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정치1번지 (13) 민주노동당과 비례대표제

지역구 선거 득표에 따라 배분되던 전국구 의석이 정당명부 득표율로 결정되는 비례대표로 바뀌어 치러진 첫 선거는 2002년 동시지방선거였다.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전국구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를 이끌어낸 장본인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전국적으로 8.1%의 지지율을 올리며 여러 지역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당선자를 냈다.

같은 해 대선에서 득표수는 신통치 않았지만 권영길 후보가 TV토론에서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로 국민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남겼기에 민주노동당의 2004년 국회 진출은 기정사실화되었다. 비례대표에서 다섯 명쯤 당선자를 내리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경선이 끝나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관계자들이 항의차 민주노동당을 찾았다. 전농은 바로 그 얼마 전 민주노동당 가입을 결정했다. 전농은 비례대표 후보에 농민운동가인 현애자, 강기갑 씨를 내세웠는데 각각 6번과 7번을 받는 데 그쳤다. 민주노총 출신인 심상정, 단병호 씨가 1, 2번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선권 밖의 순번을 받었다는 생각에 전농 관계자들은 흥분했다.

성토 대상은 노회찬 당시 사무총장. 노 총장이 전농을 민주노동당에 들이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당에 들어와줬는데, 이럴 수 있소?” 그러자 옆에 있던 천영세 부대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람은 8번이오. 차라리 나한테 그러시오.” 노 총장은 초창기 민주노동당의 대표적 일꾼이었지만 당내 조직 기반이 약해 비례대표에서 8번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천영세 부대표는 ‘4이었다.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하지만 천영세는 물론 현애자
, 강기갑은 당선되었고 노회찬도 국회로 가는 막차를 탄다. 개표 막바지인 새벽 3시경, 자유민주연합이 정당 득표율 3%에 못 미쳐 김종필 총재를 비롯한 모든 비례대표 후보가 낙선했고, 김종필이 놓친 자리에 노회찬이 앉은 것이다.

김종필 제치고 당선된 노회찬, 자다 일어나... 


놀랍게도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보다 5%포인트 더 얻은 13%를 얻었다. 1등공신은 다름 아닌 노회찬 자신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 그는 TV토론에 나가 탄핵 주역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맹렬한 풍자로 공격했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에도 중간중간 일침을 놓아 스타가 되었다.

마침 눈을 붙이고 있던 노회찬은 당선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AFK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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