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보다 뛰어난 수작으로 평하고 싶다

<국제극장>에 이어 7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 <쎄시봉>을 봤다. 설 연휴를 맞아 극장 한 프로 땡기고픈 마음에서 인터넷 극장가를 서핑하던 중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세간의 평이 너무 형편없어서(평점이 3점대였다) 잠깐 망설임이 일었지만 음악영화이고 하니 무조건 보고 싶었다. 내심 괜찮은 영화로 보이는데 대중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이 영화 너무 괜찮다. 작품성 면에서 국제시장보다 뛰어난 수작으로 평하고 싶다.
 

 


영화는 음악잡지사 여기자가 가수 이장희씨를 찾아 인터뷰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장희는 7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쎄시봉의 전설을 있게 한 주역이기도 하다. 기자는 모종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은퇴한 가수를 어렵사리 찾았다. 쎄시봉을 상징하는 뮤지션 ‘트윈폴리오’가 원래는 듀엣이 아니라 트리오였다는데, 그 한 사람이 누구며 어떤 사람이냐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으로 이 영화의 흥미있는 이야기보따리가 전개된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첫 장면은 강력한 사운드와 함께 시작된다. 진정한 한국 대중문화의 산실 서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의 무대에서 라이브 공연판이 벌어지고 있다. “워~ 워~ 워~ 딜라일라...” 극중 인물 조영남이 원작 가수 톰 존스를 능가하는 폭발적인 가창으로 ‘딜라일라’를 부르는데 정말 감동이다.

여기서 살짝 사족성 안티를 걸자면, 이런 고급스러운 사운드는 당시 음향장비 수준에선 불가능했다. 즉, 이건 리얼리즘이란 차원에서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것일까? 이런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극중 인물들의 음악적 재능들도 하나같이 출중한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음악적 요소를 빼면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딜라일라>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덧붙일 필요를 느낀다. Delilah는 보통 콩글리쉬로 ‘데릴라’로 일컫는다. '삼손과 데릴라' 할 때 그 데릴라 말이다. 구약성경 사사기에서 영웅 삼손을 파멸로 이끈 사악한 여인 ‘딜라일라’라는 이름에 부여된 시적 상징은 ‘팜므 파탈’ 그 자체다. 음악 <딜라일라>에서도 그러하다. 톰 존스의 원곡이나 조영남의 번안가요나 가사내용이 비슷하다.

I saw the light on the night that I passed by her window
I saw the flickering shadows of love on her blind
She was my woman
As she deceived me I watched and went out of my mind

그 날 밤 그녀의 집을 지나칠 때 창문 사이로 흘러나온 불빛을 봤어
사랑의 그림자가 커튼 위로 아른거리는 것을 봤어
(shadows가 복수임을 눈여겨보라. 그리고 blind는 블라인드-커튼의 뜻이지만, 동시에 눈 먼 마음이란 의미의 중이법으로 보인다. 이런 문장은 우리말로 못 옮긴다.)
그녀는 나의 여자였건만
두 눈 뜨고 그녀가 날 배신하는 것을 지켜보자니 미칠 것만 같았어.



아래는 조영남의 번안곡 가사

밤깊은 골목길 그대 창문앞 지났네
창문에 비치는 희미한 두 그림자
그댄 내 여인 날두고 누구와 사랑을 속삭이나
오 나의 딜라일라
왜 날 버리는가
애타는 이 가슴 달랠 길 없어 복수에 불타는 마음만 가득찼네.


음악영화 쎄시봉에 맨 처음 등장하는 음악이 왜 하필 ‘딜라일라’일까? 오페라에서 서곡이 오페라의 전체 줄거리를 암시하듯이, <딜라일라>는 이 영화의 플롯에 대한 암시이자 극적 효과를 위한 상징물로 중간 중간에 배치된다.

조영남의 오프닝 공연이 끝나면 쎄시봉이 자랑하는 메인 프로 '전국대학생 노래경연대회'가 펼쳐지는데 연세대 의대생으로 미모와 스펙을 자랑하는 윤형주(강하늘)가 7주째 우승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때 윤형주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송창식(조복래)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둘은 캐릭터와 음악 성향 면에서 완전 대조적이다. 윤형주가 남자치곤 너무 곱상한 엄친아 형인데 반해 송창식은 벙거지 차림의 터프가이이다. 송창식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유명한 아리아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불러 관중을 압도한다. 결과는 송창식의 승리.

