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합의 없는 정책은 하나마나

지난 2010년 10월 정부는 QWL(Quality of Working Life)밸리를 내세워 구조고도화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QWL밸리란 지식경제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지난 2009년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과 매력적인 3터(일·배움·즐김 터)를 만들기 위해 주진하는 사업이다. 이는 지역민을 위한 컨벤션센터, 스포츠 테마파크 등 새로운 공공시설을 조성해 국가산업단지를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우선적으로 전국 산단공 4개 시범사업에 3천500억 원을 투입해 민간주도의 산업, 판매, 주거가 어우러진 QWL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구미/남동/반월시화/익산 등 전국 4개 단지를 QWL밸리로 지정하였다.

 
 

본래 구조고도화 사업은 휴폐업 유휴 부지를 활용하여 조성된 지 오래된 노후공단을 리모델링해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조성목적으로 산업구조 고도화 및 국민경제 향상과 지역 간 균형적인 발전 도모, 기술 집약적·고부가가치의 반도체, 컴퓨터 산업의 산업기반 확충, 기존 입주업체와의 계열화ㆍ전문화를 촉진함으로써 첨단기술 산업육성이라고 밝혔다. 이과정에서 식당/병원/호텔/원룸/약국/영화관 등의 상업시설을 전면 허용하는 방안도 함께 포함되었다.

지난 2014년 11월말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본부가 공모한 구미1공단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에 ㈜KEC, ㈜오리온전기, ㈜방림 등 3개 업체가 신청을 최종 완료하였다.

이 업체들은 2012년에도 공모신청을 했던 기업으로 당시 제출된 사업계획은 지역시민사회와 중소상인들에의 반대여론에 부딪혀 사업자로 최종 탈락된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리온전기를 제외하고 2012년에 추진될 당시와 비슷한 사업계획을 제출함으로써 노동자와 중소상인들은 또다시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KEC는 도심형 복합쇼핑몰(UEC)를 핵심으로 공동주택과 컨벤션센터, 방림은 아파트와 기숙사, 오리온전기는 스포츠센터를 짓는 사업계획을 제출하였다. 이들 사업계획의 공통점은 모두 상업판매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KEC 경우 대형백화점 유치를 사업계획에 포함시켰으나 반대여론에 부딪쳐 복합쇼핑몰로 슬그머니 이름만 바꾼 것이다. (구미는 40만 규모의 중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가 4개나 있다. 전국적으로 인구대비 대형마트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그리고 KEC는 폐업상태의 유휴부지가 아닌 현재 가동 중인 사업장의 유휴부지에 추진하고 있어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반발 및 회사정리 수순이라는 의혹을 제기 받고 있었다. (KEC는 이미 구조고도화 대행사업자 신청을 하면서 대상 부지에 있던 공장을 폐쇄한 적이 있다.)

구미1공단의 경우 구조고도화 사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1969년 국가 산업단지로 지정되고 4년 후인 1973년 준공된 구미1공단은 지난 37년간 섬유, 기계, 전자 기업들의 생산거점으로서 경제성장 및 산업발전에 기여해 왔으나, 기업생산설비 및 지원시설의 심각한 노후화와 단지 내 협소한 도로망과 공공주차장 부재 등으로 고부가가치 창출에 한계를 절감해 왔다. 여기에 공동화가 가속도를 내면서 대안마련이 필요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과거 국가산업육성을 위해 저비용으로 분양받은 국가산단 부지가 용도변경을 통한 상업적 수익사업으로 구조고도화와는 거리가 먼 특정기업의 자본증식 수단으로 활용될 길을 열어주는 것은 부당한 특혜임이 명백하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선례를 남길 경우 구미지역의 다른 대규모사업장들까지 영향을 끼쳐 도미노 현상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자칫 잘못하면 구미1공단 전체가 땅투기 지역으로 변질 될 우려가 있다. 구미1공단에 땅을 갖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민간대행사업자가 되면 가만히 앉아서 하루아침에 공장 땅이 상업용으로 용도변경되는 로또대박이 터진 것이다.

구조고도화 사업은 노후공단의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현재 구미는 백화점/식당/병원/호텔 등 소비시설이 부족해서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과 장시간노동 및 비정규직의 확대로 인한 실질 구매력 감소와 중소상인의 몰락이 지역경기악화, 삼성·엘지 등 지역경제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재벌기업들이 수도권으로의 공장이전이 주원인이라 볼 수 있다.
 
이렇듯 갈수록 가동중단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구조고도화 사업마저 땅투기로 변질된다면 지역의 노동자·중소상인들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과적으로 구미시민들은 구조고도화라는 산을 또다시 넘어섰다. 지난 2014년 12월 중순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구미1공단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 심사결과발표를 통해 KEC를 포함한 3개 업체 모두 부적격으로 결국 최종탈락하고 말았다. 이는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과 중소상인연합회를 포함한 지역시민들이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반대목소리를 높여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KEC 폐업반대 범시민서명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발대식 이후 11월 28일까지 무려 58,815명이 시민들의 서명이 동참했다고 한다. 구미1공단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은 앞으로도 시민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잘못 추진된 정책은 두고두고 심각한 폐해를 끼친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다. 구미지역은 이미 4대강 사업의 졸속적 추진으로 유례없는 단수사태가 발생하여 시민들이 엄청난 불편을 겪었다. 구조고도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구미공단의 위기는 회생불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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