도의 희극

한글의 기본 자음은 14개다. 그런데 한국의 정당 16개 가운데 이름이 ㄱ으로 시작하는 정당은 5개. 1/14의 확률을 훨씬 넘는 5/16의 비율이다. 특이한 건 5개 중 국회의원 있는 정당은 없다. 왜 이러는 걸까요? 예상 답변이다. 경제민주당: “우리는 경제민주를 추구한다니까요!”. 넵, 다음.

공화당: “우린 공화주의자입니다. 진짜예요.” 고뢔? 암튼 다음. 국제녹색당: “우리는 국제적으로 녹색입니다.” 국제녹색당은 조금 수상하다. 세계 녹색당들이 가입하는 ‘글로벌 그린스’와 아무 관계도 없음은 물론 지난번에 지적했던대로 녹색당과 달리 핵발전에 찬성하는 당이다.

그린불교연합당(불교당)은 더 수상하다. 약칭은 단순하게 ‘불교당’인 걸로 보아 이 당의 중심 사상은 불교다. 그런데 앞에 영어로 ‘그린’을 왜 붙였을까? 그리고 다음. 기독민주당: “독일에도 기독민주당이 있소.” 그렇긴 한데......

위의 정당에게 특별한 의심을 보내지는 않겠다. 다만 정당들이 ‘ㄱ’으로 시작할 만한 큰 유인 요건이 있는 건 진실이다. 1997년 대선, 그때 권영길 후보가 무슨 당이었나. “민주노동당?” 땡! 그땐 없었다. ‘유머는 정치1번지’를 애독한 사람은 말할 것이다: “국민승리21?” 조금 아는데? 하지만 땡!

국민승리21은 공화당보다 앞에 나오기 위해 '건설'을 붙였다.

정답은 ‘건설국민승리21’. 앞에 ‘건설’을 붙인 이유는 명료하다. 한국 선거에는 기호 순번이 있고, 국회의원 없는 원외정당은, ‘가나다’순이 적용된다. 원외정당 중 첫 기호를 공화당에 뺏기기 싫었던 국민승리21이 아야어여오요에서 이기기 위해 앞에 냅다 ‘건설’을 붙여 버린 것이다.

윗 순번 받으러 'ㄱ'에 몰리게 만드는 기호 제도


선거에서 ‘기호’는 상당히 중요하다. 투표용지 맨윗칸 후보가 몇 퍼센트 먹고 들어간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정치개혁 논의에서 기호 및 순번 제도의 폐지가 최근 단골로 오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필자도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람들의 일원이다. 헌법재판소에게 물 먹었지만.

예전 <딴지일보>에서 전화번호 인명부에서 맨앞, 맨위에 나오는 인물들을 추적했었다. 가갑손 대인, 가갑선 장군...... (필자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가각현’ 씨도 몇 분 계시더라.)   

투표용지가 무슨 전화번호부인가. 경제민주당 앞에 거렁뱅이의역습당이, 그 앞에 가자장미여관으로당이, 그 앞에 가가호호행복당이, 그 앞에 가가가가가(걔가 가씨냐?)당이 생길 판이다. 불공정한 기호 순번 제도, 이젠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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