 

 


극 중에서 윤형주는 노래 잘 하는 것과 여학생들에게 인기 폭발인 점을 빼곤 한마디로 싸가지다. 그리고 송창식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국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실은 이렇게 불편한 해후였다는 것도 흥미를 끈다. (영화에서 쎄시봉의 사회자가 송창식을 홍익대 학생으로 소개하지만, 실제로 송창식은 대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송창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그 무대에 서기 위해 대학생을 사칭했다고 했으니)

그러나 플롯의 전개상 윤형주-송창식 두 사람이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드는 우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쎄시봉 사장(권해효)은 성격 면에서나 음악적 컬러 면에서 극단적 대조를 이루는 두 사람을 중화시킬 수 제 3의 인물을 넣어 트리오를 만들 것을 구상한다.

그 인물을 물색하는 미션을 맡은 사람이 바로 이 영화의 스토리 메이커인 이장희이다. 이장희가 데려온 대학생 오근태는 통영 촌놈으로 기타도 칠 줄 모르고 노래만 부를 줄 아는 순진한 청년이다. 그러나, 윤형주-송창식에 비해 존재감이 한참 떨어지는 이 풋풋한 남자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자 자랑이다. 오근태는 극중 시대적 배경인 ‘순수의 시대’의 상징이다.

 

 


쎄시봉은 당대 청년들의 사교클럽이기도 했다. 중세 프랑스의 베르사유 마냥 타락한 부르주아들을 위한 사교클럽이 아니라 선남선녀가 만나 먼발치에서 서로에 대한 흠모의 정을 키워가는 공간이었다. 바로 그 공간에서 세 사람 앞에 어느 날 민자영이 나타난다. 모두가 한 눈에 반한 이 여신의 이름은 비너스가 아니라 뮤즈다. 주인공들이 음악에 더욱 열심히 몰입하게 된 이유가 된 여인인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세 사람이 이 여신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하는 것은 없다. 스토리 전개상 까칠한 형주와 터프한 창식은 조기 탈락하고 최종 남은 사람은 근태였다. 그러나 근태가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근태와 자영이 짝으로 맺으져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얼마나 영화가 시시하겠는가? 모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는 비극미가 생명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뮤즈는 딜라일라가 돼야 한다.

(쎄시봉에서 결성된 트윈폴리오가 원래 3인조 트리오로 출발한 것은 맞다. 윤형주, 송창식 외에 이익균이라는 분이 함께 했는데 이 분이 군에 입대하면서 듀엣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김효근 기자에 따르면, 영화 속 인물 오근태는 이 이익균을 모티브로 각색한 것이다.


http://joongang.joins.com/article/062/17168062.html?ctg=17

한편, 민자영은 실제 인물 윤여정일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알다시피 윤여정은 쎄시봉의 왕 형님 조영남 씨와 짝을 맺는다. 영화 속에서 민자영은 오근태를 버리고 당시 잘 나가던 영화감독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결혼을 한다. 그러나 나중에 이혼을 하여 혼자되는 점에서 윤여정과 살짝 닮아 있다. 이처럼 현실세계와 픽션와 닮을 듯 닮지 않은 애매한 경계설정 또한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흥밋거리가 아닌가 싶다.)
 

 


어느 비오는 날 근태의 우산 속으로 자영이 들어 왔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자영이 근태 마음으로 훌쩍 다가온 것이다. 자영이 근태더러 미도파백화점까지 우산 좀 씌워 달라고 했는데, 맙소사 미도파백화점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때 영화는 초자연적 능력(판타지 기법)을 발휘해 미도파백화점을 먼 곳으로 옮겨 버린다. 두 사람은 다정스레 '빗속을 둘이서' 걷는다. 그 뒤로 무지개가 비친다. 아, 환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자영이 고무신 바꿔 신는 날부터 근태는 세상으로부터 숨는다. 근태 없이 창식과 형주는 트윈폴리오라는 이름으로 방송국에도 출연하며 한국가요계의 총아로 성장해간다. 그러나 세상사 호사다마라, 대마초 파동으로 팀은 와해되고 쎄시봉도 몰락해간다.

안타까운 것은 쎄시봉 가족들이 대마초 피웠다는 것을 경찰에 까발린 배신자로 사람들이 근태를 의심하는 점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것은 사실이었다. 근태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간 것은 그가 연기처럼 잠적한 탓도 있지만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 가련한 우리의 주인공이여!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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